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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사

프랑스혁명사

  • 알베르소불
  • |
  • 교양인
  • |
  • 2018-06-29 출간
  • |
  • 812페이지
  • |
  • 163 X 233 X 46 mm /1260g
  • |
  • ISBN 9791187064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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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프랑스혁명을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프랑스혁명사》는 구체제 부르주아와 혁명의 무대 뒤편에 존재했던 도시 민중과 농민을 중심으로 하여 프랑스혁명을 재구성한다. 다양한 부류의 부르주아들이 혁명을 주도했지만, 지배층의 분열 속에서 도시와 농촌의 민중이 대거 혁명 무대에 진입했음을 밝힌다.
알베르 소불은 민중의 관점에서 프랑스혁명을 서술하여 ‘아래로부터 보는(vue d’en bas) 역사학’을 이룩한 장 조레스의 연구 성과를 이어받아, 엄청난 사료 작업을 거쳐 ‘농민 혁명’과 ‘민중 혁명’이 존재했음을 입증했다. 부르주아지가 주인공이지만 도시 민중과 농민이 개성이 강한 조연 역할을 하는 거대한 사회 혁명으로서 프랑스혁명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질적인 동시에 통일된 전체인 혁명적 군중들의 구성에 관한 정확한 상을 얻을 수 있다. 이들이 바로 파리의 ‘서민’이다. …… 이 혁명적 군중들은 사회적 유대가 단절된 주변인이나 “독립적인” 개인들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하여 빈곤 때문에 무질서로 빠지기 쉽고 선동가들에게 쉽게 동원될 수 있으며 전문적인 기술 훈련을 받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도 아니었다. 이들은 수공업의 장인과 직인들, 사무원, 소상점주와 소매상인들로서, 말하자면 생계비의 앙등과 정치 위기로 똑같이 격앙되어 있던 소사업주와 임금 노동자들의 집합체였다.
이렇듯 상퀼로트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또한 ‘부르주아’, 금리 생활자, 자유 전문 직업인들도 봉기에 소규모로 참여했다. 바스티유 함락, 샹드마르스 사건(1791년 7월 17일), 튈르리 궁 공격, 혁명력 3년 프레리알에 폭발한 봉기 등이 그러했다. 여성들은 베르사유를 향한 행진, 1792~1793년에 일어난 식량 폭동과 약탈, 프레리알의 봉기 등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 744, 745쪽(부록1·혁명적 군중)


혁명이란 무엇인가?

알베르 소불은 《프랑스혁명사》에서 혁명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고, 이를 통해 프랑스혁명의 본질적인 특성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혁명이란 기존 국가 기구의 파괴뿐만 아니라 국가 기구를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와 정치 구조의 근본적인 변모를 뜻한다. 즉, 프랑스혁명의 목표는 구질서의 개선과 악폐의 완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권과 봉건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창설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국민들이 겪었던 모순적인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혁명의 과정에서 옛 사회적 관계는 특권계급과 민중계급 간에 일어난 계급투쟁을 거치며 파괴되었고, 혁명 이후에는 그 이전의 절대왕권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른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가 힘을 얻었다. 소불은 부르주아지라는 새로운 사회 세력이 도시의 민중층과 농촌의 농민층의 지원과 견제를 받으면서 어떻게 혁명을 통해 근대 사회와 근대 국가를 빚어냈는지를 보여준다.

혁명, 그것은 ‘위로부터’ 강제될 수 없다. ‘개혁’이 ‘위로부터’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혁명은 필연적으로 ‘아래로부터’ 강제되는 것이다. 개혁은 사회의 기본 구조를 흔들지 않으며, 오히려 지배적인 사회 범주들의 지속적인 이익을 위해 기존의 구조를 보듬는다. 개혁은 자신이 강화하려는 기존 사회의 틀 안에서 존재 이유가 뚜렷해진다. 또한 개혁은 시간적으로 길게 펼쳐진 혁명이 아니며, 개혁과 혁명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내용을 통해 구별된다.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여기서 문제는 동일한 결과를 이끄는 더 빠른 길이냐 아니면 더 느린 길이냐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창설이냐 아니면 구사회의 피상적인 수정이냐 사이에서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 776쪽(부록 2·혁명이란 무엇인가?)

프랑스대혁명은 장 조레스의 표현을 따르면 1688년에 일어난 영국의 ‘명예 혁명’처럼 “좁은 의미에서 부르주아적이고 보수적인” 혁명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부르주아적이고 민주적인” 혁명이었다. 대혁명이 이러한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은, 봉건제의 중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 특권에 대한 증오에 이끌려 기아를 견디지 못하고 일어선 인민대중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혁명의 기본적인 과업 가운데 하나는 봉건제를 파괴하고 농민과 토지를 해방하는 일이었다. 구체제 말기의 총체적인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구(舊) 사회의 구조와 모순이 혁명의 이러한 특징을 설명해준다. 프랑스혁명은 진정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민중, 특히 농민의 지지를 받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 132, 133쪽(서론부·구체제의 위기)

[책속으로 추가]
1789년의 인권선언, ‘구체제의 사망 증서’
(1789년) 8월 1일, 의회는 토의를 재개했다. 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할 필요성을 둘러싸고 대표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바로 이 점을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다. 심지어 몇몇 발언자는 선언의 시의적절함 자체를 문제 삼았다. 피에르빅토르 말루에같이 무질서에 놀란 온건파 인사는 권리선언을 쓸데없거나 심지어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레구아르 신부 같은 이들은 인권선언에 의무 선언을 덧붙이기를 희망했다. 결국 4일 오전, 의회는 헌법의 앞머리에 권리선언을 삽입하기로 결정했다. 토론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 1789년 8월 26일, 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인권선언)’을 채택하였다.
인권선언은 특권 사회와 군주제의 폐단에 대한 암묵적인 유죄 선고로서 ‘구체제의 사망 증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인권선언은 계몽사상가들의 교리에서 영감을 받아 부르주아지의 이상을 표현했고, 프랑스만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질서의 토대를 놓았다. - 179, 180쪽(1부·국민, 국왕, 법)

