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능, 마조, 조주, 남전, 원오, 혜심, 벽장 등 위대한 선사들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1,700여 개의 공안(公案) 중에 뽑은 가장 철학적인 질문 41가지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한 스님이 말했다.
“깃발이 흔들리는구먼.”
다른 스님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일세.”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육조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닐세.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세.”
두 스님이 흠칫 놀랐다. - 공안 ‘깃발과 바람’ 중에서
선가(禪家)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깨침을 얻도록 하기 위해 제시한 문제가 공안(公案), 즉 화두(話頭)이다. 제자는 화두를 풀기 위해 분석적인 사고와 절박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어느 순간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 답을 얻게 된다. 이러한 수행법을 ‘공안 수행’이라고 하는데, 선(禪)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수행법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공안’과 ‘화두’는 같은 말이기도 하고 다른 말이기도 하다. 전문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굳이 조금 자세히 들어가 구분하자면, 공안은 옛 선종(禪宗) 고승들이 화두를 선별하여 엮은 선문답(禪問答) 사례집 같은 것이고, 화두는 넓은 의미에서 선문답 전체를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마조, 조주, 남전, 원오, 혜심, 벽장 등 위대한 선사들의 대화를 다룬 공안집으로는 《벽암록(碧巖錄)》, 《무문관(無門關)》, 《종용록(從容錄)》 등이 유명한데, 공안의 종류가 1,700가지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공안이 선문답의 ‘문제 은행’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00 공안’이라는 용어는 선종 관련 역사서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등장하는 선사의 총수가 1,701명인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경덕전등록》은 공안집이 아닌 역사서이기 때문에 공안의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다. 선종과 공안집은 중국에서 탄생했지만 1,700 공안을 모두 볼 수 있는 전집(全集)은 중국에서 편찬되지 않았다. 이 방대한 양의 공안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공안집은 1226년경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간행된 《선문염송(禪門拈頌)》이 유일하다. 《선문염송》은 공안집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 불교의 정수가 선종이 된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 《선문염송》을 바탕으로 41개의 화두를 가려뽑아 현시대에 맞게 세련된 현대어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여기에는 저자의 시사성 강한 발언과 철학적 질문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화두, 나를 부르는 소리》는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사회적 문제를 가미한 내용을 두었다. 이어서 ‘공안’을 직접 번역해 소개하고, 해설편을 따로 두었다. 공안집에 기록된 화두가 단지 옛 시대의 글귀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사구(死句)’에 불과할 것이다. 공안집의 화두가 현시대의 시사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죽은 언어가 아닌 새로운 화두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속에는 우리의 삶과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강한 울림이 있다. 그 울림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화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는 현대인에게 직관적이며 논리적인 생각법을 제공한다
흔히 선문답에서 주고받는 말은 모순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한다. “주장자는 주장자가 아니다”, “대답하는 너는 네가 아니다”라는 식의 말들은 듣는 이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여기에 말려들면 안 된다. 동어반복과 모순의 논리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솎아져야 한다. 그런 것들을 모두 걷어내고 남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야 화두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사고의 전환을 이루고 직관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생각법을 《화두, 나를 부르는 소리》는 명확히 제시한다.
‘화두’라는 직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하지만 버려야 할) 법칙들
- 공안의 답은 없다. 남의 답이 결코 나의 답이 될 수 없다.
- 하찮아 보이는 사람이 별 뜻 없이 말하는 그 순간조차도 놓치지 않는다.
- 언제나 지금이 바로 내가 힘을 얻는 때이다.
-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도대체’라고 말할 때의 막막함과 절망감을 부둥켜안고 가라.
- 인내는 참는 게 아니다. 그만둘 줄 아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 가장 귀한 것을 내려놓아 버려야 비로소 내려놓는 것이다.
- “버려야 얻을 수 있다.” 그 다짐에는 이미 얻겠다는 속셈이 들어있다.
- 잘라라, 가리키는 손가락을. 손가락에서 마음을 떼어놓아라.
- 공연히 뭔가 숨겨진 뜻이라도 있는 양 억지 해석하지 마라.
- 엄마와 부처를 조심하라. 고정관념은 비수 끝에 발린 꿀이다.
- “모른다”고 하라. 넘겨짚지 않아야 비로소 말에 놀아나지 않는다.
- 부처란 이미 다 알아버린 사람이 아니라, 거듭 묻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