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참여와 개인의 내적 성장은 함께하는 게 가능한가?
사회와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길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한국사회의 대표적 종교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회 참여와 명상의 상관관계와 공존 가능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1.
대부분의 종교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해방’과 더불어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지향한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 속에서 종교인들은 세상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구원을 추구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한국종교는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구원을 위해 얼마나 힘써 왔던가?
참여와 명상은 종교의 양면과도 같다. 명상이 우리에게 개인의 내면적 성숙을 제공해 준다면, 참여는 자신이 닦은 명상을 통해 세상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명상의 진가는 삶을 통한 구체적인 현실에서 실천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각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세상의 정의와 평화 구현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각 종교계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이 종교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명상과 참여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토론한 결과물이다.
2.
8개의 주제와 종합토론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정배 목사는 ‘고독, 상상, 저항’이라는 주제로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이 시대가 나아가야 할 사회적 영성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고독과 상상은 명상에, 저항은 참여에 해당된다. 종교인은 고독과 상상, 곧 명상을 통해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는 참여의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명상은 자기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 안으로 더 깊이 참여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는 길이라는 것이다.
송용민 신부는 가톨릭 입장에서 기도와 사회 참여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그는 가톨릭의 오랜 영적 수행 전통, 곧 ‘렉시오 디비나’, 관상기도, 향심기도 등 구체적인 기도 방법들은 예수의 기도 수행에 기반한 것이며, 이것은 복음이 지닌 사회적 차원을 실천하는 원천이 되어 왔다고 한다. 또 이러한 가톨릭 수행 전통을 사회 참여로 연결시킬 수 있는 신학적 바탕으로,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과의 실천적 연대야말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삶의 자리라고 보는 요한 밥티스트 메츠의 신학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성공회 박태식 신부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둘이 아님을 드러내는 예로써 가톨릭 사회 영성가인 에드위나 게이틀리의 사막 체험을 소개한다. 에드위나는 생전 처음 보는 자신에게 차 한 잔을 건넨 사막의 여인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한 것이다. 이러한 사막 체험은 에드위나에게 사회 참여의 삶을 살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곧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깨달은 것이다.
유교적 관점에서 최일범 교수는 ‘역학의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의 문제와 해법’이라는 주제로 명상과 참여 문제를 다루었다. 역에서 말하는 ‘도가 때에 따라 변역變易한다’는 것은 도가 일방적으로 때를 드러내는데, 때가 아니면 도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와 때는 서로 의지하는 연기緣起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최 교수는 때에 따라 도를 드러냄이 유학에서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차이가 있다고 본다. 곧 유교에서는 종착지보다 현실의 삶을 그대로 하느님의 역사로 보는 데 반해, 그리스도교는 종착지를 현재의 삶보다 중시한다는 것이다.
유교철학자인 정은해 교수는 ‘유교 문하생이 보는 참여와 명상의 의미’란 주제로 명상과 참여의 상관관계를 논한다. 이를 위해 먼저 유교 수양론에서의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소개하고, 생사관이 사회 참여의 자세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에 유교의 생사관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 예로써 공자의 ‘살신성인’, 맹자의 ‘사생취의舍生取義’, 장문중, 숙손표의 덕德?공功?언言, 주자의 ‘하늘을 섬김으로써 몸을 마치는 것(事天以終身)’ 등이 유학자의 사회 참여적 자세라고 논한다.
불교의 입장에서 미산 스님은 깨달음과 자비가 균형을 잃은 한국불교의 상황을 지적하면서, 대승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명상과 자비행을 하나로 묶는 하트스마일 자비명상법을 제시한다. 하트스마일 명상은 모든 존재들이 이미 온전하다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대전제로 삼고서 존재의 온전한 본래성을 드러내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그 주요 행법으로는 온전함의 명상과 다섯 가지 보조 행법이 있다. 스님은 이러한 깨달음과 자비의 행법이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구체적인 행법을 계발 중에 있으며, 자비 명상을 통해 한국불교계의 수행법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자 한다.
김종욱 교수는 뇌과학적 입장에서 불교명상과 사회 참여의 상관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공감과 자비가 각각 뇌에서 반응하는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뇌과학적 연구에 주목한다. 뇌는 일생동안 그 구조를 계속 수정해 나가며 경험과 훈련을 통해 변화하도록 만들어진 체계이기에 자비심과 같은 특정한 마음상태를 지속적으로 훈련하면 자비를 느끼는 뇌 부위를 활성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비를 느끼는 뇌 부위를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불교의 명상법 중 특히 티벳의 자비 명상법을 통해 실제적으로 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원불교의 입장에서 이공현 교무는 유무념有無念 공부법을 통해 ‘원불교의 명상법인 마음공부와 사회 참여’에 대해 논하고 있다. 유무념 공부는 온전(정신수양)한 생각(사리연구)으로 취사(작업취사)를 체크하는 공부라 할 수 있다. 정신수양이란 온전한 참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수양이며, 사리연구를 통해 바르게 안다는 것은 아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잘 풀어쓰기 위함에 있다. 이러한 마음공부를 위해 원불교에서는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조목별로 정하여 실천하는 것을 권장한다. 이렇게 원불교에서는 삼학三學 공부를 통해 명상과 사회 참여의 균형 있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3.
각 종교에서는 명상 혹은 기도가 중심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그 명상이나 기도의 열매는 사랑과 자비 실천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종교나 종단이든 사랑과 자비 실천은 각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임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종교계는 명상과 사회 참여 문제를 다시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각 종단별로 명상과 참여의 상관관계를 심도 있게 되짚어 본 성과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책을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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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민(씨튼연구원 원장)
이정배 목사(현장아카데미)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박태식 신부(성공회대 교수)
최일범(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교수)
정은해(성균관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미산 스님(상도선원 선원장)
김종욱(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이공현 교무(은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