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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청천과 청렴정직 문화

포청천과 청렴정직 문화

  • 김지수
  • |
  • 전남대학교출판부
  • |
  • 2018-04-05 출간
  • |
  • 316페이지
  • |
  • 153 X 227 X 26 mm /516g
  • |
  • ISBN 9788968494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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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하나. 포청천包靑天의 청렴淸廉 강직

왜 포청천包靑天인가? - 청렴에 대명사 ‘청천’

요즘 젊은 세대한테는 좀 낯선 이름일지 모르나, 우리에게 TV극을 통해 익숙하게 알려진 포청천은, 지난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 때 조순 후보가 인물 이미지로 내세워 큰 효과를 보았을 만큼,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청렴강직의 화신이다.
북송 진종眞宗 함평咸平 2년(999)에 태어난 포청천은 지난 천년 동안 중국대륙에서 가장 명망 높고 존경받는 ‘청렴강직’에 대명사였다. 황제 얼굴에 침이 튀길 정도로 집요하게 간쟁하며 탄핵한 불굴의 강직성, 현명하면서 엄격한 재판과 법집행으로 조정과 지방 모든 관리들을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든 ‘철면鐵面어사’였다. 실제 모습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나 무서웠던지 검은 호랑이(黑虎)를 형상화한 ‘검은 얼굴(흑검黑臉)’로 잘 알려져 있다.
‘청천靑天’은 정사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사후 민간에서 그의 강직한 청렴성을 칭송하여 소설이나 잡극(연극)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붙은 별명인 듯하다. 허나 후대에는 ‘청렴강직’에 대명사가 되어, 예컨대 명대 청렴강직한 해서海瑞는 ‘해청천海靑天’이나 ‘남포공南包公’으로 불렸고, 우겸于謙은 ‘우청천于靑天’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 실제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손문孫文이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뒤엎고 건국한 중화민국 국기에도 ‘청천’이 공식 등장하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지금도 대만에서 공식 사용하는 중화민국 국기의 정식 명칭은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다. 국기에 1/4을 차지하는 오른쪽 위 사각형 바탕이 바로 파란 하늘을 상징하는 ‘청천’이고, 그 안에 가득 차게 하얀 해가 눈부시게 빛나는 ‘백일’이며, 나머지 3/4 바탕은 모두 붉은 색으로 ‘만지홍滿地紅’이다.
헌데, 국기를 처음 고안할 때 결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우연에 일치인지 필연에 귀결인지, 중화민국은 ‘만지홍滿地紅’ 대륙을 공산당 홍위병한테 내주고, 한쪽 모퉁이 파란 바다 태평양 가운데 남국에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아열대 섬 포르모사로 쫓겨났다. 국기를 시계바늘 방향으로 90°만 돌리면 현재 판세지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나라 태극기도 그렇다. 태극에 양인 빨간 무늬는 북한 공산당을 가리키고, 음인 파란 무늬는 아래 남한을 가리키며, 8괘에 대표인 건곤감리 4괘는 주변 4대강국을 상징한다는 게 일반 해석이다. 일장기도 마찬가지 풀이가 가능하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역사상 청렴강직한 위인이 무수히도 많은데 왜 꼭 ‘포청천’이 거의 유일한 대명사가 되어 천하를 제패했는가? 예컨대, 백이숙제도 있고, 한나라 때 동선董宣이나 양진楊震도 있고, 명나라 때 해서海瑞는 스스로 관을 짜 놓고 황제한테 직언했다. 또 당나라 때 포학무도한 측천무후 치하에서 고군분투한 적인걸狄仁傑 같은 분은 근래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전설적인 위인이다. 어느 누구도 포청천 못지않게, 전혀 손색없는 훌륭한 성현으로 청렴강직에 대명사로 불릴 만하다.
