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유럽, 호주에 사는 ‘아직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선교 현장과 마찬가지로, 또는 역사상에 존재했던 모든 선교 현장과 마찬가지로 고도
의 정교한 선교 전략이 필요하다. 전 세계의 미래가 서구 사회를 다시 복음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헤럴드 터너(Harold Turner)가 어느 강좌에서 주장했듯이 “서구 문화가 오늘날 모든 사람의 문화가 되었으나 점점 병들어가고 있으며, 심지어 그 병든 문화가−우리의 사회 문제들을 포함하여−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를 위해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p 36
세속화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이 아니라 자기 생명이 소멸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채핀은 다음
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때’에 관해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이 언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은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무서운 생각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일반적으로 죽음 이전의 실제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큼 죽음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 이해하려고 애쓸 뿐만 아니라 그 삶을 통해 보람을 얻고,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에 공헌하고자 노력한다.-p 75
의심할 여지없이, 여러 문화권에서 선교하는 교회의 폭넓은 경험을 통해서도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중의 하나는 미국의 개인주의를 다른 문화에 강요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진작 깨달았어야 했다. 미국인과 유럽인은 무엇이든 개인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서구인들에게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초청할 때 개인적 결단을 촉구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서구 이외의 문화권에서 개인은 그들의 정체성이 집단 정체성에 묻혀버릴 정도로 가족이나 친족이나 종족이나 카스트나 집단−또는 일본의 경우처럼 회사−에 종속되어 있고, 의사 결정은 집단의 결정 과정에 의해 이
루어진다. -p. 144
사도적 사역의 비전이 회복되면 그것은 몇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무엇보다도 사도적 지도자 또는 지도자 그룹은 오지의 종족이나 도시의 직업 집단 또는 그 밖의 특정한 집단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다. 그들이 하는 사역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복음을 전해 회심하게 하고, 회심한 사람들을 양육하고, 양육된 그들을 회중으로 묶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을 위해 무장시키고, 그들에게 믿음, 생활 양식, 비전을 분명하게 가르쳐 그 사명을 알려주고 감당할 수 있게 만들고, 결국에는 그들 중 일부를 사도적 사역자로 세워 또 다른 집단에게 가도록 하는 것이다. -p. 204
라슨과 오스본에 따르면 전략 개발은 비전과 함께 시작된다. 왜냐하면 “비전이 … 신실한 회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일정한 형태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품위와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리고 비전은 특정한 사역 방식들을 제시함으로써 교회로 하여금 선교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만약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이 특정한 사역들에 대한 라슨과 오스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이 도전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라슨과 오스본이 이미 1970년대에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던 전도, 설교, 기독교 교육, 예배 분야의 상투적인 방식들이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p.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