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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교정 반세기

편집 교정 반세기

  • 정해렴
  • |
  • 한울
  • |
  • 2016-11-09 출간
  • |
  • 432페이지
  • |
  • 155 X 226 X 22 mm /642g
  • |
  • ISBN 9788946062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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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출판계의 산증인 정해렴의 반세기 기록

“창비 사장님이셨는데 왜 창비가 아닌 한울에서 책을 내나요?”
이 책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들을 때마다 머뭇거리기를 반복했으나, 출간을 앞두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출판 역사의 주춧돌이자 섬돌인 저자의 편집 인생은 한 출판사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답 말이다.
전산 조판 이후의 세대들은 정보에의 접근이 노력의 결실이던 그 시절을 모른다. 클릭 몇 번에 자판만 두드리면 몇 분 아니 몇 초 만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해 방법을 고민하고 발품을 팔아야 했던 그 시절이 상상이나 가겠는가?
어쩌면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수도 없이 사전을 들추며 찾고 또 찾는 지루한 반복을 지치지 않고 해야 했던 그 시절이 과연 있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으로 보면 이 책은 고리타분하고 너무 오래된, 그저 과거를 추억이라는 틀에 담아 하나씩 꺼냈다 다시 담아버리는 옛날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시대의 끝자락을 스쳐 지났던 이들이라면 이 책이 역사라는 것을, 그래서 한국 출판 역사의 당당히 한 위치에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 풋내기 편집자에서 기본에 충실한 편집자로 거듭나다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도 풋내기인 시절이 있었다. 잔심부름을 하고 현장 견학을 하며 하나하나 익혀야 했던 그 시절, 교정부호 하나 제대로 모르던 그는 『편집과 교정』이라는 책을 읽으며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다. 대선배의 시작에 잘 만들어진 책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편집자로서 새삼스러운 마음이다.
그런데 그의 반세기 외길을 만든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한결같은 그의 노력이 있었다.

초등학교 국어과 교사용 지도서를 만들면서 문교부 편수관실로 담당 편수관에게 원고를 받으러 가거나 교정지를 찾으러 가거나 하면서 국정교과서의 표기 원칙과 관례를 대강 배우게 되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보조동사를 복합어로 삼아 동사에 붙여 쓰는 사례를 표로 만들어 노트에 정리하면서 문교부 교과서 표기법을 익히고, 이때 배워 익힌 것을 중·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 출원 때 잘 써먹게 되었다._39쪽

내 딴에는 거의 2년 가까이 교정을 본 경험으로 그깟 소설 교정쯤이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정에 매달렸는데 ‘어마, 뜨거워라’였다. 여태까지 내가 교정한 것은 주로 교재였는데, 교재나 기타 참고서는 기껏 4000 내지 5000단어 안에서 표준어로 서술되어 큰 어려움 없이 사전을 조금만 찾아보아도 되었으나, 소설 문장은 단어가 수만으로 방대하게 확대되고 방언이나 속어가 큰 제약 없이 사용되어 내 어휘력으로 소설 교정은 참으로 감당키 힘겨웠다. 그렇다고 힘겹다고 할 수도 없어 출근해 의자에 앉으면 사전을 수없이 뒤적이고 끙끙거리며 교정을 보다가 점심시간이나 되어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었다._46쪽

시조집이나 논문이 실린 학회지나 기관지가 있는 것은 그 수록된 원전과 대조하면서 무난히 교정을 볼 수 있었으나, 일기 부분은 베껴온 것이라 인명이나 서명 등 잘못 쓴 고유명사는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잘못 고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책이 나오고 나서 오자가 많다는 평가를 받고 매우 부끄러웠다. 나는 이때의 경험 때문에 원고나 원문과 반드시 잘 대조하고 나야 안심하는 결벽증이 생겼다._49쪽

나는 신구문화사에서 만 4년, 교학도서에서 1년 반, 그리고 몇 달의 다른 학회지 교정·제작 경험을 한 6년 차 편집·교정자가 되어 있었으나 아직도 새로운 교정지를 처음 대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아무리 낯설고 어려운 교정물이라도 일단 잡기만 하면 부족한 실력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차차 몸에 배어 정신을 흩뜨리지 않을 만큼 되었다._60쪽