그런데도 하필 포청천 이름만 천추에 길이 만천하에 두루, 타에 추종을 불허하며 드높이 날리는가? 아직 이렇다 할 근거나 해석은 찾지 못했다. 중국 사람들은 누구나 다 당연히 그러려니 여기고, 전혀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어쩌면 나 혼자 청렴정직을 주제로 이번 글을 쓰면서 저절로 떠오른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헌데 ‘궁窮하면 통한다’는 주역 말씀처럼, 막혀서 혼자 끙끙 사색하다 보니, 어느 순간 뻥 뚫린 듯 의문이 풀렸다. ‘통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몽고족이 세운 세계제국 원나라 식민통치 아래서 온갖 수치와 모욕, 수탈과 착취를 당하며 극도로 억압당한 한족漢族이, 자존심과 긍지로 희망과 자위를 위해 한 줄기 빛을 찾아 등불로 횃불로 내세운 결과 나타난 민족의 구세주였던 것이다! 정치군사적 박해와 사회경제적 핍박이 교착하던 현실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하게 자위적 해학과 풍자로서 문학예술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원이 통치하면서 한족은 그 어느 피지배 민족보다 가장 비천한 최하 대우를 받았다. 또 몽고족은 세계를 정복하면서 항복하지 않는 성城은 풀뿌리까지 철저히 말살할 만큼 잔인한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니 남송을 멸하고 중국 전역을 지배한 몽고족 관리들이 각지에서 온갖 수탈과 착취를 자행하던 현실에서, 조그만 숨 쉴 틈도 찾을 수 없던 일반 민중들은 하는 수 없이 풍자와 해학으로 넘치는 연극놀이에 청렴강직한 명판관 포청천을 등장시켜 자위의 돌파구를 연 것이다. 폭발할 민족적 울분과 분노, 원한을 분출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고 카타르시스 정화를 이루며 극중 복수로 통쾌한 대리만족을 얻었을 텐데, 이보다 더 안전한 효과적인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포청천과 똑같은 시대배경에서 탄생해 흥행에 크게 성공한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바로 중국 4대 기서奇書 가운데, 원말에 시내암施耐庵이 썼다는 수호전水滸傳과 라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다. 수호전은 봉건통치계층의 포학과 부패에 항거하는 농민전쟁의 영웅담으로,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주제는 포청천과 일맥상통한다. 삼국지통속연의는 특히 관우가 중화영웅으로 급부상해 추앙받는 결정적 인연이 되었는데, 대하역사소설로서 지금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모두 한족이 몽고족의 식민지배 아래 억압과 착취를 당하던 비참한 시대배경에서 탄생한 공통점이 있다.
물론 포청천이 살아생전과 남송 때에도 널리 존경받는 유명 인사였지만, 원나라 때 창작되어 흥행한 각종 문학예술 작품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당대를 풍미하고, 명청 대에도 계속 그 명망과 성가聲價를 유지한 것이다. 실제로 포청천이 주인공인 작품만도, 희곡은 원대에 24편인데 그중 절반인 12편이 현전하며, 작자미상으로 순전히 자생적 민간예술 작품도 대략 절반이나 된다. 명대 작품은 9편 중 6편과 일부가 현전하고, 청대 작품은 9편 중 4편이 전해진다. 또 경극京劇과 지방희地方戱는, 내용별로 27종에 명칭제목 별로는 모두 76편이나 되는데, 비슷한 내용으로 판본 수가 많은 것은 14편이나 9편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밖에도 강창講唱이라고도 불리는 설창說唱문학 작품도 사화詞話 8편, 보권寶卷 6편, 고사鼓詞 8편이나 된다.
이러한 민간문학 작품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고려 말부터 조선에 걸쳐 판소리 같은 민간예술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인연이 되었다. 우리가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응징하고 춘향이로 대표되는 서민대중의 심리적ㆍ정서적 억압과 질곡을 해방시켜준 줄거리를 생각해보면, 포청천이 원나라 지배 아래 한족 민중의 비애와 원한을 풀어주고 위로와 희망을 불어넣어준 위상과 비중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것도 같은 민족끼리 단순히 지배계층의 억압과 수취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북방 오랑캐 야만족으로만 치부했던 몽고족한테 온갖 민족적 수치와 모욕을 겪으면서 착취와 수탈을 함께 당하던, 원나라 때 한족의 특수한 상황을 상정해보라!
요컨대, 포청천은 본디 청렴강직한 성품과 덕행에다가, ‘청천靑天’이란 가장 일반보편적인 상징적 대명사로, 이민족 지배 아래 수모와 억압을 당하던 시대적ㆍ민족적 배경까지 한데 어우러져, 역사상 누구도 감히 견주거나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유일무이한 대표로서 ‘청렴강직’에 화신으로 최고절정에 오른 것이다.
이러한 희곡ㆍ경극ㆍ지방희ㆍ설창문학 같은 민간문예 작품은, 명청 대에 소설로도 정착하기에 이른다. 명대 7편, 청대 5편이 전하는데, 붕몽룡馮夢龍의 성세항언醒世恒言이나 경세통언警世通言처럼 40권 단편소설집에 1편을 이루는 것도 있고, 32회, 62회, 68회, 100회, 120회에 걸친 장편연작 소설을 이루는 대작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 가운데 붕몽룡馮夢龍의 경세통언警世通言에 실린 ‘세 차례 몸을 나타내 포룡도包龍圖가 원통함을 풀어주다(三現身包龍圖斷寃)’는 단편소설을 번역하여 뒤에 소개한다.
참고로, 이러한 문학작품에는 지금 우리가 익히 부르고 듣는 ‘포청천’이란 호칭은 제목에 전혀 등장하지 않고, ‘포공包公’이나 그 대표 벼슬 이름을 붙인 ‘포룡도包龍圖’나 ‘룡도龍圖’ 또는 ‘포대제包待制’가 주로 쓰인다. 물론 호칭이 전혀 없이 내용으로 붙인 제목도 많다.

