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한 언니의 눈빛을 외면한 나는
심장이 찢기는 아픔을 견뎌야 했고
언니의 생에 심겨있던 꿈들을 세어보지 못한 나는
내 남은 생애 동안 어떤 꿈도 꾸지 못하는 암흑에 갇혀야 했고
언니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나는
매일 매일 가시밭길에 온몸으로 뒹굴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남들과 다른 심장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살아남은 자책감이 심장을 찢어도
그 잔인함을 견뎌야 하는 이유입니다.
_남들과 다른 심장으로 살아가는 이유 중에서, p.52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이 다가오는 아픔의 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아픔의 순간이 되기도 하는 이 아이러니한 시간을 견디는 것, 오직 견디는 것뿐이었다.
미쳐야만 살 수 있다고, 세상 사람 누구나 미칠 수밖에 없는 아픔에서 발버둥 치는 시간을 통과한다고 고요함 가운데서 들리던 음성은 나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대체 얼마나 깊은 구렁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세상을 견디는 방식은 그냥 견디는 것뿐이었다.
_내가 세상을 견디는 방식 중에서, p.77
우연히 마주친 작은 공간에서 나는 다짜고짜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 내 앞에 있음에 ‘감사하다’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비록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의 어리석은 눈이 열리고 당신을 진지하게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 ‘감사하다’는 의미였다. 오랜 시간 아팠을 것이고, 울었을 것이고, 무릎을 꺾고 자신을 쳐서 보물을 닦았기에 오늘 당신은 그토록 영롱하게 되었을 것이다.
_당신에게 사과한다 중에서, p.85
따스한 햇볕을 쬐며 많은 사람 틈바구니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렇게 맑은 날 환하게 웃을 수 없는 건
내 안에 당신이 없기 때문이다.
온종일 감옥에 갇힌 듯 고단해진 몸을 실은
기차 안 창밖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현란한 도시의 불빛들이
이토록 차갑게 느껴지는 건
내 곁에 당신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고 마음을 헤집어 놓는
닿지 않는 당신만이 있기 때문이다.
_존재 in 부재 중에서, p.102
세상에 첫발을 내딛자 길게 길게 자라
닿고자 하는 곳이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면서 욕망이 불탔다.
많은 것을 담을수록 짧아져 갔다.
열정적인 젊은 날은 가장 뜨거웠으나
회의가 찾아올 정도로 짧아졌다.
곧 방향을 종잡을 수 없게 아예 사라져버렸다.
모든 시간을 다 내어 주고 얻은
인생이 뜻처럼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길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라졌던 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한 뼘 한 뼘 자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왔다.
욕망은 사라지고 감사가 찾아 왔다.
그제야 세상을 향해 점점 길어지더니
온 세상을 완전히 감싸고 스며들어
하나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_그림자 중에서, p.212-213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너는 거기, 나는 여기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네가 쓰러지려 할 때
포기하고 싶어질 때
너의 손을 잡아 주길 원한다고
지구 반대편 멀리서도 함께하고 있다고
우리가 앓던 바람이 너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_너의 손을 잡아 주길 원한다고 중에서, p.216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무수히 많은 날 엎드려 기도했다.
가장 어두운 곳의 삶을 경험한 네가 그토록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니…….
세상에는 내가 감히 알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마음이 단단해지는 일 따위에 울며 기도한 내가 아직도 어리고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눈물이 났다.
_기도 2 중에서,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