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생물학의 선구자 크레이그 벤터,
DNA 합성으로 생명을 창조하다
2010년 3월 20일. 전 세계의 신문은 현대 과학에서 가장 놀라운 업적을 소개했다. 세계 최초의 합성생명 형태가 창조된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진 분자생물학의 발견에 힘입은 이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인류는 생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하고 흥분된 국면에 다다랐다. 생명의 소프트웨어를 작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덕에 인류는 길어진 수 명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새로운 종을 고안할 지식마저 갖추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크레이그 벤터는 합성유전체학이 걸어온 길을 설명하고, 그 작업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전망한다. 벤터는 유전학에서의 핵심적인 발견과 그 자신이 인간 유전체 서열분석에서 수행한 획기적인 연구의 역사를 따라간 후에, 스스로 복제하는 합성 미생물 세포의 창조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벤터의 연구팀은 디지털화된 유전 정보와 DNA 합성 기술을 결합해 처음으로 합성유전체를 지닌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그는 생물학을 정보학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로써 생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한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송할 수 있듯이 생명 역시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특정 생명체의 디지털 생명 정보를 빛의 속도로 화성에 전송하여, 그 정보를 바탕으로 화성에서 그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생물학 기술의 새로운 시대의 여명에 우리에게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새로 숙고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 “창조할 수 없다면 이해한 게 아니다”
합성생명이란 무엇인가?
크레이그 벤터는 2010년 미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라는 세균의 유전체를 모두 인공적으로 합성한 후 다른 종의 세균에 이식시키고, 이식된 세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유전체는 제거하여 실험실에서 합성된 유전체 정보만으로 유지되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었다. 이른바 유전체의 합성을 통해 새로운 합성생명을 만든 것이다.
흔히 ‘인공생명artificial life’이라고 하면 1990년대 컴퓨터과학계에서 제시한 개념을 이른다. 즉 컴퓨터의 가상 환경 내에서 마치 유기체 생명처럼 자유롭게 진화하는 시스템을 이르는 것이다. 벤터가 제시하는 합성생명synthetic life은 기존의 디지털 인공생명과 달리 그 출발점이 디지털 세계에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세포는 DNA 부호가 RNA, 단백질, 세포의 형태로 표현되고, 이들이 생명의 물리적 성분들을 이룬다. 이처럼 생물학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합성생명은 올바른 DNA 부호를 올바른 순서로 올바른 화학적 맥락에 넣으면 현존하는 생명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벤터와 그의 연구팀은 ‘합성생명’과 ‘합성세포’를 ‘온전히 합성 DNA 염색체로 제어되는 세포들’이라고 정의했다. 즉 합성생명이란 합성된 암호문에 기반을 둔 자기 복제하는 생명이다. 리처드 파인먼은 “창조할 수 없다면 이해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벤터는 생명의 비밀을 이해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를 직접 창조했다. 컴퓨터의 디지털 부호에서 시작해 DNA 분자의 화학적 정보를 재창조했고, 그런 다음 살아 있는 세포를 창조했다. 그는 컴퓨터의 디지털 정보를 가지고 그 정보만으로 세균의 유전체 전체를 화학적으로 합성하고 조립한 다음, 그 유전체를 숙주 세포에 이식해 합성유전체로만 제어되는 새로운 세포를 창조함으로써 생명의 고리를 완성했다.
❚ 생명의 정의를 다시 세우다
분자생물학 혁명과 합성생명체의 한계
에르빈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염색체에 “한 개체의 일생 동안의 발달 패턴을 결정하는 모종의 암호문”이 있으며, 비주기적 결정aperiodic crystal 안의 원자들에 유전을 위한 충분한 정보가 담겨 있을 것이라 했다. 벤터는 1990년 연구팀과 함께 살아 있는 한 세포의 유전체를 최초로 해독했고, 그런 다음 인간의 유전 암호문을 해독하였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그는 슈뢰딩거가 말한 ‘인간 생명의 암호를 담고 있는’ 비주기적 결정의 놀라운 내용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벤터는 슈뢰딩거가 비주기적 결정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기술한 유전자의 실체를 규명하여, 처음으로 생명체의 유전체에 들어 있는 정보를 밝혀냈다. 또한 세균의 유전체를 화학적으로 합성하여 이것이 실제 세균 유전체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것도 밝혀냈다.
벤터가 창조한 합성유전체에 담겨 있는 생명 정보는 오직 기존에 살아 있는 생명체의 활동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즉 이미 존재하는 세균의 유전체에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한 것을 화학적으로 복사한 것에 불과할 뿐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생명을 전송하다
생물학적 순간이동의 가능성과 전망
벤터는 자신이 합성 생물을 창조함으로써 생물학을 정보학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으며,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송할 수 있듯이 생명 역시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화성에 DNA 기반의 생명체가 있다면 화성 탐사선이 이 생명체의 유전체서열을 획득해 그 정보를 지구에 전송함으로써 화성의 생명체로 지구에서 그 유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공상과학 소설의 이야기 같지만, 벤터는 이러한 연구가 궁극적으로 맞춤형 의료 개발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독감이 유행할 때 백신을 분배하는 일에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면 현재 몇 개월이 걸리는 백신 생산과 전달 시간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 실제로 벤터의 연구소와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합성생물학과 세포 기반 제조를 이용해 5일 만에 새로운 백신을 생산했다고 밝혔다. 벤터의 기술을 이용하면 세균을 공격하는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파지 요법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도 단축할 수 있다. 개별 질병과 개별 환자에게 맞는 파지를 신속하게 설계하고 증식시킬 수 있다.
벤터와 그의 연구팀은 현재 디지털 생명 전송 장치를 만드는 시도를 보완하기 위해 수신 장치를 만들고 있다. 즉 전송된 DNA를 정보를 조합해 재생산하는 장치이다. 현재 이 장치는 ‘디지털 생물학 컨버터’, ‘생물학적 순간이동기’ 등의 가칭으로 불린다. 이른바 ‘생명의 3D 프린터’라고 할 수 있는 이 장치가 완성된다면, 궁극적인 맞춤 의료가 가능할 뿐 아니라 인간의 신체적․인지적 기능을 향상하고 식량, 에너지,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