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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공주 세트

제명공주 세트

  • 이상훈
  • |
  • 박하
  • |
  • 2018-05-02 출간
  • |
  • 684페이지
  • |
  • 145 X 200 mm
  • |
  • ISBN 978896570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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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백제역, 백제천, 백제교, 백제소학교…
일본이 그토록 감추려고 애썼으나 곳곳에 드러나는 백제의 흔적들!
《제명 공주》는 몇 가지 사소한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우리 역사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는데 일본에는 뚜렷하게 남아 있는 백제의 흔적들. 이를 테면 ‘아좌 태자’. 백제 27대 위덕왕의 장남으로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을 뿐만 아니라 현존 일본 최고(最古) 초상화인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를 그린 인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일본서기》에서는 중요한 인물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또 한 사람, ‘곤지’. 백제 20대 개로왕의 아들로 일본에서는 곤지왕으로 떠받들며 그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여러 군데 있을 만큼 추앙받고 있으나, 정작 한국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무엇보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제명 공주’. 일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천황이며 두 번이나 천황에 오른 유일한 인물임에도 우리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
이런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일본 아스카로 떠났던 저자는 그곳에서 백제역, 백제천, 백제교, 백제소학교 등 곳곳에서 백제라는 이름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쩌한 사연이 있었길래 바다 건너 일본에 백제라는 이름이 이토록 많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작된 자료 조사는 수십 번의 도일(渡日)을 이끌었고, 결국 십 년이란 세월을 거쳐 《제명 공주》를 탄생시켰다.

누가, 대체 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일본은 백제다!”
승자 중심으로 역사가 기술되기 마련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라 할지라도 우리 역사에 있어 백제는 너무 홀대받았고 왜곡되었다. 백제 멸망 500년 후 신라 왕족의 후예이자 신라 계승주의의 대표주자였던 김부식에 의해 《삼국사기》가 기술되면서 우리 역사 속에서 백제가 사라지는 동시에 일본과의 관계도 사라지고 만 것이다.
야요이 시대 5만 명 남짓했던 일본의 인구는 백제 멸망 직후인 7세기경 5백만 명으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일어난다. 한 국가의 인구가 짧은 시기에 100배 증가했다는 것은 자연적인 요인이 아닌 외부 요인이 작용했음을 의미하며, 그에 따라 추측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는 단 하나이다. 바로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다는 것. 그래서 유전자 조사를 통해 일본인의 뿌리를 검사해보면 99% 한국인과 동일하다고 나오는 것이며, 일본의 언어학자에 의해 한국과 일본의 순수 고유어 5천 개를 비교한 결과, 어원이 동일하다고 밝혀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은 백제다:”라고.

한일 고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백촌강 전투의 진실은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화해는 ‘제명 공주’로부터 시작된다!
백제 멸망 후 3년 후인 663년 벌어진 백제부흥군·왜 연합군’과 ‘신라·당나라(나당) 연합군’ 사이가 처절한 전투를 벌인 끝에 나당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에서 강에 집결해 있던 1천 척의 함선 가운데 4백 척이 불타며《삼국사기》는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바닷물마저 핏빛이 되었다”라고 당시의 처절했던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전투를 위해 일본은 전 인구를 동원하여 수년간 배를 건조했으며 5만 명이 넘는 군사를 보냈다. 그야말로 국운을 건 대사업이었던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한일 고대사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대체 일본은 백제를 구하기 위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것인가?
이 소설은 치밀한 역사적 고증에 기반을 두고 잃어버린 역사적 고리들을 상상력을 꿰맞춘 끝에 그 미스터리에 대한 답을 내린다. 바로 ‘제명 공주’라고. 611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 제철 기술을 비롯하여 당시 최신의 문명을 전파했던 임성 태자 밑에서 함께 자란 의자와 제명. 한 사람은 백제의 왕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왜의 천황이 되었다. 그런데 만약 그 두 사람이 열렬히 사랑한 사이였다면? 이렇게 상상을 하자 그토록 미궁에 빠졌던 난제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소설 《제명 공주》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숙원(宿怨)을 풀 단초가 되는 작품이 되었다.
작가는 말한다.
“백제는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우리와 일본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러려면 일본과 우리를 연결하는 백제의 진실을 찾아내야만 한다. 특히 일본에서 두 번이나 천황의 삶을 살았던 제명 공주의 삶을 밝혀낸다면 증오의 뿌리도 서서히 사라지리라.”

