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암蒼暗 이삼만李三晩(1770/영조 46~1847/헌종 14)은 현 전라북도 정읍시 부전동/부무실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서도에의 뜻을 세워 글씨 공부에 열중하며 성장한 다음, 대구 약령시 중국인 당재상에게 처음 그의 글씨가 알려지면서 그 서도가로서의 이름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장년기에 들어, 그의 가문이 오랜 동안 세거해온 전주로 거처를 옮겨, 전주 옥류동 한벽당 근처에 머물며 서도에 부단히 정진하여, 노년기에는 마침내 서도가로서의 득필得筆의 경지 이르게 되었다.
말년에는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골/공동 마을에 고요히 은거하면서, 자신의 서도 이론을 확립·정리하고, 자신의 유명한 서체인 ‘유수체流水體’를 완성하였으며, 서거 후에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척동리 선산에 그의 필생의 연인 ‘명창 심녀’와 함께 잠들어 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나무를 하고 약초를 캐어다 파는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삶 속에서도, 서도/서예로 향하는 뜻을 추호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추구하여, 마침내 자신의 서도와 서예를 완성하였으며, 그가 추구해 나아간 서도/서예의 길은 그 이전까지 중국 서도/서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서도/서예를 우리 나름의 자주적인 서도/서예로 전환하는 ‘민중적-민족서도民族書道’의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놓는 큰 업적을 이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