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역사는 왜곡되기 쉽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그럴 위험성이 더욱 높습니다. 역사는 반드시 바르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법과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률가에게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무사회 정기총회에 참석하였는데, 법무사 중 일부가 법무사의 전신인 대서인(代書人)이라는 제도가 1897년에 한국에 도입되었으므로 변호사 제도보다 법무사 제도가 더 앞선 제도라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역사가 이렇게 왜곡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학문의 기원이 철학, 법학, 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라든지,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더들로라는 변호사와 함께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사도행전 24:1)’라고 쓰여 있는 성경구절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식적으로도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잘못된 주장에는 의미 없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체계적인 연구와 증거자료로써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사명감이 느껴졌습니다.
진실은 훼손되었음을 인식하는 순간 최대한 빨리 바로잡아야 합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산하 법제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하였습니다. 특정 단체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는 대전제 하에 연구를 진행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의 범위를 특정 직역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내의 유사 법조직역 전체를 포괄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 법조계는 오랫동안 일제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소수 엘리트 법조인 양성을 주도하고, 고시라는 높은 문턱을 통과한 소수 엘리트들은 그야말로 시험 한번 잘 본 덕분에 평생을 사회적 명예와 경제적 풍요를 보장받는 체제가 너무나 장기간 유지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법조계는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 국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액의 변호사비용으로 인하여 국민의 법률적 수요를 구조적으로 충족시켜 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소수 엘리트 법조인 양성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일본처럼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보완할 만한 직역이 필요하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유사 법조직역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이, 이러한 직역들 중 상당수가 관련 업무를 처리하던 공무원 출신들에게 자동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일종의 전관예우라는 특혜를 제공해 왔다는 것입니다. 일제가 남겨 놓은 부정적인 역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사회가 바뀌면 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법조인을 국가에서 선발하고 공무원의 지위를 부여하여 모든 교육을 지원하는 사법시험 제도를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제는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사회적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대량으로 배출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민의 곁에서, 국민의 수요에 맞추어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변호사들이 언제든지 대기하고 있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원칙과 예외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법률업무는 원칙적으로 변호사의 고유 업무입니다. 법률업무는 소송을 포함하여 법률자문, 각종 계약이나 법률행위가 모두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소수 엘리트 법조인 양성 시스템 하에서 변호사의 절대적 숫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만이 수행하여야 할 소송을 제외하고, 예외적으로 변호사업무의 보완재로 각종 유사 법조직역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처음에 유사직역이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변호사의 절대 숫자가 부족했고, 유사직역도 그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암묵적 공존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 유사직역에 종사하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 안에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변호사의 고유 업무 중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송까지 마치 본래 자신의 업무영역에 속해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소액사건, 조세소송, 특허소송, 노동소송 등 외국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든 영역에까지 자신들의 업무범위를 넓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변호사 배출 숫자가 급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보완적으로 등장한 유사직역은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으므로 당장 폐지하거나 통합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폐지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국민의 선택에 맡겨야 할 때입니다. 소송은 현행법상 변호사의 고유 업무 영역입니다. 소송능력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국민의 권익을 위해서도 소송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자에게 결코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본래 변호사가 모두 처리하여야 할 업무분야임에도, 변호사 숫자의 절대 부족으로 등장한 유사직역과 변호사의 업무가 중복되는 업무분야에 대해서는 이제 국민을 위하여 ‘비용과 전문성’으로 경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국민들이 같은 비용 혹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제는 대량으로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국민과 함께, 국민의 다정한 이웃으로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끔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였습니다. 과거의 소수 엘리트 법조인 양성시스템이라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국민을 위하여, 국회를 비롯한 정부기관에 대한 조직적인 로비 대신 원칙과 합리적 근거자료를 기초로 한 설득이 필요합니다. 법제연구원의 이번 ‘한국의 법률업무관련 자격사 제도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인식 하에서 오랜 조사와 연구를 거쳐 발간되게 된 것입니다. 국회를 비롯한 정부기관이 올바른 정보를 기초로 무엇이 국민을 위한 길인지를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간을 결심하였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번 연구총서의 발간에 힘써 주신 이광수 법제연구원장님과 본회 법제팀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본서의 출간을 위해 협조와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과 편집부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국민의 다정한 이웃으로서 국민과 함께, 국민을 위하여 최상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8년 9월 23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이 찬 희
