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딸 콤플렉스?
‘나쁜 엄마 콤플렉스’를 말하다!
“나쁜 건 당신이 아니라
엄마입니다”
2016년 방영됐던 다큐멘터리 <엄마와 딸>은 애증관계에 있는 모녀 사이를 잘 그려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냈다. 딸에게 엄마는, 엄마에게 딸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너무나 멀고, 가장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리고 이런 애증관계에서 괴로워하는 딸들을 흔히 ‘착한 딸 콤플렉스’에 갇혀 있다고 표현한다.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엄마와 딸> 다큐멘터리의 1부 제목 역시 ‘착한 내 딸의 반란’이다. 많은 딸들이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순종하는 착한 딸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구가 아닌 엄마의 욕구를 채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말 ‘딸이 착하기만 해서’ 엄마와의 관계가 괴롭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상처 주는 엄마와 죄책감 없이 헤어지는 법》의 저자 다카하시 리에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 앞서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는다. 바로 ‘나쁜 엄마 콤플렉스’다. 엄마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엄마가 나쁘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핵심을 빗겨가는 것이라 말한다. 딸들이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엄마가 나쁘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야 갈등의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딸에게 폭언과 손찌검을 일삼는 엄마, 뭐든 자기 뜻대로 하는 엄마, 자립해서 행복해지려는 딸의 발목을 잡는 엄마 들을 ‘나쁜 엄마’라고 단호히 규정한다.
엄마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저자가 딸들에게 전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엄마니까 네가 이해해야지”, “엄마 딸 관계는 원래 그래”라고 조언하는 것은 딸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될 뿐이다. ‘내가 나쁜 걸까’ 하고 혼자 외로움에 시달리던 독자들은 상처 주는 엄마가 나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착한 딸 콤플렉스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엄마였던 저자,
나쁜 엄마를 말하다
“아무도 원해서 나쁜 엄마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버렸을 뿐!”
저자는 상처 주는 엄마를 나쁜 엄마라고 표현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엄마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스스로 원해서 나쁜 엄마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도 나쁜 엄마였다고 고백한다.
아이가 등교를 거부하고 자신과의 갈등이 심해지기 시작했을 때, 문제는 아이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함 때문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이 옆에서 공감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 역시 자신을 지배하려 했었음을 기억해냈다.
딸에게 상처 주는 엄마들은 대부분 나쁜 엄마에게 자랐을 가능성이 크다. 상처가 대물림되는 것이다. 혹은 혼자 육아를 도맡고 집안일을 처리해야 하는 힘든 환경 속에서 일인다역을 소화하느라 마음속에 불안함이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나쁜 엄마의 독성은 불안과 공포의 연쇄 반응”이라 말한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무작정 엄마를 탓할 수만은 없다. 엄마의 독성은 엄마가 살아온 환경에서 오는 일종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기 때문에 엄마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는 딸들이 엄마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을 단념할 것을 조언한다. 엄마가 바뀔 가능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딸들 스스로 변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자신에게 각인된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죄책감 없이 나쁜 엄마와 헤어지는 법’을 차근차근 실천한다면 말이다.
죄책감은 엄마가 심어놓은 가짜 감정이다!
“이제 엄마 딸은 그만둬도 괜찮아!”
상처 주는 엄마에게 자란 딸들의 마음에는 반드시 상흔이 남는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감이 부족하고, 하고 싶은 일에도 선뜻 도전하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열차 안에서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 두려워하거나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일에도 벌벌 떠는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온갖 고민에 시달리면서도 딸들은 엄마와 헤어지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죄책감’이다.
딸들은 대부분 ‘부모와 자녀 관계는 원만해야 한다’, ‘부모에게 꼭 효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엄마에게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면 ‘엄마니까’, ‘부모자녀 사이니까’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저자는 “죄책감은 엄마가 심어놓은 속임수 감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모자녀라고 해서 억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단언한다.
엄마는 딸에게 상처를 주면서 정작 본인은 효도를 바란다면 그건 불합리한 요구다. ‘딸이니까’ 불합리한 요구에 순종해야 할 의무는 없다. 엄마가 남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더 나아가 엄마에게서 완전히 독립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죄책감이라는 가짜 감정부터 지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 두려움에 집중해 진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면, 어린 시절부터 쌓아왔던 트라우마와 조금씩 작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