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수리공’ 김정선의 첫 소설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
『동사의 맛』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소설의 첫 문장』의 작가 김정선의 첫 소설. 앞서 적은 책들의 저자이면서 스스로 소개하듯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혹은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온 교정 교열자인 김정선이 우울감에 빠져들 때마다 펼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리뷰와 자신의 삶이 응축된 이야기를 뒤섞어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그래서 ‘리뷰소설’이라는 이름을 단 이 원고가 만들어졌다.
사실 김정선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로 이름을 얻기 한참 전부터 자신이 읽은 책들의 서평을 써왔고 그의 글을 각별히 여기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그는 2009년부터 수년간 인터넷서점에서 운영하는 서평 블로그에서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고, 그때 적은 글들을 추려 2013년에는 『이모부의 서재』를 임호부라는 필명으로 내기도 했다. 교정 교열자로 일한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오랜 시간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간혹 건강이 나빠져 글쓰기가 힘들었던 시기를 빼면 항상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이 책은 뛰어난 독서가이자 서평가이며, 섬세한 솜씨의 문장 수리공인 김정선의 새로운 도전이며, 그의 진수가 담긴 특이점이다.
우울한 밤들에 읽은
10편의 셰익스피어 희곡
그는 일하는 시간에는 책을 만들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 삶을 산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오래해온 일과가 있다. 심장 수술 이후 뇌병변 장애를 얻은 어머니의 간병이다. 10년도 훌쩍 넘는 짧지 않은 기간, 그는 여타의 일들을 뒤로 하고 홀로 어머니를 모셨다. 한편 오래 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지병인 ‘탈장’과도 싸웠다.
내 몸속 장기 중 하나는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눈물을 흘리는 대신, 끊임없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애쓰곤 했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 장기가 제 위치를 벗어나는 걸 느끼고 손끝을 이용해 몰래 몸 안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해야 했다. (…) 내 몸속 장기 또한 내 팔다리처럼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해야 하는 건 결코 달가운 경험이랄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 몸속 장기가 흘린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실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대신, 몸 밖으로 밀고 나오려고 애쓰는 부분만이라도 잘라내버릴 수는 없을까, 고민했었다. 내 손이 아주 예리한 날을 가진 칼이 되는 꿈을 꾸곤 했던가. _36~37쪽
그가 시달려야 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울감에 깊게 빠져드는 날들. 일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만드는 우울이 그를 덮쳤다. 여기에 더해 안구건조증마저 심해지자 결국 그는 당분간 교정 교열 일을 쉬겠다고 일터에 통보하고 거의 난생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