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자 최범영 박사가 지질학을 소재로 한 본격 장편소설을 출간하였다. 소설『게스트하우스 아마릴리스』의 무대는 미래의 지질학자들을 키워내는 장소이면서 미혼모 공동체이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각박한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으로, 작가는 현대인의 쉼터 모델로 제시하기도 한다.
학자가 논문으로 말하면 되지 굳이 과학 소설을 썼느냐고 묻자 작가는 경주지진이나 포항지진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지진은 예외 없이 모두가 경험한다. 왜 일어났는지 언제 또 일어날지에 대해 대중은 궁금해 하나 깊이 이해가 할 수 있도록 학자들이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재난의 직접 피해당사자일 수 있는 국민의 알 권리를 누군가는 충족해 줘야 하듯 내가 사는 곳 주변은 어떤 지질로 되어 있는지, 우리나라에서 자원이 많은 지질은 어느 곳에 분포하는지, 한국의 지질은 어떠한가, 어디서 지진이 많이 나고 활성단층 등 지질재해요소가 어찌 분포하는지 정도는 알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검색하지만 본인이 알고 싶은 깊은 지식을 제공하는 곳이 적어 헤매는 일반인들은 국내외 저널에 아무리 좋은 논문을 있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의 벽에 막혀 포기하곤 한다. 작가는 그런 목적에 조금이라고 부합하려고 쓴 지질 소설이라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 아마릴리스』를 읽으면 여러 편의 지질학 논문을 아주 쉽게 읽은 것 같이 느껴진다.
올해 환갑을 맞은 작가에게 과학정책에 대해 물었다. 그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들어온 1980년대에는 정부의 자원수급계획에 맞추어 연구원의 업무가 정해지고 연구원은 지질조사, 광물탐광, 채굴, 선광· 제련 등 체계적인 기구로 운영되어왔지만 요즘은 기관과 개인의 평가를 통해 예산과 연봉이 정해지다보니 대학에서 해야 할 연구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연구해야하고 금방금방 논문이 나오지 않으나 국가적으로 꾸준히 해야 할 연구들(이를테면 활성단층 연구)을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적으로 막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벨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받는 과학자들을 살펴보면 누가 뭐라고 하든지, 평가를 어찌 받든지 상관없이 꾸준히 자신이 추구하는 연구에 매진한 사람들이라며 우뇌가 발달한 사람들이 과학자들의 집중력과 상상력을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하고 출간한 논문 편수로 과학자의 연봉을 정하며, 몇 년 했으니 그만 하고 다른 연구를 해보라고 늘 뒤흔들어 놓는 분위기부터 개선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하였다.
작가는 국내외 저널에 많은 논문을 낸 과학자이면서 역사학과 언어학에도 관심을 가져 조선시대 역사지진 기록을 다룬 『바람에도 흔들리는 땅』과 알타이어 방언학을 다룬 『말의 무늬』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소설『게스트하우스 아마릴리스』는 근세 한국에 지질학이 어찌 자리 잡았는지 역사의 일면을 읽는 재미도 제공한다. 소설에서나마 작가는 한 부모 가정 공동체를 꾸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과학자는 과학만 하면 된다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통념을 작가는 소설에서 반대하고 있다. 그러한 인식은 세월호 참사 문제라든지 그가 꽹과리를 들고 참가했던 촛불혁명 등을 그리면서 작가가 대학생활을 하던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의 민주화운동으로 참혹했던 상황까지 소환하며 과학과 사회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게스트하우스 아마릴리스』를 읽다보면 항상 반전의 재미를 숨기고 있어 책을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된다. 이 소설은 각박한 현대인에게 치유 기회를 주는 소설임에 틀림이 없다. 이 소설의 내레이터가 석사과정의 여학생인 것만큼이나 부드럽고 푸근하여 위안을 받는 것은 작가가 학자로서 국민에 보답코자 하는 그 애정이 소설의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