[책속으로 추가]
“네가 백제의 대왕이 되어서 나를 불러주면 그때는 갈게.”
“내가 약속할게. 내가 백제의 대왕이 되어서 꼭 누나를 부를게. 누나가 있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할아버지 말씀대로 나는 백제를 최고의 대제국으로 만들 거야. 그러니까 누나가 꼭 옆에 있어줘야 해. 자, 약속.”
의자는 새끼손가락을 제명에게 내밀었다
제명은 의자의 손가락을 살포시 잡으며 의자에게 말했다.
“너는 훌륭한 백제의 대왕이 될 거야.”
“내가 훌륭한 대왕이 되어도 누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러니 누나가 꼭 내 옆에 있어줘야 해.”
제명은 의자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꼭 껴안았다.
넘실대는 파도가 박수를 치듯 두 사람 주위로 시끄럽게 몰려들었다. 이런 두 사람을 임성 태자는 멀리 서서 흐뭇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특별한 운명의 장난만 없다면 저 두 사람의 힘으로 백제는 다시 해양강국의 면모를 드러내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114~115쪽

제명은 편지를 읽는 내내 소매가 젖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이 이런 것인지, 서로 만날 수 없기에 사랑의 깊이가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의자와 결혼을 해서 살았더라면 이런 고귀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있었을까, 제명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들이 춤추고 있었다. 어차피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인데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고 백제로 가서 의자의 시종이라도 돼서 옆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어이가 없어 자신도 픽 웃고 말았다. 편지를 읽는 동안 제명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행복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의자왕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그녀에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래 내가 의자왕을 위해서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서 조용히 기다리자.’
그 순간 제명의 마음에는 물결치는 파동이 사라지고 잔잔한 평화가 찾아왔다. 달을 쳐다보며 혼자 속삭였다.
“의자 대왕 폐하, 사랑하옵니다.”
-266~267쪽

A.D. 3세기경 일본의 야요이 시대彌生時代 후반에 총 2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일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A.D. 7세기경, 백제와 고구려 멸망 직후에 인구가 4백만 명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인구증가율로 폭발적인 외부의 유입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백제 멸망 후에 왜로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가 이어졌다. 백제의 우수한 인력들이 왜로 건너갔다. 물론 그 이전부터 조금씩 왜로 건너갔던 백제인들이 있었다. 그렇게 먼저 일본에 정착한 도래인들과 백제 멸망 후 왜로 건너간 귀족들의 대거 유입으로 일본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일본의 우수한 인재들은 모두가 백제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라 해도 아무런 문제될 게 없었다.
“하긴 임성 태자도 백제 분이셨고. 저 역시 엄밀히 따지자면 백제인이죠.”
마사코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멀리 창밖으로 반도의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은 정말 가까운 나라예요.”
마사코가 혼잣말을 했다.
-406쪽

《씨족기》는 매우 꼼꼼하게 한 인물 한 인물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살았던 집은 어디였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천황으로 언제 즉위를 했는지, 언제 사망했는지, 주변 인물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정착했으며 어떤 공적을 세웠는지 그리고 어디에 묻혔는지 등등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이 인물들 중에 마사코가 유독 관심을 보인 인물은 당연하게도 임성 태자였다. 추고, 서명, 황극, 효덕, 제명 천황 이렇게 다섯 명의 천황 시절을 함께 살아온 백제의 태자인 임성 태자의 기록이 가장 궁금했다. 그는 그렇게 5대 천황의 시절에 백제 도래인이자 소가 대신 못지않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적어도 추고(스이코) 천황 역시 백제와 깊은 인연이 있음을 드러낸 《씨족기》였다. 백제 역사 왜곡을 시작한 《고사기》나 《일본서기》로부터 목숨으로 지켜낸 《씨족기》였다. 《고사기》 하권에 등장하는 천황들에 대한 기록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진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의 근본이 어디
인지는 물론 주변 인물들 역시 그 뿌리를 어디에 두었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 곤지왕에 대한 기록은 물론 아좌 태자에 대한 기록 역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일본 역사학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치부해버렸던 인물들이 실존했으며 그들이 왜 왕실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천황의 뿌리엔 백제가 있다는 가계도가 네 사람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백제 왕실과 일본 왜 왕실의 가계도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씨족기》의 내용은 문 교수가 그토록 주장하던 이론의 역사적 사료였다. 역사는 정확한 사료에 의한 고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정확한 사료가지금 문 교수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문 교수는 갑자기 목이 말랐다. 냉장고로 달려가 물병을 꺼내 들고 물을 들이켰다. 마사코와 조민국은 베란다로 나가 막힌 숨을 토해내느라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문 교수가 베란다로 다가가자 조민국은 흥분한 듯이 말했다.
“교수님, 저 《씨족기》가 사실이라면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도 완전히 뒤집어지겠는데요.”
문 교수 역시 《씨족기》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판단한다면 뒤집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개벽이 일 정도로 파괴력을 지닌 책이라 생각했다.
-606~6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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