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편향성을 정확히 인식하면
편향성은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당신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군요. 당신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뿐 아니라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아요.” 대화 도중 상대방이 당신에게 위와 같이 비난 섞인 평가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맞아요. 당신 말대로 나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에요. 내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아요.”라고 순순히 인정할까? 단언하건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신뿐만이 아니다. 아마도 성별과 연령, 인종과 국가를 뛰어넘어 지구 위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당신은 편향된 사람이다’라는 식의 평가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어떨까? ‘자신이 편향된 사람임’을 강하게 부인하는 사람들 대다수, 아니 그들 중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사실상 모든 사람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주관적이고 편파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의 편향되고 지극히 주관적이며 공정하지 못한 사고를 비판했던 ‘상대방’ 또한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편견・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편견・편향성은 우리가 일상의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뿐 아니라 면접・인사・승진・업무 지시 및 평가 등 조직 생활 거의 모든 측면에 은밀히 스며들어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탐나는책에서 번역 출간된 책 『우리 뇌는 왜 늘 삐딱할까?』는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적 편견과 편향성의 실체를 정확히 간파하고, 한발 더 나아가 우리의 결정이 편견・편향성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돕는다.
저자 하워드 J. 로스는 이 책 『우리 뇌는 왜 늘 삐딱할까?』를 통해 모든 인간이 지닌 주요한 요소이자 습관 중 하나인 편견・편향성의 개념과 실체를 날카롭게 파악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일상의 요소요소에 은밀히 스며들어 우리의 의식과 행동, 삶을 지배하는 편견・편향성의 복잡다단한 모습과 실태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탐구한다. 또한, 그는 편견・편향성이 지닌 때로 치명적이기까지 한 부정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긍정적이며 삶의 ‘위험 탐지기’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내는 긍정적인 요소도 세밀히 짚고 넘어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 은밀히 감춰진 편견・편향성의 매우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의 부정성은 줄이고 긍정성은 늘려가는 방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독일 음악을 들으며 쇼핑하는 고객이 프랑스 와인보다
독일 와인을 더 많이 구매하는 이유
일상속에서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자주 편견・편향성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까? 이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실험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1. 와인 판매 실험 — 영국 레스터 대학 심리학자 에이드리언 노스(Adrian North)와 그의 동료들은 음악이 사람들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들은 평범한 마트 진열대에 프랑스산 와인 4병, 독일산 와인 4병을 진열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열대 위치가 고객의 선택에 영향을 지치지 않도록 수시로 병의 자리를 바꾸어주었다. 와인병 옆에는 가격과 당도, 생산지를 표시하는 나라들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아코디언 음악과 독일 비어켈러(Bierkeller) 음악이 날마다 번갈아 가며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게 했다.
어떤 판매 결과가 나왔을까? 놀랍게도, 프랑스 아코디언 음악이 나오는 날에는 전체 판매량 중 프랑스 와인이 무려 76.9퍼센트나 팔렸다. 반면 독일 비어켈러 음악이 나오는 날에는 독일 와인이 73.3퍼센트나 팔렸다. 연구진은 이후 그 실험에서 와인을 산 44명의 쇼핑객에게 와인을 살 때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흥미롭게도, 전체 구매 고객 중 14퍼센트만이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음악이 와인 구매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사람은 44명 중 오직 한 명뿐이었다.
2. NBA 심판의 공정성 실험 — NBA 심판은 과연 얼마나 공정할까?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 저스틴 볼퍼스(Justin Wolfers)와 코넬대 경제학과 대학원생 조지프 프라이스(Joseph Price)는 1991년에서 2003년까지 12년 동안 치러진 경기를 분석했다. 그 수많은 경기에서 선언된 60만 건이 넘는 반칙을 심층 분석한 것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백인이 심판을 맡을 경우 흑인 선수에게 반칙을 선언한 비율이 백인 선수에게 한 것보다 눈에 띄게 높다는 걸 발견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어땠을까? 흑인 심판 역시 흑인 선수보다는 백인 선수에게 반칙을 선언한 비율이 높았으나, 백인 심판이 흑인 선수에게 반칙을 선언하는 것만큼 편파적이지는 않았다.
