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하게 살다 한순간 죽는 사람은 드물다
노령 인구가 압도적인 일본에서는 65세부터 74세까지의 노인을 전기 고령자, 75세 이상의 노인을 후기 고령자로 분류한다. 그러니까 65세의 저자는 ‘노인 초년생’에 해당하는 셈이다.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도래를 예견하기도 한 저명한 경제전략가인 저자는 “노인이란 한마디로 아픈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매일을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아프다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50대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몰랐다. 아니, 머리로만 알았을 뿐 진정으로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6년 초에 다섯 가지 노인병, 즉 통풍, 전립선비대증, 고혈압, 만성 기관지염, 요통과 목 통증을 한꺼번에 겪게 되면서 비로소 ‘노인이 되면 모두 매일 아프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저자는 ‘노인은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며, 젊은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당연한 현실을 제대로 경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저자는 “아프니까 모두 서로를 위로하자. 다정하게 돌보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사람은 타인을 위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노인이 되어보니 실제로 이렇더라’고 위선 없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기에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병으로 인한 고통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예전에는 대부분 50세 전후로 죽었고, 그래서 ‘인생 50’이라는 관용어가 쓰이기도 했다. 일본 역시 전후(戰後)에는 ‘남자 55세, 여자 50세’에 정년퇴직을 했지만 1985년경부터 60세 정년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소수의 장수 노인들은 몸이 건강하고 머리도 총명해 지혜가 있었고, 위생관념도 남달라 자연스레 지역의 정신적 리더가 되곤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100세의 초고령자(현재 일본에 6만여 명이 있는 걸로 추정)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통증에 요령껏 대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통증에 대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이런 노인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현대 의학에 어느 정도까지 의지해야 할지 비판적인 입장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과잉 의료의 시대, 현대 의학은 만능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의학과 일본의 후생노동성 그리고 정형의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저자의 아버지가 정형외과 의사였다는 사실 그리고 저자의 친인척 중에도 의사가 있다는 내용을 접하고 나면, 그 신랄함과 냉소가 마냥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저자는 특히 고령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될 허리와 척추, 목 수술을 안일하게 집도하는 일부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분노한다.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용해 노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의사들과, 노인 환자를 제물 삼아 유지되는 의료계, 피해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후생노동성의 의료 행정관들에 대한 저자의 비난은 독자에게 적지 않은 공감대를 선사한다.
저자는 장수하는 노인이 급증하면서 선진국의 의료가 모든 것이 과잉인 상태로 전락했다고 탄식하며, 특히 임플란트와 라식, 디스크 수술을 대표적인 과잉 수술로 지목하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한 통풍으로 고생한 저자는 통풍에 좋지 않아 피해야 하는 성분인 ‘퓨린’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대 의학의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비난한다. 예전에는 퓨린이 많이 함유된 식품이라며 금지시켰던 연어 알과 계란이 최근 들어 퓨린이 적게 함유된 식품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때는 ‘성인병’이라 불리던 질환들이 언제부터인가 일본에서 ‘생활습관병’이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처럼 의료계는 유행에 따라 병명이 바뀌거나 예전 치료법은 잘못되었다며 완전히 반대의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제껏 고수해왔던 치료법과 수술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돼도 ‘의학은 발전한다’는 변명 뒤로 교묘히 숨은 채 의료계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안티에이징’을 부르짖으며 10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의료계 사람들에게 저자는 제발 적당히 하라고 일침을 놓는다. 장수 운동을 추진하는 의사들은 그저 장사치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냉철한 현실 직시야말로 현대 노인의 지혜
물론 저자가 의학의 진보 자체를 업신여기거나 의사의 말을 거슬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넘쳐나는 광고성 건강 정보를 걸러서 선택하고, 안마와 침구 같은 전통 치료법이 가진 효능을 존중하며, 필요 이상의 수술이나 과잉 약물 투여가 있진 않은지 의사의 말을 의심해보는 것은 나쁜 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연륜을 과신하기보다는 세상엔 아픈 노인을 노리는 속임수가 가득함을 인정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장수 시대인 현대를 사는 노인의 지혜로운 처신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