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큐레이터를 탑재한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
아직도 음반에 빠져 있는 바보들을 위한 뜨겁고 유쾌발랄한 고별사!
의뭉스러운 편집자가 보내는 엉큼한 퇴짜 편지들을 통해 인간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만든 세계문학사의 걸작들을 기발하게 오마주한 『망작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가 ‘음악편’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음반 유통사 또는 제작사의 담당자가 ‘당신이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를 줄줄이 읊어댄다.
이제는 문자 인식을 넘어 음성 대화까지 가능한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스마트 시대에 쉽고 빠르고 화려한 최신 콘텐츠에 밀려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비단 (종이)책만이 아니다. 책보다 앞서 뉴미디어에 속절없이 자리를 내주고 밀려난 것이 바로 음반이다. 복고-아날로그 유행과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도 보이지만 어디 예전의 영화에 비하랴.
『망작들 3: 당신이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는 그래서 그 자체로 난센스인지도 모른다. 음반을 만들지 않는, 음반을 찾지 않는, 음반을 사지 않는, 음반을 틀지 않는 시대에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라니. 하지만 너무 뻔뻔한 난센스라 도리어 어디 뭐라 하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 싶다.
무엇보다, 임의 재생과 무한 추천의 시대에 아직도 음반을 만드는 바보들에게 바친다. 무한 추천과 임의 재생의 시대에 아직도 음반을 사는 바보들에게 바친다. 이제 성가신 날들에 작별을 고하고 편리한 스트리밍의 천국에 오래 사시길 바란다. 9쪽 / ‘아직도 음반을 사는 바보들에게’
저자는 아직도 음반을 만들고 사는 바보들에게 사뭇 경건한 헌사를 보낸다. 그러고는 그들이 아마도 애지중지할, 어쩌면 차마 비닐 포장마저 뜯지 못한 채 고이 보관하고 있을 음반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낼 수 없는 음반’이라며 퇴짜를 놓는다. 퇴짜 맞는 음반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시대(1960~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지역(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 일본, 북유럽 등등), 장르(록, 메탈, 재즈, 팝, 일렉트로닉, 힙합, 가요 등등) 불문이다. 이유도 다양하다. 팀명, 제목, 작곡 스타일, 음반 콘셉트, 가사, 형식, 길이, 커버 이미지, 녹음 환경, 심지어 뮤지션에 대한 질투까지, 현실적이거나 정서적이거나 윤리적인 온갖 이유를 들어 음반 제작 또는 유통을 거부한다. 어쨌거나 결국은 돈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언어예요. (…) 당신이 만들어낸 뜻도 없는 언어라고요? 언어를 만들려면 J. R. R. 톨킨 씨께 먼저 여쭙고 오세요. 뜻이 없는 언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 말입니다. 특히나 돈을 벌어야 하는 저 같은 사람한테는요. (콘서트에서 따라 부를 만한 가사는 언제 나오나요.) 113~114쪽 / Sigur Rós <( )>
해피엔딩, 해피엔딩, 해피엔딩!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32쪽 / The Antl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