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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중국인

전통과 중국인

  • 류짜이푸
  • |
  • 플래닛
  • |
  • 2007-08-20 출간
  • |
  • 623페이지
  • |
  • 148 X 210 mm
  • |
  • ISBN 978899197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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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전통은 그에 부합하는 인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중국 민족의 자아 인식의 역사는 아편전쟁, 특히 제2차 아편전쟁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아편전쟁 이후에야 중국 민족은 자아도취의 맹목적인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신의 낙후된 모습과 암울한 면을 직시하게 되었다. 전쟁이 가져다 준 커다란 패배는 중국 민족의 자존심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고, 그들로 하여금 실패의 원인에 대해 숙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 황제에게 세계지도를 내보이기 이전, 중국은 지구가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청조 말기에 이르러서도 조정의 황제와 신하들은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장기간의 쇄국으로 인해 중국 민족은 세계에 대해 전혀 무지했으며, 따라서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그 어떤 거울도 갖고 있지 못했다. 아편전쟁과 청일전쟁 이후, 서양 열강과 가까운 일본에 비추어 중국의 실제 모습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중국 민족은 자신들이 얼마나 낙후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점차 심화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즉 자신의 기술?공업 방면의 낙후성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문화 관념과 사고방식의 낙후성을 깨닫게 되었다. 세계라는 거대한 거울 앞에 서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비로소 그들의 중화사상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민족의 약점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며 자신의 낙후성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개혁할 때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인의 민족의식은 민족적 자존심의 커다란 좌절과 함께 고양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전통문화의 약점에 대해 역사적으로 반추하기 시작했지만, 그 시작 단계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문화체제 내에서 결함을 극복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5?4 운동의 선구자들은 중국을 현대화하려면 정치와 경제제도에 대한 개혁 말고도, 인간의 자질을 개혁하고 그 영혼을 치료하고 개조함으로써 현대적 의미의 인간으로 변혁하는 일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수천 년을 이어 온 중국의 전통문화는 5?4 운동의 선구자들에 의해 중국의 쇠퇴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원흉으로 격렬하게 비난받았고, 공자는 봉건문화의 대표 격으로 그 비난의 중심에 섰다. 5?4 운동의 선구자들은 철저하게 뉘우치기를 원했고, 모든 것을 참회하기를 원했다. 그들의 주제는 ‘인간’이었다. 양무, 유신, 혁명, 민주 등 이전에 사용했던 모든 처방이 무위에 그치자 그들은 그 모든 것의 앞에 ‘인간’이 있음을 깨달았다. 전통은 그에 부합하는 인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전통이라는 유전인자를 바꾸지 않는 한, 개혁은 불가능했다.

예치질서 ― 새파란 ‘애송이’를 만드는 문화

루쉰은 구문화 전통이 가진 뿌리가 기형적일 정도로 견고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 구조와 문화 체제를 옹호한 채 국민 영혼을 갱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다른 사상가들처럼 동서양 문화의 표층을 비교하는 데 주력하지도 않았고, 추상적으로 중국 민족의 약점을 나열하지도 않았다. 루쉰이 위대한 까닭은 바로 국민성의 개조를 봉건적 종법제를 비롯한 각종 봉건주의 문화 관념에 대한 비판과 결합시켰다는 데 있었다. 루쉰을 비롯한 5?4 운동의 문화 선구자들은 봉건 문화의 인격적 대표였던 공자와 공자를 대표로 하는 문화 관념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문화가 가진 ‘식인’의 진상, 즉 정신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우둔하게 만드는 죄악상을 폭로했다. 이러한 폭로는 중국인들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길을 열어 주었고, 중국인이 현대적 의미의 중국인이 되는 최초의 출발점이 되었다.
5?4 시기의 선각자들은 인간의 개성을 무시한 다음과 같은 병폐를 깊이 파헤쳤다. 즉 피억압자는 자신 또한 억압하는 자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 먹힘을 당한 사람은 역시 또 다른 사람을 먹게 되고, 자신은 좀더 강한 사람의 노예이자 좀더 약한 자들의 상전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전통 비판의 선각자들이 우리들에게 알려 준 ‘식인’의 본질 가운데 하나였다. 루쉰은《좌전(左傳)》에 나오는 소공(昭公) 7년의 말을 인용하였다. “하늘에는 열 개의 천간(天干)이 있고 사람에게는 열 가지 등급이 있다. 아랫사람이 신을 공경하는 이유는 윗사람은 신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은 제후(公)를 신하로 삼고, 제후는 대부(大夫)를 신하로 삼으며, 대부는 사(士)를 신하로 삼고, 사는 무사인 조(?)를 신하로 삼고, 조는 수레를 만드는 여(?)를 신하로 삼고, 여는 오예(五隸)를 관장하는 예(隸)를 신하로 삼고, 예는 공역(共役)을 담당하는 요(僚)를 신하로 삼고, 요는 말을 모는 복(僕)을 신하로 삼고, 복은 도망한 신하를 체포하는 대(臺)를 신하로 삼는다.” 이 말이 설명하는 것은 절대적인 계급제였다. 계급제는 나중에 더욱 탄력적인 것으로 변하게 되지만, 인간 세상은 더욱 비참해져 갔다. 루쉰은 이를 다음과 같이 비평했다.

