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차별이라는 거센 물살을 헤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노를 잡다
개돼지만도 못한 삶,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다
「꿈초 역사동화」는 꼭 알아야 할 우리 역사를 흥미진진한 동화로 엮어, 역사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 『동학군을 구한 뱃사공, 순생이』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농민들의 혁명, 동학 농민 운동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018년 4월, 종로 네거리에 녹두 장군 전봉준이 동상으로 세워졌습니다. 순국 123주년을 맞아 전옥서 터에 그의 마지막이었던 압송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지요. 차가운 동상으로 부활한 그는 비록 다리를 다쳐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 있지만, 의지를 불태우는 형형한 눈빛만은 뜨겁게 살아 있습니다.
녹두 장군은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폭정에 시름하던 농민들과 동학 교도들을 모아 동학 농민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조선 말기인 그 당시 극심한 신분 차별과 빈부 격차뿐만 아니라, 힘없는 소작인들의 과도한 징수 부담으로 인해 농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패한 조정은 벼슬을 매관매직하고, 지방 고을 수령들도 농민 수탈에 혈안이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부당함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하늘 아래 사람은 모두 같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종교 ‘동학’에 빠지게 되지요. 인간 존중과 평등을 외치는 동학은 백성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게 했습니다. 그리고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순생이는 동학 농민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던 그때에 전라도 장흥의 석대들에서 뱃사공으로 일했던 소년입니다. 동학이 무엇인지, 동학군이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몰랐던 순생이는 형을 통해 동학사상을 접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지요. 그리고 역사의 그날, 순생이는 그 꿈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노를 잡습니다. 순생이가 탄 나룻배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요?
새로운 세상을 향해 희망의 노를 잡은 순생이
열한 살 소년 순생이는 어느 날 형 지생이와 상보에게 녹두 장군과 동학군 이야기를 듣습니다. 평범한 농민들과 동학 교도들이 ‘사람은 곧 하늘이고, 하늘 아래 사람은 모두 같다.’는 동학의 가르침 아래 모여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다고 했지요. 양반, 상놈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형의 말에 순생이는 놀라면서도 이내 양반 같지 않은 양반, 버러지만도 못한 양반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순생이가 사는 이 고을에도 그런 양반이 하나 있거든요. 바로 장흥 부사의 양자 박재우인데, 과거 공부는 오래전에 내팽개치고 건달처럼 마을 사람들을 염탐하고 해코지하는 작자였어요.
집에 돌아온 지생이와 순생이는 어머니가 관아에 끌려간 사실을 알게 됩니다. 노는 밭을 일궈 추수하고 세금을 내지 않았다며 동네 아낙들과 함께 잡혀간 것이지요. 가을에 소작하는 땅에서 추수를 해도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겨울을 나기 위해 그 밭을 일군 것이 사달이 난 것입니다. 알고 보니, 동네일을 캐고 다니던 박재우가 이를 알아채고는 장흥 부사에게 고자질한 것이었지요. 그길로 관아로 달려간 지생이는 치도곤을 당한 아낙들 사이에서 어머니를 발견합니다. 지생이는 온몸에 피멍이 든 어머니를 들쳐 업으며 마음먹습니다. 개돼지나 다름없는 삶을 사느니, 동학군에 들어 인간으로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이지요.
형이 떠나고, 홀로 남은 순생이는 형 대신 뱃사공 일을 하며 아픈 어머니 곁을 지킵니다. 동학군이 되어 전봉준의 진두지휘 아래서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목숨 걸고 싸우는 형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형이 자랑스럽다고 여기지요. 그리고 형에게 들었던 새로운 세상이 곧 펼쳐질 거라 굳게 믿으며 형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하지만 어느 날, 순생이는 형이 석대들에서 싸우다 죽었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순생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그저 형을 잃은 슬픔을 토하며 한없이 우는 일뿐이었습니다. 실의에 빠진 순생이에게 노인 뱃사공 유 씨는 넌지시 묻습니다. 동학군들을 위해 노를 잡지 않겠냐고 말이지요. 석대들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동학군들을 덕도로 옮겨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순생이는 관군과 일본군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희망의 노를 잡습니다. 동학군들을 가득 실은 나룻배는 무사히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작지만 위대한 민중의 힘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은 민중 운동의 뿌리가 되어 일제 강점기의 3.1 운동으로 이어졌고,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그리고 오늘날 촛불 시민 혁명까지 꽃피우며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하도록 이끌었지요. 순생이가 손이 부르트도록 노를 저어 동학군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데 힘을 보탠 것처럼, 오늘날 광화문에서 모인 작은 촛불은 거대한 빛의 물결을 만들며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작지만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어도, 기록이 남아 있진 않아도 말이지요. 그 ‘민중’이라는 힘은 역사가 바르지 않은 길을 향할 때 큰 목소리로 꾸짖어 바로잡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깨어 있는 민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