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명상과 함께하는 운동이다
어느 절 스님의 이야기일까. 무대는 국내가 아니다, 8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간 보스턴 문수사 회주 도범스님의 골프 입문기다. 보스턴 사람들은 피부색과 상관없이 성직자와 골프 경기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특히 명상하는 수행자와 골프 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마음을 비우고 겸허해야 하며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운동인 골프를 불교와 관계가 깊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불교는 명상을 통해 뇌를 쉬게 하는 종교다. 운동 중에 참선, 정신집중, 힐링, 요가, 호흡법 등과 관련해 질문을 많이 한다.
미국은 동네마다 퍼블릭 골프장이 있다. 노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회원권을 제공해 어느 때나 골프장에 나가서 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혼자 가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치기도 하고, 같이 칠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치기도 하며, 오전에 나가서 치고 오후에 또 나가도 회원권 사용이 허용된다. 미국은 캐디가 없고, 카트를 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카트를 타지 않고 골프 가방을 개인 카트에 싣고 밀거나 끌면서 걷는 노인도 많다.
골프 치는 시간은 어떤 사람과 한 조가 되어 같이 치느냐에 따라서 약간 차이가 있는데 평균 네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6~8킬로미터 정도를 걸으니 건강은 저절로 지켜진다. 개인의 스윙 속도는 별 차이 없이 한 타에 평균 3초가량 걸린다. 핸디 80타를 기준으로 하면 240초이며 그래서 약 4분 정도가 든다. 공을 치기 직전에 한두 번 연습 스윙까지 합하면 15초에서 30초 정도 걸린다. 30초를 80타에 곱하면 전체 2,400초, 즉 40분이 걸리고 그 외엔 여백이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경기해도 각자 친 공을 쫓아가므로 항상 서로 떨어져 걷게 되는 운동이다. 다만 매 홀 시작하는 티박스와 마무리하는 퍼팅 그린에서 모일 뿐이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해야 하는 경기다. 결국 4분에서 40분을 치기 위해 네 사람의 네 시간이 소요되며, 그 외에는 공백이기에 스님은 골프를 명상과 함께하는 운동이라고 부른다.
마음을 비우고 즐기면 보이고, 들리고, 느끼게 되나니…
스님은 골프를 치면서 이겨야 할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임을 스스로 터득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도범스님의 골프예찬론을 들어보자.
“허욕을 버리기 위해 마음을 비웠다고 하면서 무언가에 연연해하거나 집착하는 일은 다반사다. 설령 비웠다 해도 그 공간이 비어 있지 않고 다른 생각으로 차 있으며 공을 치는 그 순간도 딴생각을 하다가 실수를 한다.
모든 괴로움은 탐(貪), 진(嗔), 치(癡) 삼독에서 비롯된다. 골프에서도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미스 샷(Miss Shot)의 원인이며, 미스 샷이 골퍼를 고달프게 한다. 이처럼 마음 비우기가 쉽지 않은 것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내부에서 반사적으로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음을 안정되게 유지하려면 평소 심신의 수련이 필요하다. 신체단련도 중요하지만, 정신집중과 지구력 그리고 자제력 등에 좌우되는 운동이 바로 골프다. 마음을 비우고 골프를 즐기다보면 주변의 풀과 나무를 비롯하여 철 따라 피는 꽃도 보이고, 새소리며 바람의 감촉도 느껴진다.
『채근담(菜根譚)』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망처불란성(忙處不亂性)
수한처심신양득청(須閑處心神兩得淸)
사시부동심(死時不動心)
수생시사물간득파(須生時事物看得破)
바쁠 때 성정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한 때에 심신을 맑게 길러야 하며
죽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살아 있을 때 사물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한다.“
골프의 공(Ball)과 불교의 공(空)은 같은가 다른가?
미국으로 오기 전 제방선원을 거쳐 종립선원 봉암사 주지를 지낼 정도로 참선수행을 해왔던 스님은 번뇌망상을 잠재우는 참선수련법을 ‘골드 점 응시하기’ ‘호흡 집중훈련’ 등의 골프 훈련법으로 응용한다. 공교롭게도 골프의 공(Ball)과 불교의 공(空)은 우리말 발음이 같다. 하지만 이외에도 많은 의미를 함께 하고 있다. 공(Ball)은 앉으나 서나 키가 같고, 앞이나 뒤나 똑같으며, 어루만져주거나 얻어맞아도 그 모양 그대로다. 때에 따라서 머물러 있기도 하고 때론 멀리 튕겨나가기도 하지만 언제나 둥글게 응해준다. 한문 공(空)을 ‘빌 공’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드라이버 헤드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이지 드라이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골프 공이 변화가 없으면서도 변화가 있듯이, 정신도 공(空)하여 형상이 없지만 끝없이 생각을 일으킨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많은 사람이 공문(空門)에서 도를 이루었거늘 그대는 어찌 괴로움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공문은 불문(佛門)이요, 불국토로 들어가는 첫 관문의 일주문인데 언제나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대문이 없다. 문이 없으므로 일주문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요, 그래서 공문이다.
하지만 일주문을 통과하여 불국토로 오르고자 하면 세속의 잡된 생각을 비우고 공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골프도 먼저 골프에 입문해야 골프 채를 휘두를 수 있으며, 연습장과 골프장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해야 공문이 열린다. 잡다한 생각을 비우고 걸림 없이 홀가분하게 출입이 자유로워야 즐거움과 건강을 함께 얻는다.
우리의 마음은 보이거나 들리거나 혹은 냄새든 맛이든 촉감이든 의식이든 매 순간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있다. 인식을 더 밝고 순수한 알아차림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마음을 고요히 하면 점차 맑아지고 집중력이 생겨 판단력이 빨라지고 마음이 투명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무심해지면 곧 마음이 비워진 상태다. 골프의 자연스러운 스윙이 바로 그때 나올 수밖에 없다.
'골프는 사치스러운 운동': 1992년 72% → 2013년 48% → 2018년 35%
- 과거와 달리 골프를 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사치스럽지 않은 운동' 인식 경향
미국에선 골프가 특정 계층의 운동이 아니라 대중운동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통계를 보면 골프 인구가 계속 늘어나며 대중화되고 있다. 2017년 7월 14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이 487개다. 골프를 즐기는 나라는 전 세계 200여 개국이며, 한국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골프장이 많은 나라이면서 골프 인구는 500만 명이 넘는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31일 발표한 [골프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2년 우리 국민의 72%는 골프를 '사치스러운 운동'이라고 생각했으나 1995년 62%, 2000년 57%, 2004년 51%, 2007년 43%, 2013년 48%, 2018년 이번 조사에서는 35%로 감소했다. 2013년 조사까지 골프를 치는 사람 중에서는 사치스럽지 않은 운동,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 중에서는 사치스러운 운동이란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골프 칠 줄 모르는 사람 중 37%가 '사치스러운 운동', 54%가 '사치스럽지 않은 운동'이라고 답해 처음으로 역전했다. 한국갤럽은 “골프는 입문 후 첫 라운딩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점차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장작불이 그러하듯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하면 퍼지는 것은 삽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