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맹인 작가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그의 조수가 된 청년
그들 삶에 영원히 각인될 위태롭고도 눈부신 날들
캘리포니아의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작가를 꿈꾸는 라케시는 어느 날 저명한 인도 출신 맹인 작가 아닐 트리베디가 대학원 부설 센터에 머무는 동안 신문을 읽어줄 학생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조수가 되기로 한다. 명망 있는 작가와 가까이 지내면 글쟁이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글쓰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그는 긴장된 마음으로 아닐의 집을 찾는다. 생후 6개월에 시력을 잃고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62세의 남자, 소설과 회고록을 합쳐 열다섯 권의 책을 쓴 노년의 작가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첫 만남에서 라케시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행동거지가 자연스러운 아닐의 모습에 놀라고, 젊고 아름다운 그의 아내 미라에게 또 한 번 놀란다. 그는 사람과 상황을 꿰뚫어보는 아닐의 날카로운 감각과 오랜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유머에 압도당하고, 자신이 동경했던 이상적 힌두 여인상의 현현 같은 미라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맹인 작가의 집을 방문해 함께 차를 마시고 신문과 책을 읽어준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해 보이는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고 조수 일에 익숙해질 무렵, 세 사람의 관계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눈부시게 행복하면서도 위태로움이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라케시는 인생과 사랑의 의미를 새로이 깨달아간다.
판디야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이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블라인드 라이터』는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소설입니다. 라케시는 간절하게 작가의 삶을 꿈꾸는 청년이고, 아닐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데도 온전하게 한 생을 살아온 노년의 작가이며, 그의 아내 미라는 이 둘의 애정의 대상으로 존재합니다.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 동안 삼각관계가 싹틉니다. 수개월 동안 그들은 서로를 알아가게 되며 그들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킬 한순간으로 점점 다가갑니다. 나는 이 이야기 속에 몇 개의 커다란 주제―이민 경험, 사랑의 본질,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담아봤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천착한 것은 시각장애라는 육체의 불구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과 볼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들과 눈을 감고도 보이는 진실에 대하여
소설은 세 사람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리드미컬하게 묘사하며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풀어나간다. 어떤 대목은 지나치게 세밀하고 어떤 대목은 점자를 더듬는 듯 감각적이며 또 어떤 대목은 눈먼 사람이 묘사하는 세상처럼 희미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아닐은 젊은 시절 회고록 작가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의 책을 찾지 않는다. 비평가들도 열다섯 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를 문학적 성과로 여기기보다 맹인 작가의 숨은 재주 정도로 폄하한다. 그는 자신의 내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밝힌 회고록 『눈먼 욕망』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유한 인도의 가정에서 맹인 아들로 태어났고, 어둠 속에서 혼자 있던 나에게 황홀하고도 유일한 위안거리는 수음이었다.” “나는 평생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겉모습에 감추어진 깊은 내면을 탐색했지만, 아무도 내게 진실로 화답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평생에 걸쳐 찾은 사랑이 미라였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미라는 대학원 시절 낭독회에서 아닐을 본 순간 매혹되었고, 다음 날 다시 만난 이후로 그와 단 하루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결함을 껴안고 나아가는 남자의 자부심 같은 것이 스물여섯 살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그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완벽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라케시가 그들과 함께 지낼 무렵에는 둘 사이의 균열이 조금씩 더 커지는 중이었다.
라케시에게 아닐은 글쓰기 스승이자 아버지가 충족시켜주지 못한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다. 아닐은 소원하게 지내는 아버지보다 다정하고 친밀했고, 그의 작가적 재능을 알아봐주고 지지해주었으며,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솔직하고 농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때로 무섭도록 낯설고 안타까울 만큼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는 맹인의 몸으로 늙고 쇠잔해져가는 그의 육체적 한계가 크게 영향을 주었으리라.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만족스러운 작품을 쓰지 못하고, 일상에서는 아내에게 의지해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이런 자괴감은 그를 더욱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이는 미라에 대한 난폭하고 괴팍한 행동으로 표출된다. 그는 미라를 라케시에게 떠밀듯이 행동했고, 그로 인해 라케시는 미라에게 더욱더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된다.
라케시에게 아닐과 미라와 함께한 시간들은 후회와 죄의식이 공존하는, ‘청춘’이라고 불러도 좋을 아름답고 아픈 한 시절이다. 이루지 못한 꿈이자 놓쳐버린 사랑이며 현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열정이 거친 숨을 몰아쉬던 때다. 그러니 이 소설은 라케시의 성장소설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는 미라에게 사랑을 느끼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오래전 헤어진 옛 연인과 재회한다. 이 모든 게 맹인 작가 아닐 트리베디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얻은 것이다. 눈먼 자에 의해 비로소 눈을 뜨는 아이러니가 이 소설의 백미라 하겠다. 그것은 라케시, 아닐, 미라, 세 사람이 인생의 한 지점을 같이 통과하며 마주한 내면의 눈뜸이다.
훗날 라케시는 미라가 아닐과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쓴 소설 『블라인드 라이터』의 낭독회장을 찾는다. 재회한 미라에게 라케시가 들려준 마지막 말이야말로 그들이 함께했던 날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따스한 고백이다.
“내가 아닐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좋아했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는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주었어요. 내가 철없이 굴었을 때조차도 말이죠. 내가 정말 필요로 할 때도 진심으로 잘해주었어요. 당신을 이렇게 만나니 내가 아닐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어요. (중략) 내게 늘 의문이 있었는데, 혹시 마지막 책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실패한 작가로 여기진 않았을까……. 그런데 실패라고 할 수도 없어요. 아닐은 완주했고, 잘 살다 갔어요. 내 아버지도 잘 살았고, 완주한 셈이고요. 단지 그들에게 사랑이 늦게 찾아왔을 뿐이죠. 그들이 기다리던 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찾아왔잖아요. 내 생각에 삶은 실로 신비로울 뿐만 아니라 아름다워요.” (본문 217~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