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시대의 사랑과 연애이십 대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를 보면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이가 20%에 이른다고 한다. 비혼율이 급상승한다는 통계 결과도 있다. 이를 보면 ‘사랑과 연애’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우리는 여전히 타자와의 만남을 원하지만, 세상이 타자와 만나기가 무서운 사회가 되어가는 탓은 아닐까.
아마미야 저는 고민 상담 연재를 두 개 하고 있는데요, 둘 다 “연애를 할 수 없다”는 고민이 엄청 많아요.
기시 오네트(일본에서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온라인 결혼중개업체)에서 발표한 ‘제20회 새내기 성년 의식 조사’에 의하면, 새내기 성년의 7할이 ‘교제 상대가 없다’, 5할이 ‘교제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해요. 가장 재밌는 게 ‘한 번도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2할 정도였다는 거예요. 혈기왕성한 시기인 이십 대 얘기예요. 기본적으로 어느 조사를 봐도 성행동이나 연애행동 자체가 점점 줄고 있어요. 또는 몇 번이나 사귄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한 번도 사귄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갈리고 있어요.
- 본문 43~44쪽
타자와 만나기 무서운 사회,
연애는 할 수 있는 사람만 하고 있다시대가 바뀌면서 사랑과 연애의 모습, 욕망의 풍경도 달라진다. 저자들은 1990년대만 해도 사회규범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멋진 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성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약물복용담을 자랑하는 것이 멋지게 보이던 시대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섹스에 탐닉하는 것은 물론, 술을 마시는 것조차 촌스럽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뭔가에 도취되는 것을 멋있게 여기던 저때와 달리 지금은 특별한 체험에 휘둘리는 사람은 촌스러운 걸로 치부된다. 시대에 따라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욕망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 시대에 느껴지는 큰 특징 하나는 타자에 대한 배외주의, 혐오 감정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아마미야 꼭 연애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친구가 생기지 않는 거죠. 다들 사람 사귀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듯해요.
기시 모두들 사람이 두려운 거겠죠. 두렵기 때문에 만나지 못해요. (…) 타자가 두렵기 때문에 혐오 발언 같은 배외주의적인 일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공격성의 이면에는 공포감이 있는 것이죠.
아마미야 틀림없이 뭔가를 빼앗기거나 손해를 입거나 끔찍한 일을 당할 거라는 느낌 때문에 공격적이 되는 거겠죠.
기시 (…) 전반적으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어요. 그래서 뭐랄까, 극단적이에요. 타자가 두려워서 관계를 맺을 수 없다거나 (…)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많이들 그래요. 모두 이미 친구나 연인을 만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타자가 두려운 사회에 살고 있어요.
- 본문 55~58쪽
연애는 꼭 해야 하나?
바람은 피면 안 되나?도저히 타자와 마음을 나누기가 무서운 사회에서는 연애 감정 역시 꺼리게 된다. 실제로 그런 경향이 짙어지는 것이 오늘날의 풍조다. 하지만 연애가 없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없을까? 사랑이 옅어지면서 우리는 타자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능력도 같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시 만나서 연애의 계기를 만드는 걸 이른바 ‘소셜 스킬’이라 하잖아요? 그건 말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요. 신체를 이용하면 폭력이 되고요. 단순히 “좋아해”라며 내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끔 만들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전술이 필요하거든요. 상대가 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건데, 이걸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죠. 실은 우리도 그렇고 이 사회가 언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마미야 진정한 의미에서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기시 공공연하게 개인적인 의사소통들은 하고 있지만 어딘가 서툰 점들이 있는 거죠.
- 본문 32~33쪽
우리는 왜 만나고 사랑하고 혐오할까
보통의 행복, 그리고 생의 가능성혐오 분위기가 높은 사회,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격차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도 연애도 불평등하게 조직된다. 이른바 ‘연애 격차 사회’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들은 ‘보통의 행복을 얻으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한다.
‘보통의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을 잘 가꾸는 삶을 뜻하는 말인 한편, 우리가 경계할 것들을 말하고 있다. 꼭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항상 대단해야 한다는 강박, 누구보다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경쟁심 들을 비우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도 행복할 것. 이렇게 자신이 머물 ‘보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 존재의 자리를 긍지와 자부심으로 채워나가는 것. 이것이 저자들이 권하는 행복의 방향이며 생의 가능성이다.
기시 (…) 끝까지 파고들면 우리들의 욕망은 굉장히 뻔해요. 엄청난 집착을 가진 사람만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도 욕망이 있는데, 사실 의외로 온건해요. 특별한 미인이 되지 않아도, 그렇게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고요. 평범하고 아담한 곳에서 그럭저럭 살아나가기를 바라죠. 많은 사람이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욕망도 평균치에 가깝게 온건해지는 거죠. 그래서 보통의 행복을 얻는다면,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 본문 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