포청천包靑天은 누구인가?

포청천은 올해로부터 1019년 전인 북송 진종(眞宗: 997~1022년 재위) 함평咸平 2년(999), 지금 안휘성安徽省에 속하는 려주廬州 합비合肥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포증包拯이고, 자字는 희인希仁인데, 이름은 ‘건질 증拯’이니 인민을 도탄에서 건져 구제한다는 뜻이고, 자 ‘희인’은 ‘어짊을 바라고 희망한다’는 뜻이니 역시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치를 담았다. 별명호칭인 ‘청천靑天’은 구름 한 점 없고 미세먼지도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니, 바로 청렴한 정신과 청정한 마음을 상징한다. 과연 그는 이름이나 자나 별호에 모두 걸맞게 명실상부한 삶을 살았다.
사실 필자는 포청천 탄신 1천주년이던 1999년 짤막한 포청천 약전을 적어 법조 관련 잡지에 기고했으나, 아쉽게도 실리지 않아 묵혀둔 원고를 바탕으로 대폭 보충해 19년만에 이 글을 쓴다.
포청천은 인종(仁宗: 1022~1063년 재위) 천성天聖 5년(1027) 29세에 1갑甲으로 진사에 급제해 대리평사大理評事로서 건창建昌현감에 임명되었다. 허나 부모님이 연로해 객지로 모시고 갈 형편이 못되어 벼슬을 사양하니, 고향에 인접한 화주和州에 조세감독으로 변경 발령했다. 그래도 부모님이 고향 집을 떠나려 하지 않자, 마침내 관직을 사임하고 부모님 봉양에 전념했다. 그 뒤 몇 년 사이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자, 무덤에 움막을 짓고 여묘廬墓살이로 3년상을 치를 만큼 효성이 지극했다. 친상을 마치고도 떠날 생각을 않자,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거듭 강권해 마흔이 다 되는 나이에 양주揚州 천장天長 현감이 되었다. 인종 강정康定 원년(1040)에는 단주(端州: 지금 광동성 조경肇慶) 지사로 나갔다. 처음 두 직임 때부터 청렴정직한 명성이 자자해, 곧 조정에 불려와 전중승殿中丞을 맡았다.
그 뒤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어서는 장수를 선발하고 병사를 훈련시켜 변방 거란을 방비하도록 건의하였고, 거란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조정에서 삼사호부판관, 상서성공부원외랑, 삼사호부부사, 천장각대제天章閣待制, 지간원知諫院 등 직책을 맡고, 지방에도 여러 차례 나가 전운사轉運使 등 중요 관직을 맡았다. 황우皇祐 4년(1052)에는 외척 장요좌張堯佐를 탄핵해 인종 비위를 심하게 거스른 탓에 룡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라는 허울 직함을 갖고 하북 도전운사를 지내서, 사람들이 흔히 ‘포룡도包龍圖’라 부르는 인연이 되었다. 가우嘉祐 원년(1056)에는 다시 조정으로 와서 룡도각학사와 우사랑중 직함으로 개봉부 지사가 되고, 2년 뒤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다. 다시 2년 뒤엔 삼사사三司使로 승진하여 전국 재정을 총괄하는 중신이 되고, 부재상에 해당하는 추밀부사樞密副使까지 올랐는데, 얼마 안 되어 가우 7년(1062) 5월 64세로 별세했다.
한평생 인종 한 황제만 섬긴 셈인데, 황제가 친히 그 집에 찾아가 영전에 술을 따르고 하루 동안 조정 국사를 쉴 정도였다. 또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추증하고, 시호諡號는 그의 효성과 청렴을 기려 효숙孝肅으로 하사하였다.

