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원재훈은 등단 20년이 넘어 소설가로 재등단하며 문단의 주목을 끄는 장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해왔다. 그의 소설은 잘 벼려진 문장과 서사적 구조에 시인다운 시적 함축성이 돋보인다. 그런 그가 이번에 들고 온 작품은 손바닥소설이다.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만의 새로운 문학세계가 흥미롭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고독하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투하다 보니 온통 상처투성이다. 외로워 누군가를 가까이하다 보면 거기에 ‘고양이 상처’(213-220쪽)마저 덧붙여진다. 정신적 공허에서 헤어날 수 없고 소설 한 권 읽을 시간조차 내기 어렵다. 원재훈의 손바닥소설은 이들 상처받은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그의 전작 장편 《망치》가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이고, 《연애 감정》이 1980년대 청춘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였다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무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가끔 손바닥에 글자들을 쓰곤 한다고 술회한다. 위안, 사랑, 용기 같은 글자들이다. 어려서부터 습관이 된 이 버릇에서 그의 작품은 태동하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쓰려고 한다. 폭력적인 손바닥엔 친절과 겸손을, 핵폭탄의 손바닥엔 사랑과 평화를…. 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다리와 길’이 되고 싶은 게 이 소설집의 집필동기다. 책 속의 작품들은 이내 길이의 한계를 떨쳐버리고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긴 여운을 선물한다. 표제작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람과 반려동물의 위치를 바꾸어 세상을 들여다보는 풍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부에 실린 작품은 작가가 마법사가 되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들이다. ‘삶의 손바닥’에 쓰인 이야기들이 따뜻하고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작가는 ‘소설이란 때가 되면 비로소 조금 쓸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이야기’라고 재정의한다. 손바닥소설(掌篇小說)을 장르적으로 궤도에 올린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상실과 절망의 시대를 사는 이 땅의 독자들에게는 문학에서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이 책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우리 손바닥소설 문학의 새 영역을 열어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손바닥에 쓴 소설
이 소설집은 장르적으로 손바닥(掌篇)소설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불현듯 ‘시가 내게로 왔다’고 했던가. 원재훈은 손바닥소설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소설이 쓰였다. 그것은 그의 천성에 기인하기도 하고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지 싶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바닥에 무언가 글자를 끄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작가가 된 다음 그것은 원고지로, 모니터로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작품은 손바닥에 쓴 단순한 것에서 시작한다’고 그는 믿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고독하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투해야 하며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정신적 공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소설 한 권 읽을 시간조차 없다. 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리와 길’이 필요하다. 이제 원재훈은 자신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자 한다. 그것이 이 소설집이다. 그래서 그는 이 소설집을 ‘손바닥에 쓴 소설’이라고 일컫는다.
‘고양이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책 속의 작품들은 이내 길이의 한계를 떨쳐버리고 인생에 대한 통찰과 긴 여운을 선물한다. 표제작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람과 반려동물의 위치를 바꾸어 세상을 들여다보는 풍자성이 돋보인다. 작가는 점심을 먹고 마당 가에 가만히 꽂아둔 이쑤시개를 아름드리 거목처럼 상상하는가 하면, 늙어 주름진 얼굴에서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단풍을 연상한다. 2부를 비롯한 여러 작품 속에는 마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법사의 집은 ‘소원을 들어주는 집’이다.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단풍잎이 방바닥에 툭 떨어졌고, 잠시 단풍잎을 보고 있던 케이는 다시 집어 책갈피에 넣었다. 윤동주가 별을 헤아리고 있는 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시집의 여백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별을 보면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밤. 차라리 별이 가까이 있구나.”
케이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참 간절했구나 싶었다. 아픈 이모는 도대체 누굴 만나서 어떤 사연을 남기고 간 것일까? -90쪽(〈시와 소녀〉)
“꽃이 된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 꽃이 된 사람이라고 하시니까 연인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군요.”
“예. 한때는 그런 사이였는데, 긴 세월 헤어져 있다가 최근에 다시 만났습니다.”
“아, 꽃이 되었다는 말씀은?”
내가 재차 물어보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 사람…, 승려가 되어 있더군요.”
두어 달 후, 내 앞으로 한 송이의 꽃이 배달되었다. 그녀가 보내준 활짝 핀 상사화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할 그 스님이 부러웠다. -102쪽(〈상사화〉)
뭐든 사랑하게 되면 그런 거다. 너무 가까이하다 보면 상처가 생기는 거다. 우리는 그렇게 상처를 입으면서도 더 가까이 있고 싶어하고, 더 가까이 있다가 가벼운 상처를 입는다. 그건 상처라기보다는 사랑의 흔적이다. 삶의 흔적은 그렇게 생기는 것이다. … 아주 젊었던 시절 잘 알고 지냈다고나 할까, 하여간 종로나 인사동의 술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가 먼 이국에서 말기 암에 걸렸다는 소식. 그녀의 책을 방송국에서 우연히 보고 잠시 가슴이 턱 막히면서 답답했다. 이건 일종의 고양이 상처구나 싶었다. -215쪽(〈고양이 상처〉)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작가 원재훈
시인, 소설가. 일찍이 시인으로 등단해 《낙타의 사랑》 《그리운 102》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라 하네》 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등단 20년이 넘어 홀연 소설가로 재등단하며 《만남》 《모닝커피》 《바다와 커피》 《미트라》 《망치》 《연애감정》 《드라큘라맨》 등 문단의 주목을 끄는 장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해왔다. 그의 소설은 잘 벼려진 문장과 서사적 구조에 시인다운 시적 함축성이 돋보인다. 망치》가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 《연애 감정》이 1980년대 청춘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였다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처 받은 영혼을 위무하는 작품이다. 손바닥소설을 장르적으로 궤도에 올린 사람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그의 시대가 또한 그 같은 작품을 요구했으리라. 이 겨울 원재훈의 따뜻한 손바닥소설이 손난로처럼 독자를 어루만져주기를 기대한다.
