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한국정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매번 갖게 되는 느낌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정치는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뒤돌아보면 한국 정치는 안정적으로 민주주의의 공고화의 과정을 밟아왔고,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불만과 저항이 표출되지만 대통령 탄핵과 같은 정치적 위기도 헌정적 질서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되어 왔다.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것 같으면서도 지속성을 갖는 관행이 존재하고, 변혁이 불가능해 보일 때도 어떤 계기가 마련되면 예상치 못한 큰 변화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한국정치는 변화무쌍해서 변화를 따라잡기가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고,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 변하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한국정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이고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한국정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졌다.
이 책은 역사적 전개과정에 유독 주목하거나 혹은 제도적 특성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주요 행위자, 기구, 제도, 사건 등을 중심으로 한국정치를 설명하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통치구조, 국회, 정당, 선거, 행정부, 사법부, 지방정부, 민주화, 시민사회와 정보화, 통일과 북한 등 10개의 주제를 통해 한국정치의 여러 측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한 것은 기존의 접근법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한국정치를 기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 정치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동안 언론이나 일반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한국정치의 주요 행위자는 대체로 대통령, 국회, 정당 등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정치는 이들 이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예컨대, 사법부는 정치와 무관해 보이지만,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커졌다. 중앙정부의 역할에만 주목하기 쉽지만 지방자치의 진전과 함께 지방정부 역시 우리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여러 차례의 촛불집회에서 보듯이 전통적 정치 참여의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북한 역시 남북 관계, 국제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국내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왔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한국 정치에 영향을 미쳐 온 다양한 행위자, 제도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특성들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자 했다.
둘째, 이 책에서는 비교정치적 시각에서 한국정치를 논의하고자 했다. 한국정치는 비교정치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지론이다. 한국정치를 한국의 고유한 역사적 경험이나 문화적 특성에서 찾게 되는 경우, 보편적이고 비교 가능한 범주에서 우리 정치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 정치가 현재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비교정치적 시각에서의 논의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 가능한 열 개의 주제를 선정하여 논의했다.
셋째, 이 책에서는 종합적인 시각에서 한국 정치를 이해하도록 했다. 우선 역사적인 전개 과정에 대해 서술했다. 오늘날의 한국 정치가 형성되어 온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제도적, 법적으로 주어진 권한, 역할, 기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역사적 과정과 제도적 역할 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온 운영과 작동의 특색에 대해서 논의했다. 즉, 역사, 제도, 운영이라는 세 가지 차원이 종합된 관점에서 한국정치의 특성과 변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이 책은 한 학기 강의용 교재로 기획되었다. 이 책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통치구조, 국회, 정당, 선거 등 4개 장은 다뤄야 할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한 주 이상의 강의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적지 않은 아쉬움이 남았다. 무엇보다 시간의 부족으로 그 사이 우리 정치학계에서 이뤄낸 수많은 연구 성과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또한 한국정치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나의 학문적 역량의 부족함도 절감했다. 여러 가지 아쉬움과 부족함이 있지만, 일단은 첫걸음을 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부분은 차후 보완해 나갈 것이다.
이 책의 막바지 작업을 했던 이번 여름은 정말 더웠다. 언론은 이 더위를 111년 만의 폭염이라고 했다. 에어컨의 찬바람이 싫어 켜고 끄기를 반복하며 글을 썼지만, 그래도 이 책을 쓰는 작업은 즐거움이었고 제법 흘린 땀도 상쾌했다. 특히 이 책을 쓰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했던 주제나 잘 알지 못했던 내용에 대한 선배, 동료, 후배 연구자들의 훌륭한 연구 성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이 책을 내면서 오랫동안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던 큰 숙제를 마무리한 기분이다.
이 책이 한국정치의 다양성과 역동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정치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매우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이 책 속의 부족한 점에 대해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부탁드린다.
유난히 더웠던 2018년 여름 염천(炎天) 속
학송재(壑松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