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나만의 사전을 쓰는 일이다
칼럼니스트 이윤정이 골라낸 인생의 특별한 말들
같은 말이어도 그 말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나 기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벚꽃’ 하면 누구는 입학식, 첫사랑을 떠올리고 누구는 벚꽃이 필 무렵 돌아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죽음을 생각할지 모른다. 이처럼 말은 말로서 존재하되, 그 안에 많은 사연도 품게 된다. 《그 여자의 공감 사전》은 저자가 살아오면서 특별하게 와 닿은 말들을 뽑아 자신의 시각으로 정의하고, 그 말들이 남다르게 된 사연을 털어놓은 에세이다. 말들을 정의하려면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저자가 “말들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힌 이유다.
자신을 탐구하는 방법,
나만의 사전 쓰기
어떤 말은 보기만 해도 설레고, 어떤 말은 바라보면 슬프고, 어떤 말엔 괜스레 미소 짓게 된다. 보듬어 주고 싶은 말이 있고, 영 자신과 친해지지 못하는 말도 있고 그러다 마침내 화해하게 된 말도 있다. 또 시간이 지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같은 말을 다시 정의하게 되는 일도 있다. 말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산다는 것은 자신만의 사전을 쓰고 또 그것을 거듭 수정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스쳐 지나듯 혹은 필연적으로 만나는 낱말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왔는지, 지금은 또 어떤 의미인지 기록하면서 삶을 다져 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전 쓰기는 일기를 쓰는 것보다 더 치밀하게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영 철들 것 같지 않은
‘까다로운’ 그 여자가 선택한 낱말들
말들을 정의할 때 그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배어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여자’ 이윤정은 어떤 사람일까. 막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자신이 “커서 뭐가 될”지가 여전히 궁금하다. “젊었을 땐 늙은 마음으로, 늙어선 다시 철없어진 마음으로 사는 자세” 때문에 앞으로도 영 철들지 못하고 나잇값도 못하리라 예감하는 사람이다. 그 비법은 ‘나는 모른다’의 정의에서 엿볼 수 있다.
나는 모른다: 여자의 오래된 선택 장애 혹은 비겁함 혹은 무지함 때문에 자꾸 남들에게 하게 되는 말이지만,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 여자가 세상의 확신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 주문과도 같은 말. -215쪽
확신 자체를 점점 더 믿지 않게 된 이유도 있다.
확신이 혐오와 맞물렸을 때 그 확신은 위험하고 두려운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여자를 배제하고, 외국인을 배제하고, 성소수자와 장애인을 배제하고,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고…. -217쪽
그러면서도 앞으로 대략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기준 정도는 세워 두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며 냉소를 날리지 않는 사람. 페이스북 쓰기부터 그림 그리기까지 늘 현재진행형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하는 사람. 여전히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퍼 온 웃긴 글’ 말고 자신만의 유머 감각을 보일 줄 아는 사람. 남의 말보다는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줄 아는 사람. 자기만의 언어로 잔소리만 하지 않는 사람. -94쪽
또 저자 이윤정은 ‘까다로운’ 사람이다. 이런 주변 평에 억울한 마음도 별로 없다. 젊었을 때는 까다로운 자신이 밉고 늘 그런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변명한다.
그건 내가 남과 어떻게 다른지, 달라야 할지 고민한 결과야. 매사에 엄격하겠다는 까다로움이 없다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잖아. 아직 세상에는 까다롭게 맞서고 지적‘질’해서 바꿔야 할 일이 많아. -214쪽
까다로움만큼 저자 이윤정을 특징짓는 것이 ‘엉뚱함’이다. 역사적인 2016년 ‘11월 12일’을 ‘십일 십이’로 부를지 ‘일일 일이’로 부를지 고민하는 식이다. 카오스 자체인 핸드백 안을 들여다보며 [토이 스토리] 같은 이야기를 상상하고, 새해 꿈을 ‘손톱 손질’로 정하기도 한다. ‘빈둥빈둥’거리며 이것저것 곰곰 생각하다 남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건져 내는 것이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맞아, 맞아’ 하고 큭큭대고 공감할 만한 구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