그러나 ‘대(臺)’는 신하가 없으니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 더 비천한 아내가 있고, 더 약한 자식이 있으니까. 게다가 그 아들 또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니, 그가 매일매일 자라서 ‘대’가 되면, 이내 더 천하고 약한 아내가 생기게 되어 부려먹을 수 있게 될 테니까.

예치질서 아래서 개인은 독립적 인격을 얻지 못한 채 끊임없이 ‘가르침’과 ‘양육’이 필요한 ‘어린아이’로 취급되었다. 개인은 부모와 웃어른 앞에서 영원한 어린아이,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파란 ‘애송이’였다.

해탈의 헛꿈 ― 실패가 곧 승리인 아Q의 정신승리법

국민성에 대한 검토는 무의식중에 중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아Q 정신에 대해서도 진행되었다. 루쉰은 자신의 불후의 작품 《아Q 정전》을 통해 동정과 분노가 교차된 태도로 아Q라는 ‘국민 영혼’의 이상 현상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루쉰은 ‘아Q 방식’ 또는 ‘아Q 근성’을 가리켜 정신승리법이라고 명명했다. 과거 사람들은 ‘아Q 방식’으로 살면서도 그 속의 비애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도리어 해탈이나 고상함으로 보았다. 아Q의 일생은 철저히 실패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한평생 멸시와 능욕을 당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처절한 실패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모든 실패를 심리적인 승리로 신속하게 바꾸었다. 그의 실패는 곧 그의 승리였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바로 그의 정신승리법이었다.
언젠가 아Q는 미장의 한 백수건달과 싸움을 벌이게 된다. 건달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후 아Q는 이렇게 말한다. “벌레를 때리는 거야, 알았어? 나는 벌레라고―그래도 안 놓겠어?” 건달은 아Q의 머리를 몇 차례 더 쥐어박은 후 그가 이번에는 틀림없이 자신이 졌다고 시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안 되어 아Q는 의기양양해하며 돌아간다. 아Q는 자신이 스스로를 경멸할 수 있는 제일인자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경멸할 수 있다’는 말을 빼면 남는 것은 바로 ‘일인자’라는 말이 아닌가. 장원도 ‘제일인자’란 뜻이지 않은가? ‘네 까짓 게 뭐라고?’” 적을 이기는 묘법을 가진 뒤로, 그는 세계에서 영원히 의기양양할 수 있는 승리의 영웅이 되었다. 인생의 액운과 슬픔은 그와 무관했으며, 실패와 불행 앞에서 그는 영원한 대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말의 근거도 없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주관적인 승리였다.
아Q의 정신승리법은 마음속의 세계를 바꾸기만 하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망상이었다. 아Q의 정신승리법은 세계를 주관의 상상과 환상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생존과 발전에 적합하도록 환경을 변화시키려 하는 관심과 능력을 주동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아Q처럼 중국의 고대 선비들은 운명과 싸우기보다는 노장 사상에 의존했고, 자기만족으로 돌아오고자 했다. ‘아Q의 그림자’는 실천적 활동의 객관성을 부정함으로써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의 어두운 그림자 ― 위선은 도덕의 유일한 출로이다