1983년 여름 이후부터는 창비의 경영 실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편집고문으로 편집·교정 실무만 맡아 처리할 수 있어, 나는 이제 명실공히 원숙한 편집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편집·교정을 회사 경영과 관련시켜 할 수 있는 시각도 비로소 확보한 것이다._217쪽

◑ 대표로서 문화 탄압의 암울한 시기를 지나다

이 책의 저자는 그의 말대로라면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등 떠밀려 할 수 없이” 창비의 대표직을 맡았다.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그 시절이었다. 그 엄혹한 시기에 감시의 눈길이 항상 따라 붙는 출판사의 대표였으니, 문화 탄압의 현장에서 혹한의 바람을 견뎌내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의 17면에 기술된 “해방 직전에 3대 독립군사단체가 있었으니 그 하나가 광복군(金九)이었다. 다른 둘은 연안(延安)의 조선혁명군(金武丁)과 간도 장백산의 조선인민혁명군(金日成)이었다”가 문제가 되니, 이 구절을 고치거나 괄호 안에 있는 ‘金日成’에 대해 현재 북한의 ‘김 주석’이 아니라는 주석을 달아 발행하라는 것이었다. …… 나는 이 책을 더 찍지 않겠다고 하여 이 자리를 수습했다._181쪽

이렇게 사무실을 나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눈을 가리고 남산에 올라간 것이다. 가서는 새벽까지 이런저런 조사를 받고 진술서를 쓰라고 한다. 진술서에 쓸 말이 없어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더니 참으로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필화 사건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사상범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국 사건도 아니고 범죄 사실도 없으니 쓸 말이 없는데 무엇을 쓰라고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몹시 답답해하다가 편집부장 이시영 씨를 조사해 받은 진술서를 가지고 그것을 보고 말을 맞추며 쓰게 하는 것이었다.
이시영 씨의 글씨는 내가 익히 아는지라 나는 대뜸 알아본 것이다. 그러고도 답답한 듯이 쓰는 요령을 이리저리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분들도 얼른 조사를 끝내고 자거나 쉬어야 할 텐데 내가 꾸물거리니 얼마나 답답하고 맥이 빠졌으랴.
그분들도 나를 추궁해서 공명을 세울 만한 무슨 단서를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진작 알아챘을 테니 이미 김이 샜을 것이다._199쪽

또 내가 나와서 들으니, 이시영 씨는 풀려나와 제책소로 끌려가서 제본하던 책을 재단기로 잘라 폐기하고 지형도 찾아다 재단기에 넣어 작두질하게 했다는 것이다. 기원전에 있었던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 같은 시집 절단의 야만적인 문화 탄압의 한 현장을 한 시인이 목격한 것이다.
우리는 ‘문화공보부’를 ‘문화공포부’라고 부르기도 했다. 20세기 말에 그것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한 시인이 그 시집에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썼다고 그 시집과 지형을 난도질하다니, 문화를 발전시키고 북돋워야 할 문화 부서로서는 어떻든 해서는 안 될 역사에 크게 기록될 만한 야만스러운 일을 한 것이다._201쪽

시인 김지하가 오랜 영어 생활을 마치고 나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열정을 쏟아 새롭게 시도하는 작품이고 나도 온갖 정성을 기울여 편집·교정을 하여 간행했는데, 공을 들인 보람도 없이 또 판매 금지를 당하고 만다. 이때는 문공부 간행물 심의실도 강화되어 매우 엄중히 심의해 가차 없이 판매 금지 처분을 할 때였다. 판매 금지 처분을 내릴 때도 문서로 통고해주는 것이 아니라 발행인을 불러다 팔지 말라고 통고했다. 공문을 보내면 나중에 이를 근거로 삼아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로 처리하는 듯했다. …… 이로써 세계적인 작가의 붓이 또 꺾이고, 우리 창비도 한 번 더 곤란을 겪는다. 나도 때때로 문공부에 불려가 추궁을 받기도 했다. 나에게는 문화공포부였다. 아무튼 나는 경고를 수없이 받아 주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뻔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_207쪽

1980년 초반 문화 탄압을 선봉에서 목격했던 저자의 글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는 2016년 오늘에도 역사의 한 장이 아닌 주변의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문화 전파의 한 담당자인 편집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데, 이 책이 하나의 길을 제시하리라고 본다.