서 문
이 연구는 두 개의 질문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었다. 첫 번째는 “정말인가?”라는 질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래서?”라는 질문이었다. “정말인가?”라는 질문은 某 자격사 단체의 행사에서 그들 단체가 변호사보다 10년 앞서 우리나라에 도입된 최초의 법률업무전문자격사단체라고 自讚하더라는 傳言을 듣고 나서 든 것이었다. 개화기의 문헌 등 몇 가지 자료를 조사하면서 위 단체의 自讚은 얼토당토않은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법률문서 작성은 모조리 자신들의 업무라고 생각하는 그 단체의 短見은 主客顚倒의 極致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단체의 無道함보다도 더 啞然失色케한 것은, 자신의 淵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남의 말만 믿고 삼촌을 아버지라고 믿으며 지내고 있는 우리 변호사단체의 實相이었다. 심지어 이웃 단체조차 당신네 아버지는 지금 알고 있는 삼촌이 아니라 따로 있다고 알려주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다소 거친 표현 같지만, 이러한 아연실색의 마음을 추스르고 정리한 부분이 이 연구의 제2장이다. 그 결론은 우리나라의 ‘근대적’ 변호사 제도의 연원은 1895년의 ‘代人’ 제도라는 것이었다. ‘근대적’이라는 어휘를 부가한 이유는, 시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초기에 이미 변호사의 연원으로 볼 수 있는 제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野史도 아니고 극작가의 머릿속에서 번득이는 창작의 영감으로부터 탄생한 것도 아닌, 朝鮮王朝實錄이라는 正史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外知部’가 바로 그러한 제도이다. 비록 소송을 부추기는 나쁜 존재라고 박해를 받았지만, 이들 外知部야말로 다른 사람의 소송을 위임받아 대신 수행하는 존재였으므로, 연혁적으로 변호사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법률문서만 작성하면 무조건 자기네의 前身이라고 우기는 태도보다는 더 정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름지기 ‘근대적’인 자격사 제도라고 하려면 적어도 국가가 그 자격사의 활동에 관여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外知部보다는 그나마 1895년의 ‘代人’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변호사 제도의 嚆矢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결론을 정리하고 나자 그 다음에 떠오른 질문이 바로 “그래서?”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는 어느 제도가 10년 먼저 들어왔건 10년 늦게 들어왔건 그게 무슨 대수냐는 의문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인접 자격사들이 내 집 앞마당을 차지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안방까지 넘보고 있는 지금 실정에 아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무슨 큰 허물이 될까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질문에는 매우 중요한 含意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의 含意는 우리나라의 법률업무관련 자격사 제도의 淵源이 어떤 것이며, 지금까지 어떤 변화를 겪으면서 유지되어 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두 번째 질문의 含意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첫 번째 질문의 含意는 그게 대수냐는 反問에 가로막히고 말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의 含意는 법률업무관련 자격사 職群간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변호사 제도의 사회적 효용성을 분명하게 인식시키지 못한다면 昨今에 변호사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단지 직역간의 밥그릇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 제도의 사회적 효용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어째서 국가권력은 변호사를 국가자격제로 운용하면서 변호사가 아닌 자가 변호사의 업무를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서슬퍼런 형벌권을 행사하려 드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헌법제정권력자인 국민이 법치주의와 적법절차의 원리를 헌법의 기본질서로 채택하였다는 데에 있다. 변호사가 예뻐서가 아니라 적법절차의 원리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변호사 제도의 정립이 關鍵이 된다. 국민의 사법접근권을 충실화하는 것이 변호사 제도가 갖는 사회적 효용을 키우는 방편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여기에 있다. 도토리 키재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자로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 변호사 제도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 제도의 정립을 위해 이 연구가 제시한 방안은 인접 자격사 職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안일 수 있다. 통합 대상 職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업이나 업무제휴 대상으로 거론된 職群조차 성에 차지 않는 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가 제시한 방안은 職群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사법접근권 충실화라는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해서 법치주의와 적법절차의 원리가 제자리를 찾도록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변호사단체 스스로도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연구의 원고를 탈고해서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한 이후인 2017. 12. 26.에 변호사에게 자동적으로 세무사자격을 부여하는 규정의 삭제를 내용으로 하는 세무사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해당 개정안 통과 이후의 상황이나 예상되는 변화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어차피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나기 전까지는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 자체가 제한받아온 터에 개정안이 갖는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 것인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이 상황을 새롭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다만 이 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미 세무사 자격을 부여받은 변호사들의 세무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구실이 되었던 세무사법 관련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의 2018. 4. 26. 결정은 이 연구가 지적한 문제점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출간 직전에 추가하였다. 세무사 자격 자동폐지는 적절한 개정이 아니었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동부여 폐지 개정안이 발의되기 전에 이 연구가 제시한 것처럼 변호사단체가 앞장서서 특허업무나 세무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연수 등 훈련프로그램의 개발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이제라도 조금씩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연구의 動因이 되었던 첫 번째 질문은 서울지방변호사회 94대 이찬희 회장님께서 직접 제기하신 것이다. 그 질문이 없었다면 이 연구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회원들의 실무와 직접적 관련성이 부족함에도 ‘사법제도의 발전’이라는 사회적 효용을 위해 법제연구원이라는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94대 임원진의 배려가 없었다면 이 연구가 법제연구원의 열 번째 연구총서로 햇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박중진 법제팀장과 박유선 주임, 백종성 사원은 여전히 교정과 출판의 진행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2018년 11월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 광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