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상처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우울증, 자살충동, 외상 후 스트레스 등을 겪은 후 문학치료사가 되기까지 치유자는 어떻게 자기 상처를 치유하는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는 힘은 내가 입은 상처를 이해할 때 깊어진다. 미국의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이를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설명한다. 한때 저자 역시 우울증, 자살충동, 외상 후 스트레스 등을 겪으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 이후 10년 넘게 문학치료사로 활동하면서도 저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했다. 그것은 (고)마광수 교수와 관계가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마광수가 아끼던 제자였고, 그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았으며 심지어 죽음까지 기도했다는 사실을 차마 고백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한국인이 가장 혐오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마광수였기 때문이다.
문학을 사랑했던 마광수와 저자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하지만 1999년 겨울, 마광수 교수의 재임용을 반대하는 학내 세력과 갈등을 벌이면서 평온하던 두 사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1992년,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에 이어 존경하던 스승의 정신적 추락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큰 충력에 빠진다. 당시 수줍음 많던 문학도였던 그는 ‘마광수 교수 복직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으면서 스승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 역시 자신을 향한 학내의 집단적 폭언과 따돌림을 겪으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빠진다. 이 일로 마광수와 저자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환멸에 몸서리쳐야 했다. 급기야 마광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극단의 상황까지 내몰렸다.
한 사회나 집단이 가하는 심리적 폭력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만큼 강력하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마광수와 자신이 겪은 고통이 ‘개인적 상처이자 동시에 사회적 상처’라고 말한다.
“어떤 상처도 존중받아야 한다.”
-상처 받은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학내사태를 겪으면서 저자 역시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2001년, 저자는 생명과도 같던 문학을 포기하고 충북 고향집에서 은둔의 시간을 보낸다. 상처뿐인 서울을 떠나 시골집에서 보낸 시간은 고통과 치유의 반복이었다. 환청에 시달리며 식칼을 들고 미쳐 날뛰던 일, 자살을 실행하려고 몇날 며칠 가족들 몰래 장소를 물색한 일, 우울증에 빠져 무기력하게 시간을 허비한 일 등 당시의 절박했던 심정을 ‘칼로 자기 존재를 잘라내는 끔찍한 경험’으로 저자는 기억한다. 이렇듯 상처에 허우적거리던 그를 치유한 것은 좋은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책이었다. 특히 운명의 책 『비블리오테리피』(조셉 골드 지음)를 만나면서 그는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책으로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독서치료의 소명을 발견한 것이다. 상처에서 희망으로 그의 삶이 바뀌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후 저자는 문학과 심리학, 철학을 통합한 문학치료사로서 자기만의 소명을 지금껏 실천해가고 있다.
그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스캇 펙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우리는 누구나 상처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든 꽃에는 미풍조차 고난일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상처는 주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어떤 상처라도 존중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인 저자는 자신의 상처와 치유의 경험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이렇게 다짐한다.
‘나의 상처는 다른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소중한 경험으로 쓰일 것이다.
나의 치유는 다른 이를 일으켜줄 소중한 양분으로 쓰일 것이다.’
“당신이 살아낸 시간이 살아갈 희망이다.”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치유의 한마디
저자는 한 기관의 도움으로 공시생들에게 무료 상담을 해준 경험을 소개한다. 100명이 넘는 공시생의 아픈 사연을 접하며 상담가로서 심리학의 한계를 절감한다. 저자가 목도한 공시생들의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짧지 않은 수험생활로 심신이 지쳐 있었고, 대개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고시공부보다 더 힘든 것은 불확실한 미래였다. 이런 차가운 현실을 상담의 현장에서 보면서 저자는 개인의 심리는 사회적 산물이기도 하다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상처 입은 마음은 어떻게 치유되는가? 저자는 항상 이 질문에 답하는 중이다. 그는 책과 문학에 많이 익숙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책과 문학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지금까지 문학치료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의 현장에서 만났고, 그때마다 스승 마광수에게 배운 문학으로 카타르시스를 얻는 법을 알렸다. 함께 문학작품을 읽고 삶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다보면, 아픈 사람들도 어느새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할 때가 많았다.
아픔의 순간이든 기쁨의 순간이든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삶을 희망한다. 저자는 힘든 시대에 책이 지닌 힘을 믿는다. 책이 아니라면 타인의 마음을 느낄 수 없고, 또 상처 받기 쉬운 삶을 살아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 곁에 책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고.
갈수록 사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처 입은 영혼에서 문학치료사 되기까지 저자가 겪은 상처와 치유의 고백이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큰 힘이 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