머리말
저술한 책들의 개정 원고를 마무리하고 교정 단계가 끝날 무렵 머리말을 써야 할 때가 다가오면 늘 그렇듯이 경건해진다. 한 해 동안의 민사절차법에 대한 연구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학문적 자세를 다시 가다듬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이론적 성과에 대한 점검과 보다 실증적인 민사절차법 연구에 대한 욕심으로 다시 실무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여전히 로스쿨에서의 강의를 계속하고 있으니 학계와 실무계를 오가는 운명이 숙명(宿命)처럼 느껴진다.
금년 한 해는 사법부로선 격동의 시기였다. 사법정책과 사법제도를 연구하는 저자로서는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개혁과 변화에 무언가 기여를 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금년 2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대법원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사법개혁의 방향을 모색하고 그 결과를 대법원장에게 건의하는 활동을 하였다. 일복이 많아서인지 전문위원회 활동까지 아울러 하는 바람에 회의만 하더라도 30여 차례를 훌쩍 넘겼다.
회의가 있는 날 대법원을 들어설 때마다 한 때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던 추억을 회상하면서도 사법부가 처한 현실에 늘 마음이 무거웠다. 지혜를 짜내어 현실적으로 수용가능한 개혁의 방향을 찾고, 이를 위한 제도개선의 방안을 강구하는 작업을 통하여 우리 민사절차법의 모습을 또 다른 시야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민사절차법이 살아 움직이는 법으로 우리의 법 생활에 실질적으로 역할하기 위하여 민사절차법의 연구가 보다 실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과 다짐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이번 개정 제8판 역시 그동안의 개정의 목표와 방식에서 다를 바 없으나, 곳곳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 모든 논점을 망라하여 심도 있는 체계적.분석적 설명을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면서, 재판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최근에 대두되는 중요한 실무적 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설명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의욕과 결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명이 가해질수록 책의 페이지수가 늘어나기 마련이어서 마음의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상고심에서의 심리불속행판결의 실태, 본인소송의 실태, 집단소송 등의 실태, 전자소송의 각 단계별 운용의 실태, 판결서공개 제도의 현실, 송달료제도의 현실, 집행관통합송달의 실정,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의 구체적 내용 등 이미 변화가 이루어졌거나, 앞으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실무적 쟁점들에 대하여 지면을 의식하여 가능한 한 알차고 짜임새 있게 서술하였다.
금년 한 해 동안 선고된 판례 가운데 재판상 청구와 시효중단과 관련한 전원합의체 판결 두 개와 이와 관련된 판결들이 이어졌다.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신소 제기의 허용을 재확인하는 전원합의체 판결 및 이러한 목적의 신소 제기의 방식에서 재판상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 확인을 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롯하여, 소송물의 양도에 따른 소송탈퇴에서의 시효중단의 문제, 후속적 법률관계에서의 재판상 청구와 시효중단의 문제 등에 관한 판결들이 있었다. 특히 최근 상계의 항변과 기판력의 범위에 관련된 다양한 논점들에 관한 판결들까지 이어져, 민사소송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사실체법에 관한 통합적 사고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이러한 판결들 모두 일일이 분석하여 반영하였다. 물론 2018년 한 해에 나온 민사소송법에 관한 주요 논문 및 자료들도 분석하여 해당 내용에서 언급하였다. 한편 법규범성이 없는 실무가이드로 작용하는 예규의 개정까지 추적하여 담았다.
이번 개정판에서도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보충설명한 부분들이 많았다. 책을 읽을 때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길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부분들을 미리 파악하여 질문에 답하듯 치밀하게 언급하였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디자인적 마인드까지 동원하여 키워드를 굵은 글씨체로 눈에 쉽게 들어오도록 하였다.
예년과 달리 이번 개정판의 머리말에는 무언가 남다른 소회(所懷) 때문인지 적어야 할 내용이 많을 것 같은데 막상 풀어내려고 하면 가로막힌다. 사법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사법의 신뢰는 법치국가의 근간이다. 재판에 대한 신뢰의 확보는 공정한 재판, 신속한 재판으로 가능하다. 민사절차법은 사법 현실과의 갈등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재판이 나아가야 할 반듯한 길을 밝힌다. 미력하나마 이런 작업에 학자로서, 그리고 실무가로서 동참할 수 있는 인연에 회향(回向)하기 위하여 더욱 연구에 매진하여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한다. 먼저 출판사에 대한 감사의 인사이다. 박영사와 인연을 맺고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 책들을 거의 매년 낼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행운이다. 늘 저자를 지켜보시고 물심양면 성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 저자의 책에 관한 한 가장 많이 발품을 하신, 저자의 책을 떠올리면 같이 떠올려질 정도로 정이 든 조성호 이사님, 페이지수가 늘어나는 까다롭고 힘든 작업을 내색조차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앞장서 박차를 가하시는, 저자의 책들의 최종 산파역을 감당하시는 김선민 부장님 등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늘 그 모습대로, 그 길을 갈 수 있는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한 것은 가족의 힘이다. 학문의 진리를 추구하는 삶에 감사하는 마음만으로 저자에겐 삶의 안무(按撫)이며, 위로(慰勞)이다. 힘을 추스르면서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족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갈음한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후 또 한 해가 지나갈 무렵 또 다른 머리말을 쓸 날을 기약해 본다. 학문의 세계나 재판의 세계나 모두 우리의 세계이다. 더욱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기원하면서 머리말을 맺는다.
2018. 12.
저 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