볼퍼스와 프라이스는 박스 스코어의 스포츠 데이터도 분석했다. 그들은 선수들의 포지션, 개인 통계, 뛰는 시간, 올스타 지위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요소들을 세밀히 분석했다. 그런 다음 각 그룹이 코트에 있는 시간을 검토하고, 홈 경기와 원정 경기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들은 다른 인종의 심판이 투입되었을 때 선수들의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턴오버 점수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상관관계도 알아냈다. 이 실험 후 그들은 “경기에서 자신과 다른 인종의 사람이 심판을 볼 때 선수들의 활약상이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3. 대학원생 실험실 조교 채용 실험 — 예일 대학 생물학 교수 조 한델스만(Jo Handelsman)은 고용 시 성차별이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한델스만은 3개의 사립대학과 3개의 공립대학의 과학 교수들에게 실험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대학원생들을 냉철하게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모든 교수에게 한 페이지로 요약된 지원자 이력서를 보냈다. 이력서에는 지원자가 비록 장래는 촉망되지만 아주 뛰어나지는 않은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같은 이력의 지원자를 놓고 일부에는 ‘존’이라는 이름을, 나머지에는 ‘제니퍼’라는 이름을 붙였다.
며칠 후 127명의 교수가 답을 보내왔는데, 그것을 분석하자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곤혹스러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1~7점(가장 높은 점수가 7점)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해달라는 연구진의 요청에 ‘존’은 모든 능력에서 평균 4점을, 제니퍼는 평균 3.3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원자를 고용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제니퍼’보다 ‘존’을 고용하겠다는 답변이 훨씬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단지 고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기꺼이 ‘존’의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답변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연구팀은 교수들에게 지원자들을 고용할 경우 지급할 연봉을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존’의 이름이 붙은 지원자에게는 평균 3만 328달러의 연봉이 잠정 책정되었고, ‘제니퍼’ 이름이 붙은 지원자에게는 평균 2만 6,508달러가 책정되었다. 이 실험 결과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여자 교수들의 답변이 남자 교수들의 답변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긍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상의 ‘위험 탐지기’로 작용하는 편견・편향성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 인간이 지닌 편견・편향성은 온통 부정적이기만 할까? 그러므로 마치 농작물 사이에서 잡초를 뽑아내듯 완전히 뜯어고치고 없애야만 하는 습관일까?’라는.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상황에 따라 편견・편향성은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가진 습관에서 편견・편향성을 완전히 뿌리 뽑는다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을 정도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학자 조지프 레독스(Joseph LeDoux)는 편향성을 우리가 생각할 기회를 얻기 전에 사람이나 상황의 안전을 결정하는 무의식적 ‘위험 탐지기’로 불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주 먼 옛날 당신이 강에서 물을 긷는 사람과 마주쳤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상대방이 적인지 당신 편인지 지체 없이 결정해야만 한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당신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고 자칫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을 우리는 진화 과정에 자연스럽게 학습했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널 때 위험에 대해 ‘편향적’이 되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이 길에서 공을 차며 뛰어가거나 걸어서 학교에 갈 때 커브 길을 만나면 무조건 멈추라고 이야기한다. 난로가 뜨거운지 뜨겁지 않은지 판단하도록 가르칠 때도 그런 식으로 한다. 성급하게 덥석 만지지 말고 조심스럽게 만져보도록 반복해서 가르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은 우리 유전자 안에 각인되어 있으며, 우리 안의 편향성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약 우리가 편향성이 전혀 없는 세상에 산다고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 그가 친구인지 적인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천차만별의 수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일일이 올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 안의 편견・편향성은 위험 탐지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다고 저자는 귀띔해준다.
긍정적인 편견·편향성이 원천적으로 빠져 있다면 위험한 상황에서 적절하고도 지혜롭게 대응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렇듯 편견·편향성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