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길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길을 지납니다. 문을 나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어 학교에 가고, 버스를 타고 도로 위를 달려 회사에 가지요. 늘 마주치는 풍경, 비슷비슷한 길인 것 같지만 가만 보면 그 안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엄마와 처음 유치원에 가는 아이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사뿐사뿐 걷는 길,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길, 힘든 일과를 마치고 무거운 걸음으로 느릿느릿 집으로 향하는 길……. 같은 길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길이 있어》에는 솔이네 가족이 만나는 길이 담겨 있습니다. 첫 장을 펼치면 솔이가 어딘가 신나게 뛰어가고 있어요. 노란 유치원 버스가 서 있는 걸 보니 이제 막 하원을 한 모양이에요. 팔을 크게 휘저으며 한달음에 도착한 곳은 바로 친구들이 있는 공원이에요.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망토를 휘날리며 놀고 있고 솔이도 질세라 풀쩍 뛰어올라요.
아빠의 하루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시작합니다. 아침 출근길 도로는 늘 붐비지요. 아빠는 차 안에서 동동대며 차가 움직이길 기다립니다. 하지만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도로 가득 늘어선 차들은 꼼짝을 하지 않아요. ‘빵- 빵-’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일터. 아빠는 소방서에서 일해요. 웽웽웽, 불자동차 소리와 함께 아빠의 하루는 휙휙 빠르게 지나갑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엄마가 큼지막한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어요. ‘오늘 저녁은 무얼 할까?’ 엄마는 식구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봅니다. 가판에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 꽃을 파는 상인, 트럭을 세워 두고 과일을 파는 아저씨 들로 시장 길은 왁자합니다. 엄마는 장바구니 한가득 재료를 담아서 집으로 향해요. 벌써부터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고 집집마다 딸깍딸깍 불이 켜지기 시작해요. 솔이네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오늘은 솔이 생일이거든요. 먹음직스러운 케이크와 음식들이 놓인 상 앞에 고깔모자를 쓴 솔이와 누나가 앉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모두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었어요. 그렇게 솔이네 가족들의 마음도 한자리에 모입니다.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 일상의 풍경,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
솔이네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하루를 보냅니다. 솔이는 유치원생으로, 누나는 학생으로, 아빠는 소방관으로 저마다의 길을 걷지요. 이어질 것 같지 않던 가족의 길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한 곳에서 만납니다. 아늑한 ‘집’에서 말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비슷하지요. 낮에는 학교에서, 일터에서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지만 해가 저물녘이면 집에 돌아와 ‘가족’으로 함께 모여요. 그리고 비로소 하루가 끝이 납니다.
현대 사회의 가족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고, 서로 관여하지 않으려는 건 좋지만, 그만큼 거리도 멀어지고 어딘지 모르게 선과 경계가 있는 듯하지요. 가족보다는 친구, 직장 동료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이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갖는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랍니다. 여전히 내가 마음 놓고 기대고 쉴 수 있는 곳은 가족의 품 안이지요. 《길이 있어》에서 솔이네 가족이 그런 것처럼 말이에요.
작가는 담담하게 솔이네 가족의 일상을 보여 줍니다. 솔이네 동네, 아빠가 일하는 소방서의 모습, 할머니가 두런두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공원 등.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을 소박하고 정갈하게 그렸어요. 익숙한 장면이지만 그림으로 마주했을 때 전해지는 느낌은 새롭습니다. 차분하면서도 꼼꼼한 손길로 표현한 인물과 정경, 무엇보다 그림을 이루는 따뜻한 색감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가슴 한편으로 포근한 기운이 차오르지요. 하루쯤 나를 채근하던 일거리, 걱정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나를 위로할 그림책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요? 하루 종일 내가 걸었던, 서 있었던 길을 생각하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