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두인 예술과 정치의 대위법 속
몽유에 갇힌 순수세계를 향한 대군의 꿈
한 문헌학자의 28년 열정으로 그려낸 우리의 걸출한 문예인 안평대군 초상!!
훈민정음, 외교, 경전, 서예, 회화, 학문, 한시… 600년 사직의 정치와 문예의 토대가 만들어진 안평대군 시대의 생생한 재구성
600년을 간단없이 소곤소곤 전해져오는 안평의 걸출함, 그 실체 속으로 들어가다
이 책은 안평대군의 시간 이후 600년이 지나도록 문사와 예인들 사이에서 간단없이 회자되고 칭송되어왔던, 바로 그 안평을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 문헌학자의 노작이다. 이 방대한 한 권의 책을 통해 안평은 더 이상 정쟁의 희생자가 아니라, 학문과 시와 그림을 사랑하는 예인들과 함께 순수 예술세계를 건설하려던 당대 동아시아를 통섭하는 시대정신의 혁명가로 새로 태어난다.
안평은 세종의 셋째아들로 태어난 대군의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화원인 안견에게 꿈속에서 본 무릉도원을 그리게 했는데, 그것이 세인에게 익히 알려진 〈몽유도원도〉다. 그동안 미술사가들에 의해 알려진 바대로 이 그림의 모티브인 꿈을 꾼 이가 안평대군이라는 것, 그리고 안평대군이 고전문학 연구자와 서예가들이 칭송하듯 한시에 뛰어나고 명필이었다는 것, 역사가들의 서술에서 보듯 그의 바로 손위 형인 수양대군이 당대의 권력을 지닌 문사들과 친밀한 아우를 시기해 정난을 일으켜 제거했다는 평가…. 이런 것들이 그동안 알려진 안평의 초상이었다.
실제로 저자도 자료를 모으고 또 평전을 집필하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은 ‘그가 야심가인가, 희생자인가’ 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편찬자들이 스스로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날조가 심한 《단종실록》을 통해서는 안평대군의 실상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안평대군의 시문을 모으고, 안평대군에게 헌정한 시문들을 되읽으면서 저자는 의문의 방식을 바꾸어야 함을 깨닫는다. “문학예술의 모임 자체가 권력행위로 간주되었던 시대, 국왕의 아들이면서 지성의 모임을 주도했던 안평대군의 행위는 실제 목적이야 어떻든 그 자체가 권력의 현시로 간주되었다는 점, 이것이 안평대군의 비극이 지닌 진정한 의미”라고.
한 문헌학자의 28년 열정이 생생하게 구축한 안평대군이라는 건축물
이 책은 안평대군이라는 600년 전에 살았던 한 인물을 지금 우리 옆에 살아 있는 실존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들이 재료로 동원되어 지어진 건축물과도 같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기존의 번역을 바로잡아 가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건축을 해왔다.
이 책의 저자인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는 28년 전 일본 교토대학 유학시절 우연히 만난 《몽유도원도시화권》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간 김삿갓, 정도전, 김시습, 정약용 등 우리 역사 속 걸출한 인물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해 교양과 자긍심의 토양을 선사했던 그였지만, 정작 집요할 만큼 열정적으로 모았던 것은 안평대군의 초상을 완벽하게 그리기 위한 조각그림들이었다.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모으고 시문과 문헌들을 번역해 두면서 안평대군이 살던 시대를 재구성해왔다. 마치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인물에 대해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안평대군의 정신세계를 규명하기로 결심하고 그의 삶을 추적했다.
지금 우리 역사 속 천재 문예인을 추억하고 현대사에 투영해야 하는 이유
문학예술 모임은 근대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대에서도 흔히 정치행위로 간주된다.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는 것이 예술가들의 친일파 논란도 그렇지만, 최근 예술과 정치의 엉뚱한 결합의 폐해에 진통을 겪지 않았는가. 저자는 안평대군의 경우처럼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개인의 파국 또한 그리 처참한 예도 그리 많지 않다면서, 청백의 순수예술 세계를 꿈꾸던 안평대군의 삶을 ‘35년간의 몽유’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깨고 나도 뒷맛이 씁쓸한 꿈. 책을 횡단하는 〈몽유도원도〉가 갖는 메타포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과 예술, 정치현실을 관통하는 씁쓸함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한 인간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지만 한 인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어 그와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면 얼마나 즐거운가! 여기 조선 문화의 근간을 만드는 데 기여한 귀공자가 있다. 세종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한 시대의 문예를 주도했던 안평대군. 활활 타오르던 그 생명의 불꽃은 정치의 장에서 사그라졌지만, 그렇다고 그의 정신까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 안평대군의 시대에는 학문과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 고독한 개인의 영역이나 자기목적적인 문화 영역으로 상승하지 못했다. 차라리 학문과 예술이 절대적 진지함과 엄숙한 번민을 자기 부담으로 지녔더라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 학문과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현재의 한국 상황으로서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저 15세기 초반의 학문과 예술에 대해 현재의 바람을 투영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