전통 중국 사회의 기본 질서를 구성했던 것은 예치질서였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충(忠), 효(孝), 절(節), 의(義) 같은 도덕의 범주는 이 질서를 옹호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으며, 그것들은 예치질서의 영혼이자 핵심이었다. 한 마디로 중국의 전통문화는 범도덕주의적 색채가 매우 짙은 문화였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과 정치의 운영 및 법의 집행 등에 이르기까지 도덕의 범주에 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맹에서 정주(程朱)에 이르기까지, 역대 현인들의 부지런한 연구를 통해 전통 윤리학은 이미 매우 성숙하고 완전한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체계는 대략 ‘수신(修身)"과 ‘서도(恕道: 관용과 용서의 도)’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전자는 홀로 거할 때의 심성 수양을 가리키며, 후자는 ‘자신’과 ‘남’ 사이에 관계가 발생할 때 이미 닦아 놓은 심성 수양을 바탕으로 자기를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며, 나아가 그 마음이 민초들에게까지 미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윤리학적 틀은 매우 완벽하여, 개인의 심성 수양 및 사람 사이의 관계를 처리하는 법칙까지 모두 고려하고 있다. 또한 목표도 원대해서 도덕가들은 자신의 체계를 통하여 ‘평천하(平天下)’할 수 있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사람을 길러 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범도덕주의는 실제 운용을 통해 그 본의와는 상반된 방향으로 흘러가 국민을 무관심과 이기심, 위선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범도덕주의는 법제의 성장을 억압했고, 도덕이 지닌 결함에서 벗어나게 해줄 법제의 마련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도덕적 기준의 임의성과 주관성은 사리사욕에 눈먼 소인배나 권력자들에게 잇속을 차릴 수 있는 길을 터 주었고, 그들은 ‘성인의 가르침’을 멋대로 해석했으며, 도덕을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다시없는 도구로 여기게 되었다.
《구당서(舊唐書)》에는 놀랄 만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안사(安史)의 난 시기에 지방관이었던 장순이 사람들을 데리고 성을 고수하고 있을 때, 안경서가 용장 윤자기를 보내 성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오랫동안 성이 포위 공격을 당하매 성안의 양식이 바닥이 나게 되자, 사람들은 자식을 서로 바꾸어 잡아먹었으며 죽은 사람들의 뼈는 불에 구워 먹었다. 장순이 자기의 첩을 군사들 앞에서 죽이고 그 인육을 군사들에게 대접하면서 말하기를, “공들이 나라를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지킴에 한마음으로 하니, 해가 바뀌었으나 충성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 살점을 베어 군사들을 대접하지는 못할지언정 어찌 이 여인을 아까워하여 긴박한 상황을 앉아서 보고만 있겠는가”하였다. 이에 군사들이 다 울며 차마 먹지 못하자 장순은 먹을 것을 명령하였다. 이렇게 성안의 부녀자들을 다 먹고 나서는 또 남자 노인과 아이들을 계속해서 먹었다. 그때 먹힌 사람들의 숫자가 이삼만 명이나 되었으나, 백성들의 마음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역사를 편찬하는 사관은 장순을 ‘충신’으로 칭찬하고 있다. ‘자식을 바꾸어 먹는 행위’는 이미 인류의 잔인성과 야만성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었으며, 추호의 도덕성도 없는 행위였다. 장순은 놀랍게도 첩의 인육을 조정의 충신과 병사들에 대한 충성과 보호의 증거로 삼았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사관이 장순의 이른바 ‘충성’을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 년 이후를 사는 우리는 장순을 도덕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그 사관의 생각을 우매함의 극치라고 이야기하는 도리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는 인의도덕이라는 면류관만 쓴다면 그 어떤 행위도 가능했으며, 짐승의 행위라 할 만한 것도 없게 되었다.
범도덕주의가 맞이하는 최후의 결말은 반드시 부도덕주의였다. 정의의 빛으로 도덕을 비추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엄과 권리로 도덕을 보충하고 가늠하지 않는다면, 위선은 도덕의 유일한 출로가 될 수밖에 없다.