[본문 일부]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 개는 플라톤이 <국가> 2권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철학적인 짐승이다.(라블레, <가르강튀아> 작가 서문에서)
오늘 제작할 방송 내용은 미친 듯이 먹어대기만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공영방송인 우리 방송국에서 개편을 맞이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컨셉으로 우리들의 오랜 애완동물인 ‘사람’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해 봄으로써 우리 개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사람’이 길들이기에 따라서는 매우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제작 의도이다. 프로그램명도 기획 의도를 최대한 반영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지는 않지만 가끔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 때문에 고민하는 우리 개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점점 각박해지는 우리 개 사회에 ‘사람’만큼 친근한 동물이 또 얼마나 있단 말인가. 요즘에는 사람이 죽으면 자기 가족을 잃어버린 것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개들이 있는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제 사람은 더 이상 가축이 아니다. 우리 개와 동격인 것이다. 아마 사람고기를 먹는 개들의 야만적인 행동은 수년 안에 사라질 것이다. 뭐 먹을 것이 없다고 그토록 다정한 사람고기를 먹는단 말인가.
우리 사회에 애완동물 시장은 사람과 원숭이로 크게 나뉘어 있는데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우리가 개와 고양이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사람도 백인, 흑인, 홍인으로 크게 나뉜다. 원숭이보다는 사람이 고가로 거래된다. 아무래도 털이 적고 생긴 것도 예쁘기 때문이다. 암컷들은 숫컷에 비해 더 고가로 거래된다.
오늘 우리가 촬영을 나가는 집안의 애완 사람은 백인종이고 금발에 뚱뚱한 놈이다. 이놈은 미친 듯이 먹어대기만 하는데, 간혹 사료를 조금 덜 주면 주인인 개에게 으르릉거리면서 공격성이 드러난다. 미친 사람이 우리 개를 물면 광인병에 걸려 매우 치명적일 수도 있다.
촬영 팀은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사람에게 접근했다. 녀석은 과연 뚱뚱한 몸짓에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가끔은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고, 주위에 있는 물건을 쥐고 달려들기도 해서 아주 위험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주인인 스티브가 말했다.
“이 녀석은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소홀하면 아주 지랄이에요. 그렇다고 거리에다 버릴 수도 없고 말이지요.”
“그래, 언제부터 저 지경이 된 겁니까? 절대로 유기하시면 안됩니다. 잘 보살펴야 합니다. 사람처럼 나약한 짐승도 없어요. 유기는 범죄입니다. 우리가 잘 돌봐야 되는 겁니다. 혹시 어떤 이유가 있는지 짐작은 되시는지요?”
“글쎄요. 요즘에 하도 먹방이 유행이어 그런지. 먹방 프로그램만 나오면 아주 정신을 놓고 보고 있어요. 가끔 지가 개라도 되는 줄 알고 유심히 들여다보는 걸 보면 참 신기해요. 어쩜 저렇게 우리들을 닮았는지 말이지요.”
“그래요. 그럼 카메라를 켜 놓고 한번 관찰해 보지요. 티브이를 틀어 놓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봅시다. 모든 질병에 원인이 있듯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요. 어찌 보면 우리들의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처음엔 저러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중성화 수술을 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요. 본능을 제거했으니 다른 본능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그래도, 중성화는 하셔야 됩니다. 사람들의 성욕은 어휴, 걷잡을 수 없어요.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우리 행성은 아마 사람들 천지로 변할 겁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요. 최근에 천문학자들은 이 우주에 사람이 지배하는 행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지요.”
“그럼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이 우주에 그런 행성이 분명이 있을 겁니다.”
“가끔 UFO가 출현한다고 하는데, 그 외계인의 모습이 사람과 아주 흡사하다고 합니다.”
“아이고, 그래요. 허긴 저 녀석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지능이 아주 뛰어나서. 어떤 행성 하나 정도는 차지하고 살 것 같기도 해요.”
“아마, 그 행성은 전쟁과 폭력이 난무할 겁니다.”
“그래요. 우리가 통제하지 않으면, 아이고 난리, 난리.”
“그래서 더 사랑스럽지요. 가끔 평화를 사랑하는 모습도 보이고, 워낙 성격들이 다양해서 말이지요.”
우리는 주인의 허락을 얻고 사람을 관찰했다. 과연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먹방 프로그램이 방송되자 이 녀석이 벌떡 일어나서는 유심히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사방으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우리는 뚱뚱한 사람을 일단 주인과 격리시키고 자연 속에서 정해진 사료와 일정한 운동을 시키면서 몇 달간 지속적으로 교육을 시켰다. 사람은 우리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다시 단정한 태도로 돌아왔다. 고분고분하게 순종적으로 변했다. 녀석은 다시 주인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우리는 그 촬영 분량을 잘 편집해서 4회로 나누어 방송할 것이다. 사람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도 자꾸 먹기만 하면 언젠가는 저 사람처럼 이성이 마비되고 말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뭐든 적당히 해야지 폭식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지나친 비만으로 고통에 빠질 수가 있다. 개가 사람이 된다니, 그건 끔찍한 일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우리는 그날 저녁은 아주 간단하게 선식을 먹고 퇴근했다. 며칠 방송국에서 밤샘 작업을 했다. 아내가 보고 싶다. 내 아내는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