◑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이 그에게서 비롯되다

국정교과서로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이 흔한 말을 이 대목에서 또 읊조리는 건, 미래는 과거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코 당연한 듯 사용하는 많은 것이 대선배가 걸어간 길에 놓인 결과물이라는 데 흠칫 놀라게 된다.
한자의 괄호 병기나 독자의 흥미를 고려한 새로운 구성, 인물의 해설이나 낱말의 뜻풀이 등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편집 기법이나 책과 관련된 새로운 생각은 ‘소통하는 편집인’이 강조되는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편집자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한국사의 반성』에서의 국한문 병용 체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글을 원칙으로 삼고 꼭 필요한 한자나 외국어는 괄호 안에 넣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역사 현장 사진 자료를 많이 넣어 시각적인 효과도 거두려 한, 당시로서는 매우 과감하고도 혁신적이고 참신한 편집 체제를 시도했다._64쪽

또 평이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체제로 편집·교정한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자로 써온 원고를 음독하여 한글로 고치고 꼭 필요한 한자를 선별·판단하며 원고를 정리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따라서 편집 체제의 개혁이나 혁신은 많은 고민과 실천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이 『한국현대사』를 교정보면서 깨도 했다. 나에게는 큰 소득이었다._65쪽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 삼촌』은 앞의 최창학이나 윤흥길과 달리 내가 직접 편집·교정을 했다. 작가가 구성해온 목차는 발표순대로 차례를 잡았는데 내가 교정을 보느라고 읽어보니, 데뷔한 작품과 초기 소설은 이상(李箱) 같은 냄새가 난다고 느꼈고 큰 재미가 없었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발표 역순(逆順)으로 목차를 정해보니 괜찮을 듯싶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편집을 해본 것이다. 결국 이 작품집을 내면서 나는 목차를 구성하는 방법도 조금 실험한 셈이다._165쪽

그래서 소설 독자의 관심을 끌 장치를 생각하기 시작하여 연구해낸 것이 첫째로 가장 보편적이고 보급에 유리한 4×6판으로 판형을 정하고, 둘째로는 숨을 가다듬으면서 빨리 읽을 수 있게 하려고 장별로 연재 번호를 넣었다. 이로써 장편소설의 긴 단조로움을 어느 정도 풀 수가 있었다. 셋째로 주요 주인공을 간략히 소개하는 글을 표지 바로 뒤에 작가의 묘사 해설로 싣되, 신문 연재 때의 삽화에서 그 인물 모습을 따서 넣었다. 이 장치는 아마 내가 처음으로 고안한 것이 아닐까 한다. …… 다섯째로 주요 낱말 해설을 실어 작가가 참으로 공들여 수집해 쓴 까다롭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공부할 수 있게 했다._186쪽

나는 이 책의 편집 방향을 잡을 때 본문은 한글로 쓰되 필요한 한자는 괄호 안에 넣기로 하고, 한시(漢詩)나 한문 원문을 그대로 인용해 넣는 대신 번역을 해서 넣도록 하되 한시는 번역문 바로 뒤에 넣고 한문 원문은 주(註)로 돌렸다. 주 제목이나 중간 제목은 한자를 노출해 쓰도록 했다. 이렇게 해야 한문에 큰 소양이 없는 독자도 읽고 글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_203쪽

