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위에 금지가 있었다
―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20가지 불온한 것들의 목록
‘지금, 여기, 한국’에서 금지 또는 금기시되는 여러 가지 것들로부터 출발해 그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치의 맥락을 짚어보려는 의도로 기획된 『금지의 작은 역사』가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금지 또는 금기시되는 여러 가지 것들의 역사와 그를 둘러싼 규범과 문화정치를 살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금지한 자들, 금지한 집단들은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금지를 기획했을까?
그것들은 ‘현재’에도 살아 있는 것이어서 문제적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자유와 다양성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곧 우리가 누리는 ‘자유 민주주의’의 양과 질에 대한 점검이며 동시에 ‘평등’의 수준에 대한 평가도 된다. 억압이란 모두에게 똑같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고, 금기는 항상 특정한 젠더나 계급을 배제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근·현대문학사, 법사회사, 문화연구 등 서로 다른 전공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다섯 명의 저자들은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20가지 불온한 것들의 목록’을 추렸고, 그 금지된 것들의 합법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 정상·비정상과 건전·불온을 가르는 잣대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어떠한 연원을 갖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금지의 작은 역사 ― 세상이 나에게 주입한 20가지 불온한 것들의 목록』은 노조금지와 금서·검열, 반공주의 등 한국 사회의 치명적인 정치적 금압의 쟁점들과 동성애나 혼인 등의 인권 문제, 더불어 복장이나 갑질, 순수성 등과 같은 미시적인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타투(문신)나 도박, 대마와 낙태 등 제도적으로 금지된 대상들과 함께 부랑인과 청소년처럼 주체성을 배제당한 주체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저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늘 벌어지는 일상의 금기들을 세심히 살피며 ‘자유·평등의 제도적 총량뿐 아니라 개인적 분량도 늘려가는’ 계기가 되었기를 소망하고 있다.
한국에서 법적으로 금지돼 있거나 지배적인 상식의 수준에서 금기시되어 있는 어떤 일ㆍ사상ㆍ물질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통용되기도 합니다.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급진적인 정치사상과 노동조합은 물론, 페미니즘, 청소년의 성과 동성애, 피어싱ㆍ문신ㆍ대마초 같은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에 관한 것은 무척 부자연스럽고 ‘어려운’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튀는’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입니다.……‘블랙리스트’는 단지 박근혜ㆍ김기춘의 수첩에만이 아니라, 여전히 이 사회 곳곳에 있고 우리 마음에도 있는 거겠지요. 우리가 그것을 함께 극복할 때만 촛불과 새 시대의 의미는 진정한 것이 되겠지요.
그런 계기를 촛불이 만들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혹자는 여전히 ‘촛불혁명’이라 과장해서 부르지만, ‘혁명’에 값할 사회경제 상황이나 삶의 변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고교생들, 청년들, 중소기업노동자들, 영세자영업자들의 삶에 무슨 변화가 있습니까? 미투(Me Too) 운동과 남북관계의 변화 덕분에 이 사회의 ‘자유’와 ‘민주’의 총량은 조금 늘어난 듯하지만, 이 책에 나온 스무 개의 금지의 목록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 「여는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