혁명적 군중, ‘상퀼로트’는 누구인가?
혁명 당시에 ‘상퀼로트’로 불렸던 이들은, 바로 혁명적 군중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였던 이러한 오래된 형태의 민중적 범주였다. …… 1793년 4월 10일에 페티옹이 국민공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퀼로트를 말할 때, 우리는 귀족과 특권파를 제외한 모든 시민들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자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상퀼로트라고 부른다.”
상퀼로트는 행동함으로써 특권계급, 상업, 유복함은 아니더라도 부유함 등에 대한 적대를 통해 스스로를 규정했다. …… 반혁명적인 노동자는 좋은 상퀼로트일 수 없었다. 애국파 부르주아는 기꺼이 상퀼로트의 자격을 갖는다. 사회적 차원은 정치적으로 규정됨으로써 명확해진다. 그 둘은 분리될 수 없었다. 여기서 핵심은 말뿐인 애국주의나 정신의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정치적 태도였다. 상퀼로트는 혁명기에 일어난 모든 위대한 사건에 가담했다. - 747쪽(부록 1·혁명적 군중)

혁명정부와 상퀼로트의 대결, “혁명은 얼어붙었다.”
비록 긴급한 위험에 직면한 혁명정부가 상퀼로트와 동맹을 맺는 데 동의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몇 가지 양보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상퀼로트적인 민주주의의 사회적 목표나 정치적 방법을 받아들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또한 정부의 양 위원회에게는 민중 조직을 통제하고 그 조직을 부르주아 혁명의 자코뱅적인 틀 속으로 통합하는 것이, 대불동맹이나 반혁명에 대한 투쟁과 양 위원회가 지닌 정치적 개념에 비추어 정당한 일이었다. 따라서 코르들리에파의 반대가 이러한 평형 상태를 위협하자, 혁명정부는 탄압 조치로 응수했다. 그러나 상퀼로트들은 자신들의 열망을 대변해주고 지지를 받았던 <페르 뒤셴>과 코르들리에파가 제거되는 것을 목도하고는 혁명정부를 불신하게 되었다. 혁명정부가 당통도 제거했지만 헛일이었다. 이러한 중대 재판 사건에 뒤이은 탄압 조치는,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투사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어 구의 정치 활동을 마비시켰다. 이제 혁명정부 당국과 구의 상퀼로트 사이에 직접적이고 우애 있는 접촉은 단절되었다. 곧이어 생쥐스트는 “혁명은 얼어붙었다.”고 썼다. - 440, 441쪽(2부·자유의 전제)


목차


개정판 머리말(클로드 마조리크)
머리말

서론부 _ 구체제의 위기
1장 사회의 위기
2장 제도의 위기
3장 부르주아 혁명의 서장 : 특권계급의 반란

1부 _ 국민, 국왕, 법 - 부르주아 혁명과 민중 운동(1789~1792년)
1장 부르주아 혁명과 구체제의 와해
2장 제헌의회 : 타협의 실패
3장 제헌의회의 부르주아지와 프랑스의 재건
4장 제헌의회와 국왕의 탈주
5장 입법의회 : 전쟁과 왕위의 전복

2부 _ ‘자유의 전제’ - 혁명정부와 민중 운동(1792~1795년)
1장 입법의회의 종언 : 혁명의 약진과 국가 방위
2장 지롱드파의 국민공회 :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파산
3장 산악파의 국민공회 : 민중 운동과 공공 안전의 독재
4장 승리와 혁명정부의 몰락
5장 테르미도르파의 국민공회 : 부르주아 반동과 민중 운동의 종언

3부 _ ‘유산자가 지배하는 나라’ - 부르주아 공화국과 사회의 공고화(1795~1799년)
1장 테르미도르파 국민공회의 종언 : 1795년의 여러 조약과 혁명력 3년의 헌법
2장 제1차 총재정부 : 자유주의적 안정화의 실패
3장 제2차 총재정부 : 부르주아 공화국의 종언

결론부 _ 혁명과 현대 프랑스
새로운 사회
부르주아 국가
국민적 통합과 권리의 평등
혁명의 유산

부록1 _ 혁명적 군중 : 집단적 폭력과 사회적 관계
부록2 _ 혁명이란 무엇인가?
역자 후기
프랑스혁명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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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알베르 소불
프랑스의 역사학자. 1914년 알제리의 프랑스 출신 소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6년 소르본대학을 졸업하였다. 몽펠리에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1942년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일로 비시 정부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후 프랑스 공산당 지하 활동에 가담하여 활동했다. 1950~1953년까지 국립학술연구원(CNRS)에서 일했으며, 1958년 <혁명력 2년의 파리 상퀼로트들>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2년 뒤 클레르몽페랑대학의 문학부 교수가 되었다. 1967년 프랑스혁명 연구의 중심인 소르본대학에 프랑스혁명사 강좌 주임 교수가 되었고, 이후 교육자이자 역사가로서 프랑스혁명 연구에 매진했다. 《자유의 원년, 1789년》, 《문명과 프랑스 혁명》 등 2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정통파 혁명사학자로서 명성을 안겨준 《프랑스혁명사》 수정 작업에 착수해 1982년 죽음 직후에 유작으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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