굳이 상·중·하 3권으로 나눈 것은 애초부터 이 『소설 동의보감』이 미완의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원래 작가의 구상은 춘하추동 즉 봄·여름·가을·겨울 4권으로 내려 한 것인데, 겨울에 해당하는 권이 미완이라 춘하추동 대신 상·중·하로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3권으로 조판을 했는데, 편집부에서는 2권으로 하자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는 이를 영업 논리로 설득해 잠재웠다. 가령 2권으로 하면 권당 480면에 그때 소설책 정가는 3800원이나 3900원이 한계라 2권에 7800원으로 정가를 매길 수밖에 없지만, 3권으로 하면 11400원이나 되어 그 차액이 3600원이나 되었다. 이렇게 하여 3권으로 분권하여 낸 『소설 동의보감』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4개월 만에 5판까지 찍을 수 있었으니, 2권으로 하지 않고 3권으로 나눔으로써 상당한 영업 차익이 생긴 것이다._247쪽

◑ 문화 전파자로서 후대를 생각하다

책을 펴는 순간부터 이 책 전반을 가로질러 흐르는 편집인으로서의 신념은 확실한 다짐으로, 출판계에 대한 아쉬움으로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다.

거듭 말하자면 『한국인명대사전』을 편찬하며 당시 식민 사관을 극복하는 일이라 생각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많은 인물을 빼놓기도 하고, 또 자료의 부족으로 뛰어난 인물이 많이 누락되었으며, 있는 자료도 대조·검증하지 않아 생몰년 미상이 많은데, 고대사 인물을 제외한 조선 시대 인물은 생몰년을 상당수 찾아낼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하여 우리 역사 인물을 정리·정립해 후학들이 쓸데없는 데 시간을 쓰지 않고 쉽게 인명에 대한 지식을 알아 잘 이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놓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_54쪽

우리나라 한문 고전을 정리·간행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가운데 우리 민족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중요한 저술은 이를 알기 쉽게 번역하여 현대 독자가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학자나 출판인이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 하겠다._288쪽

문고본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시기가 있었다. 지금의 독자들은 자주 접해보지 못한 자그마한 크기의 책으로 이와나미쇼텐에서 발간한 보급형 책이 그 원형이다. 주로 소설 등을 냈는데, 글자 크기가 좀 작기는 해도 저렴한 가격에 들고 다니며 읽기 편한 형태였다. 저자는 시류에 편승해 노력을 들이기보다 양으로 승부함으로써 문고본을 사장의 길로 들어서게 한 출판사들의 행태에 아쉬움을 표한다. 이는 비단 문고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의 가교라는 본연의 의미가 자본의 논리로 퇴색되는 현재 출판계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1974년부터 신구문화사에서는 신구문고(新丘文庫)를 기획하여 문고 시장에 참여했는데, 이때 문고를 발행하여 성공을 하기 시작한 출판사는 을유문화사와 정음사였다. 그리고 대중문고를 발행하여 크게 활기를 띤 출판사는 삼중당이었다. 을유문화사는 내가 있을 때인 1971년에 벌써 문고를 80여 권이나 펴냈고 1974년 말까지 160권을 펴냈으며, 정음사도 그때 정음문고를 활발히 펴내고 있었다. 또 삼성문화재단에서도 값싼 문고를 대량으로 반포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고 시대가 도래한 듯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일본 이와나미 문고(岩波文庫)와 같이 질로 승부를 걸지 않고 양으로 경쟁하다가 좋은 기회를 헛되이 날려버린 것 같다._97~98쪽

편집 체제에 대한 반성으로는 한글의 문자 구성 특성상 글자 크기를 13급(9포인트) 이상으로 하고 그 판형을 4×6판 정도로 크게 하여 문고본을 만들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어나 영어는 문자의 크기가 다르고 공간이 있어 글자의 시각성이 좋아 글자 크기가 1~2급 작아도 읽기에 불편함이 적으나 한글은 네모에 꽉 차서 1~2급 정도 크게 해야 읽기 좋을 것이며 또 문고판 1면을 번역하면 4×6판 1면에 수용하기에 알맞지 않을까 싶다._113쪽

