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천체의 움직임을 읽지 못하면 왕이 아니다!
조선의 왕들은 백성을 다스릴 권리를 하늘로부터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하늘의 뜻을 잘 살펴야 했고, 하늘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했습니다. 세종 대에 만들어진 많은 천문 관측 기구들은 바로 이 사업을 위한 도구들이었습니다. 간의, 소간의, 앙부일구, 자격루 등을 비롯한 천문 관측 기구를 이용해 오랫동안 하늘을 관측하고 연구한 결과 조선은 당시 세계에서 중국, 이슬람에 이어 하늘의 움직임을 스스로 예측할 수 있는 세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리, 군사: 영토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외적을 몰아낸다
유교 국가의 왕에게는 하늘의 일을 아는 것만큼이나 땅의 일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늘의 일이 땅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조선을 샅샅이 알고 싶었습니다. 이에 전국을 모두 측량해 새로운 지도를 만들라고 명했습니다. 또한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의 왜구로부터 국경을 지키기 위해 새 화약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세종의 노력으로 비로소 왜구들의 침략이 잠잠해지고, 북쪽 경계가 지금과 같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분명해 질 수 있었습니다.
의학, 농업기술: 굶주림과 질병의 고통에서 백성을 구하다
천하의 세종도 연이은 흉년과 돌림병 앞에서 쩔쩔맸다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종이 즉위하고 32년 동안 삼 년에 한 번 꼴로 돌림병이 돌았다고 하니까요. 돌림병이 돌고 나면 일할 사람이 없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습니다.
세종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약으로 병을 고칠 방법을 찾게 했습니다. 그 결과 『향약집성방』을 편찬하여 조선 땅에서 나는 약으로 우리 몸을 다스린다는 큰 꿈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전국의 농민들에게서 농사 기술을 수집해 집대성한 『농사직설』을 편찬해 우리 땅에 맞는 농사법을 정리했습니다.
한글창제, 인쇄술: 백성을 가르치는 어버이 임금
임금은 백성들의 어버이로서 사람들을 유교의 가르침대로 교육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학적이면서도 배우기 쉬운 문자가 필수적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은 그러한 목적에 가장 잘 맞았습니다. 또한 인쇄술을 개량해 짧은 시간에 많은 책을 펴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여러 차례 활자를 개발하고 보완할 결과 ‘갑인자’가 만들어져 조선은 인쇄술을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문자와 인쇄술의 발달로 조선은 문화 국가의 토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음악과 도량형으로 정치의 근본을 세우다
유교 국가의 음악은 요즘처럼 재미있고 신나는 음악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하여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내는 음악이었습니다. 이런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바로 편경이었습니다. 편경의 음을 기준으로 모든 악기의 음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편경의 가장 낮은 음인 황종음을 내는 황종율관을 가지고 길이와 부피 등 도량형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정비된 도량형으로 동일한 규격을 가진 측우기를 여러 개 만들어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음악과 도량형제도를 통해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