지혜로운 신명 재판

양주揚州 천장天長현감에 부임하자마자,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도둑이 들어 소의 혀만 잘라간 해괴한 일이 생겼다고 신고해왔다. 이에 포청천은 그 사람에게 집에 돌아가서 그 소를 잡아 고기를 주민들에게 팔라고 지시하였다. 농경사회에서 마소는 농경운송을 전담하는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기 때문에 엄격히 통제하였다. 당송 대에는 남의 마소를 고의로 죽인 죄는 징역 1년반, 주인이 자기 소를 잡은 경우에도 징역 1년에 처할 정도였다.(宋刑統, 제15권, 구고율廏庫律)
소 주인은 포청천이 시킨 대로 소를 잡아 팔았는데, 과연 임의로 소를 도살했다고 신고하는 자가 있었다. 이에 포청천이 “어찌하여 남의 소 혀를 몰래 잘라 놓고서, 그 소를 잡는다고 신고하느냐?”고 호통을 치자, 그 도둑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죄를 스스로 실토했다.
또 한 번은 두 사람이 술을 마시는데, 한 사람은 술을 마실 줄 알고, 다른 한 사람은 잘 마시지 못했다. 술 마실 줄 아는 사람은 소맷자락에 금을 몇 냥 지니고 있었는데, 술에 취해 빠뜨려 잃을까 두려워하여, 이내 금을 꺼내 술 마시지 못하는 사람한테 맡겼다. 나중에 술 마신 사람이 술에서 깨어 금을 돌려달라고 찾자, 술 마시지 못한 사람은 금을 맡은 일이 없다고 시치미를 뚝 뗐다. 이에 금 주인이 소송을 벌여, 포공이 신문하였으나 끝내 승복하지 않고 버텼다.
포공은 은밀히 관리를 불러, 금을 숨긴 자가 집안 식구한테 금을 보내라고 분부하는 것처럼 꾸민 내용으로 서신을 적어, 그 문서를 갖고 그 집에 가서 내밀게 했다. 그 집안 식구는 일이 들통 난 줄 알고 곧바로 금을 관리한테 내주었다. 이에 관리가 금을 갖고 관가에 돌아와 보고하자, 금을 숨긴 자는 대경실색하며 마침내 승복하였다.

정의로운 민본 정치와 청렴강직한 솔선수범

포청천은 천성이 워낙 청렴강직하고 엄숙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가는 곳마다 적폐를 개혁청산하고 민생편리와 복지 증진에 힘써 인민들의 사랑과 신뢰ㆍ존경을 받았다.
42세 때 두 번째 관직인 단주端州 지사로 나가서는, 그곳 특산품 공물을 둘러싼 엄청난 착취폐해를 단번에 일소해 평판이 천하에 자자해졌다. 단주벼루(단연端硯)는 매년 조정에 바칠 공물로 징수되는 액수가 정해져 있는데, 이전까진 관리들이 온갖 구실과 빌미로 정수에 수십 배까지 징수해 조정 고관대작한테 선물이란 명목으로 뇌물을 바쳐, 권귀호세와 결탁하고 승진과 부귀를 노리는 폐단이 극심했다. 포청천은 이런 교활하고 악랄한 착취부패를 혁신하고, 자신도 임지를 떠날 적에 벼루 하나도 갖지 않는 청렴결백으로 솔선수범하였으니, 백성들 환호와 신망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조정에 들어와서도 백성들 사랑은 식지 않고 여전하여, 아주 따뜻하고 너그러워 인정仁政과 구휼救恤을 널리 펼쳤다. 삼사호부판관과 삼사호부부사로 재정을 맡았을 적엔, 몸소 수고를 무릅쓰고 직접 민정을 살펴 시급한 정무를 파악해 폐해를 혁신하여 조야에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한번은 강남에 극심한 가뭄재해가 발생해 몸소 현장답사를 나갔는데, 천리에 이어진 붉은 맨땅에 굶주림에 허덕이는 인민들을 보고, 긴박한 응급조치로 정부곡창을 즉각 열어 양식을 나눠줌과 동시에 급히 조정에 보고하였다. 정상적인 보고와 회신을 기다리려면 몇 달이 걸려 수많은 인명을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목차


머리글 / 청렴(淸廉) 정신이 왜 필요한가? / 5

하나. 포청천(包靑天)의 청렴(淸廉) 강직 / 13
둘. 전통법문화에 뇌물죄와 청렴 정신 / 45
셋. 선진(先秦) 시대 청렴(淸廉) 정신의 발현과 그 귀감 / 79
넷. 춘추(春秋) 정국(鄭國) 자산(子産) 시대 / 159
다섯. 先秦 제자백가의 淸廉 정신 / 203
여섯. 『뇌물의 역사』를 읽고 청렴 정신을 되새기며 / 253

맺음말 / 소소한 일화와 경험담 / 310
참고문헌 /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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