이처럼 문화 전파자로서 품었던 우리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은 고전 번역이라는 새로운 길을 그에게 열어주었다. 그는 창비를 퇴사한 후 현대실학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18세기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책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 문화 단절을 잇는 가교가 되다

‘문화 단절’
저자가 사용한 이 표현은 다소 충격적인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15세기에 ‘어린 백성’을 위해 만든 과학적이고 쉬운 한글의 위대함에 취해, 한글 이전의 우리에 대한 관심은 소수 학자들의 영역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온전히 한글이 사용된 시기는 불과 100년 남짓 되었을 뿐이다. 누군가를 거치지 않으면 100여 년 이전에 이 땅에서 생활한 사람들의 생각을 우리는 읽어낼 수 없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쉽고 올바른 번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읽을 수 없는 자료는 누군가의 실력에 기댈 수밖에 없고, 잘못된 내용은 다시 누군가가 수정하지 않는 이상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우리 고전에 깊숙이 발을 들인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래 한문으로 문자 생활을 하다가 개화기를 지나면서 국한문 병용이 이루어지고, 8·15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문자 생활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대다수 국민은 한문으로 기록된 우리의 보배인 고전을 읽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문화가 단절된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문자 생활이 한문으로 회귀할 수는 절대로 없을 것이니, 우리의 고전을 이처럼 우리말로 쉽게 풀어내서 전통 문화를 단절 없이 계승하여 누리려면 현대의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생명력 있는 산 고전을 국민 누구나 손쉽게 읽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갈 교양 있는 민족이 되고, 세계 속에서 민족 주체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건전한 시민이 될 터이다._346쪽

또 우리나라 고전문학 작품이나 한문 고전 작품을 잘 골라 정말로 공들여 교주하거나 번역하여 현대 독자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 번역 기능과 수준을 높였다면 국학 개발에 크게 이바지하고 우리 문화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는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_113쪽

그는『마과회통』을 끝으로 다산을 마무리할 때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다산의 작품에 매진했다. 총 21권의 다산서를 간행한 것이다.

이『다산논설선집』을 편역하느라고 ‘다산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진정한 학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다산을 통해 ‘실학의 세계’에 들어가 그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또 앞으로 ‘다산 실학’의 중요한 저술을 공부하여 편역하는 일에 내 남은 생애를 바쳐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_307쪽

한의서(韓醫書)나 한의서(漢醫書)의 원전 번역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 『마과회통』을 번역하겠다고 내가 나서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산 경학을 제외한 실학 분야의 번역을 마무리하려면 이『마과회통』을 반드시 번역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현대 의학이나 한의학에 대한 전문적인 소양은 없지만, 반세기 가까이 축적한 편집·교정·번역 경험을 믿고 이 일에 감히 매달렸던 것이다._418쪽

그는 이제 한국고전소설선집 16권과 중국 4대 기서 중 한두 가지,『동주 열국지』를 번역하는 것으로 편집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오늘도 편역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출판사의 기록이 아닌 출판계의 역사가 되다

넘쳐나는 출판물 속에 광고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커진 지금, 소통하는 편집인을 외치는 글이 많아졌다. 단순 교정이나 단순 편집이 아닌 독자의 요구, 시장의 흐름, 출판사의 이해 등을 아우르며 매일매일 새로운 안목으로 발전하는 편집인 말이다. 물론 글로벌 경쟁 시대에 그런 편집인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물길 속에 한 편집인의 50년 외길도 그저 부평초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본에 충실했고, 그러했기에 단절된 문화의 다리가 되기를 자처한 이 편집인은 출판계의 마르지 않은 천원(泉源)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다.
또한 화려하지 않지만 진정을 담아 써 내려간 그의 책은 출판계의 역사로서, 앞날을 밝힐 든든하고 따뜻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목차


제1부 내 인생의 전반기
제2부 편집의 길로 들어서다: 교학도서, 신구문화사, 을유문화사
제3부 둥지를 옮겨 창비에 몸담다: 창작과비평사 1
제4부 창비와 굴곡을 함께하다: 창작과비평사 2
제5부 편집인으로 홀로 서다: 현대실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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