천조 콤플렉스 ― 중국은 야만적인 면에서조차 뛰어나다

중국인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김과 동시에 자신들의 문화 또한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통치자들은 자신의 왕조를 천조(天朝)라고 불렀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의 누적은 19세기에 들어서도 중국인들이 여전히 자신을 세계 제일로 여기는 습관을 갖도록 만들었다.
명?청 사회에서 공맹의 도는 이미 경직되어 버렸다. 특히 삼강의 윤리와 인의도덕 및 권력체계는 단단히 얽혀 통치 윤리의 합법성을 논증해 주는 핵심적 이데올로기로 변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도사들은 공맹의 도를 절대불변의 전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전통 이데올로기와 다른 그 어떤 논조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분석과 비평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에 대해서 우선 죄명을 덮어씌우고는 호된 배척을 가했다. 항상 먼저 ‘물리치도록’ 결정하고 나서,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당시 선교사들이 가져온 지리, 제도, 천문, 수학에 관한 지식은 중국 지식인의 것보다 훨씬 앞서 있었음에도, 오만함과 맹목적인 자신감은 이들의 도전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도리어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도록 몰고 갔다.
아편전쟁과 양무운동 시기에 이르러 서양 사상의 중국 전파는 이미 단순히 몇몇 선교사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양인들은 총포, 상품, 학술, 문화 등을 가지고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으며, 이에 중국은 미증유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총칼의 위협 앞에 중국이 이전의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해졌다. 때문에 식견 있는 사대부와 통치자들은 비교적 실무적인 방법을 채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양무운동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공맹의 도를 만세불변의 성전(聖典)으로 보았으며,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적수들은 역사상 중원을 넘보던 여진족이나 몽고족들과 다를 바 없고, 자신들의 무기를 뽐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중학위체, 서학위용"이라는 이론이 매우 유용하게 보임으로써 면면히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이론이 주관적 오만과 낙후된 현실 사이에 형성된 거대한 격차가 불러온 심리적인 당혹감과 불안을 없앨 수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루쉰은 중국인의 천조 심리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내었다. 천조 심리를 중국인의 통탄할 만한 재난으로 본 루쉰은 애국적 오만으로 가득한 중국인들의 의견을 다음 다섯 종류로 정리하였다. 갑: 중국은 땅이 넓고 산물이 풍부하며 일찍이 문명을 꽃피웠고, 그들의 도덕은 천하제일이다. 을: 외국의 물질문명이 비록 뛰어나기는 하나, 중국의 정신문명은 더욱 뛰어나다. 병: 외국 것은 중국에도 벌써 존재하며, 어떠어떠한 과학적 이론은 이미 누구누구라는 인물이 말했다. 정: 외국에도 거지, 초막집, 창기, 빈대(기생충)는 있다. 무: 중국은 야만적인 면에서조차 뛰어나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제1장 5·4 문화혁명과 인간에 대한 설계
1 아편전쟁과 자아인식의 시작
2 곽거의 도덕
3 인간의 발전
4 반성의 약점
5 미궁에 빠진 현대 신유가 사상

제2장 비판 이성의 성장
1 명말·청초
2 아편전쟁과 양무운동
3 무술변법과 신해혁명
4 결어

제3장 예치질서와 상전·노예근성
1 인간에 대한 인식
2 식인 잔치
3 문화적 신기원 1
4 문화적 신기원 2
5 예치질서와 개인
6 개성의 상실과 왜곡

제4장 해탈을 꿈꾼 대가
1 삶의 비애
2 유한과 무한
3 무한으로 통하는 길
4 고통의 의미

제5장 도덕의 어두운 그림자
1 생존을 위한 기교
2 도덕적 곤경
3 도덕, 법률, 혈연, 그리고 인도

제6장 천조 심리
1 서양 문화에 대한 반응
2 천하 모형과 세계제국

홍콩 옥스퍼드판 후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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