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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인가 정철인가

유성룡인가 정철인가

  • 오항녕
  • |
  • 너머북스
  • |
  • 2015-04-27 출간
  • |
  • 286페이지
  • |
  • ISBN 9788994606361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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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장 400년 엇갈린 기억

2장 서애와 송강의 일생

3장 선조 23년? 24년?

4장 추국청이라는 공간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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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에 벌어진 조선시대 가장 큰 옥사 중의 하나였다. 정여립 모반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이발이라는 사람이 연루되었는데 그의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감옥에 갇혀 신문을 당하다 죽고 말았다. 여든이 넘은 노인과 어린아이가 죽었으니 지나치게 혹독한 국문이라는 여론의 지탄이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추국청의 책임자인 위관 역시 지휘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사건 당시 위관이 정철인가? 유성룡인가?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는 그 추적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정철이었는가, 유성룡이었는가?
4백년 묵은 기억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

“몇 년 전, 나는 어떤 역사학자와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역사대중화를 이끈다는 유명한 사람, 이덕일이었다. 막상 논쟁이 시작되면서 나는 아차, 싶었다. 논쟁은 2합(合)을 넘기지 못했다. 생산적인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논쟁은 종결되었다. 논쟁의 성과나 가치에 대한 순진한 기대도 그때 접었다.”

그러나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은 이 스쳐지나간 논쟁에서 소중한 역사학의 논제를 건져 낸다. 기축옥사의 어떤 기억을 둘러싼 변주.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에 벌어진 조선시대 가장 큰 옥사 중의 하나였다. 정여립 모반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이발이라는 사람이 연루되었는데 그의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감옥에 갇혀 신문을 당하다 죽고 말았다. 여든이 넘은 노인과 어린아이가 죽었으니 지나치게 혹독한 국문이라는 여론의 지탄이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추국청의 책임자인 위관 역시 지휘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사건 당시 위관이 정철인가? 유성룡인가? 이 책은 그 추적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2009년 논쟁 당시,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그 사건이 1590년(선조 23) 정철이 위관이었을 때라 주장하였고, 이 책의 저자인 오항녕은 1591년(선조 24) 유성룡이 위관이었을 때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덕일의 반론과 오항녕의 재반론으로 이어진 논쟁 이후, 저자는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덕일이 내세운 주장의 연원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게 된다. 400년이 넘은 이력을 가진 주장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발의 노모와 아들이 죽은 것은 선조 24년이라고 아무런 의심 없이 생각했던 것을, 이덕일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순히 그가 잘못 알았다는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무려 400년 동안 지속되었고 미묘하게 기억이 뒤틀려온 배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기록과 기억의 변주가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기축옥사에 대한 400년의 엇갈린 기억, 그 추적 과정에 대한 기록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기축옥사! 게다가 장원급제하여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주옥같은 가사를 남겨 한국 문학사에서 우뚝 선 문장가이면서, 관찰사로 민생 안정에 주력하였던 청백리 송강 정철.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난국을 수습하였으며 그 7년의 경험을 『징비록』이라는 책으로 남겨 후세를 경계한 경세가였던 서애 유성룡. 선조 연간의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두 분이 사건의 당사자로서 함께 겪어야 했으나, 두 분이 돌아가신 뒤에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엉키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엉킨 기억의 당사자가 되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사태에 대한 탐구이다.

이 엇갈린 기억의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광해군일기』 등의 연대기 자료는 물론 관련 인물들의 문집을 세세히 검토했다. 『기축록』 등 기축옥사에 대한 야사도 빼놓지 않았다. 나아가 그 사건 이후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도 추적하였다. 가까이는 지금부터 100년 전 매천 황현의 기억에서, 300년 전의 이현일, 박광일 그리고 400년 전 안방준의 기억과 기록까지. 이 기억의 변주는 몇 굽이를 돈다.
사건 발생에서부터 선조 후반까지 정철이 위관이었다는 주장(이하 ‘정철 위관설’)은 제기되지 않았다. 광해군 초반에 ‘정철 위관설’이 처음 제기되었다가 반박을 받고 잠복했다. 인조반정 이후 이발, 정철 등의 복권으로 정리되는 듯하다가 숙종 초반 예송논쟁 이후 다시 제기된다. 이 역시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으로 다시 ‘유성룡 위관설’로 바뀌었다가 기사환국으로 장희빈이 왕비가 되고 남인이 진출하면서 다시 ‘정철 위관설’이 고개를 들었다. 장희빈이 쫓겨나면서 ‘정철 위관설’은 단지 일각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이덕일의 입을 빌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유성룡 위관설’과 ‘정철 위관설’의 실제와 이 책의 결론은?

기억의 차이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역사학의 아포리아다. 그러나 역사학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다.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과거를 찾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게 역사학이란 “해당 사건에 대한 증언, 관찰, 의견, 정황을 다시 따져보면서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증거와 추론을 제시하는 힘겹지만 재미있고, 지루하지만 고무적인 결과를 남겨주는 매력적이고 숭고하기까지 한 과정”이며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밝히는 ‘유성룡 위관설’과 ‘정철 위관설’의 결론 및 의미는 이렇다.

첫째, 이런 기억의 혼란 또는 변주는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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