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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 주는 책

책 읽어 주는 책

  • 최용철
  • |
  • |
  • 2017-12-30 출간
  • |
  • 292페이지
  • |
  • 152 X 225 X 24 mm /546g
  • |
  • ISBN 979119560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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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책 읽기는 곧 성찰 ELENCHOS 엘렝코스이다!

어떤 책을 읽는다는 건 무수히 많은 다른 책들을 읽지 않음이기도 하다. 읽어낸 책이라고 해야, 이 세상 모든 책을 바다에 견줄 때 그 바다에서 겨우 건져 올린 작은 생선 한 마리쯤이나 될까. 그것도 펄펄 뛰는 생선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 죽어 떠다니던 한 토막 정도 생선이나 될까. 그만큼 어떤 책을 읽는다는 건 저 무한한 사유가능성에서 겨우 얻어진, 극히 우연한 한 가지 가능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어떤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유실험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이 가능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유실험을 거치면서, 그러니까 책을 읽으면서, 여태껏 하지 못하던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제껏 하던 생각이 다른 새로운 생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여태껏 하던 생각이 정녕 전부일까 의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태껏 하던 생각이 전부이어야 할까. 이렇게 물음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다른 생각이 싹튼다. 사유가능성을 열어 놓음이란 곧 이제껏 하던 생각 말고 다른 새로운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어떤 생각이든 무한한 사유가능성 중 겨우 얻은 한 가능성이 아닌가. 그러니 이 가능성이 모든 가능성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한 가능성으로서 어떤 생각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서 다른 새로운 생각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왜 이제껏 이런 생각이었을까를 스스로 묻는다면, 그 단초는 바로 책읽기이다.

이 책의 구성과 특징
-사랑, 여성, 사람, 도덕에 대한 성찰 ELENCHOS 엘렝코스
이 책은 ‘사랑’, ‘여성’, ‘사람’, ‘도덕’이라는 네 주제를 성찰한다. 대략 1990년대 초중반쯤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가진 독서모임이 단초가 되었는데, 처음 이 모임에는 학부생, 대학원생, 교사, 강사, 교수 등 다수가 참석해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은 ‘엘렝코스 심포시움’elechos symposium, 곧 ‘성찰의 향연’이었다. 이 향연을 ‘사랑’, ‘여성’, ‘사람’, ‘도덕’이라는 네 주제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1. 왜 울타리 너머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일까

David J. Ley, Insatiable wives, 『욕망의 아내』, 데이빗 레이 지음, 유지화 옮김, 황소걸음, 2011.
인간은 일부일처제에만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 일부일처제에만 적합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비일부일처제에 적합한 동물인 것도 아니다. 폴리아모리 남성운동가는 외친다. “당신은 내 아내를 갈망할 필요가 없어… 내 아내를 사랑하라고! 그녀 사랑에는 한계가 없어서 우리 모두 얻을 것이 있지. 두려움과 죄의식, 증오와 질투 외에 잃을 것도 없다고.”(200쪽) 사람은 어느 쪽이냐 하면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선망하는 쪽이다.

일부일처제가 사람에게 유일한 결혼방식일까. 아니다. 인간역사를 통틀어 사회마다 그 나름 고유한 결혼제도가 있었다. 일부일처제는 그 중 하나일 따름이다. 전 세계에서 일부일처제 문화는 현재 전체 20%에도 못 미친다. 대다수 문화가 일부다처제이다. 드물지만 일처다부제도 있다. 인류학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40% 사회가 혼외 성행위를 허용한다. 오히려 어떤 문화에서는 아내를 다른 남자와 나누는 것을 규범으로 삼는다.(177쪽)
이뉴잇(Innuit) 전통에 따르면 남편은 손님에게 기꺼이 아내를 내줘야 한다. 이뉴잇 사람들에게 일부일처제는 규범이 아니다. 이뉴잇 사람들에게 혼외 성관계는 특별한 금기가 아니다. 이들에게 혼외 성관계는 오히려 친절한 예절이다. “남편들은 가끔씩 다른 남자들과 기꺼이 아내를 나누고자 했다.”(179쪽) 다른 남자들과 자기 아내를 나누는 이뉴잇 남편들은 다른 남자를 ‘또 다른 나’라는 뜻인, ‘아이팍’(Aipak)이라고 불렀다. “두 남자가 아내를 나누는 것은 상대에 대한 헌신을 약속하는 계약형태로 기능했고…. 한 남자가 죽임을 당하거나 도전을 당하면 ‘아내를 교환한 파트너가 나서 방어하거나 복수했다.”(180쪽)
남편이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무조건 내주었던 것은 아니다. “척치족(Tschuktschi) 전통에 따르면 남자 손님은 주인 아내와 동침하기 전에 여자 오줌으로 입을 헹궈야 했다. 이는 담대함과 남자다움을 보여주고, 이 가족에게 헌신할 것을 약속하며, 자기가 이 가족에게 친구임을 보이는 의식이다… 북극 아마살릭(Amnassalik) 부족에는 ‘램프 끄기’ 전통이 있었다. 남편은 밤에 기름 램프를 끄는 것으로 손님과 자기 아내가 성관계하는 것을 허용했다.”(181쪽) 남편은 ‘아내를 손님과 나누는 영광’을 누렸다. 이 영광스러운 전통은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인도, 아프리카 일부, 호주 원주민 등 다른 문화권에서도 볼 수 있었다.”(182쪽)
여자가 여러 남자들과 혼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한 예는 한 여자가 여러 남자 형제들과 결혼하는 경우이다. 그 경우 태어난 자식들은 같은 유전자를 가진다. “이런 예는 티베트, 네팔, 스리랑카 같은 동양 일부에서도 볼 수 있었다. 형제들이 한 여자와 결혼하는 형제다부혼은 인도 일부 지역에서도 행해졌다.”(184쪽)
인도에서 전해지는 ‘드라우파디’ 공주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공주가 유난히 아름다웠던 터라 청혼하는 남자가 많았다. 그래서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려고 궁술시합이 벌어졌다. 궁술시합에서 최종 승자가 가려졌다. 그 최종 승자는 다섯 형제와 함께 참가했었다. 그 최종 승자는 집으로 공주를 형제들과 함께 데리고 왔다. 집에 도착해서 최종 승자는 어머니에게 어떤 선물과 함께 왔는지 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어머니는 미처 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게 무슨 선물이든 다섯 형제가 사이좋게 나누라고 말이다. “어머니 명에 따라 다섯 형제 모두 드라우파디 공주와 결혼했다.”(178쪽) 티베트에서도 형제 4~6명이 한 여자와 결혼한다. “이런 가족은 아내 ‘나누기’를 주관하는 규칙을 잘 세우고 조화롭게 살았다.”(184쪽)
여러 남성들이 한 여성과 성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최근까지도 그랬다. 1970년대부터 ‘개방결혼’(open marriage)이 한창 유행했었다. ‘개방결혼’은 ‘폴리아모리’(polyamory)로, 비독점다자연애 혹은 비일부일처방식이다. “폴리아모리는 ‘많은 사랑’을 의미하고, 이는 한 번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201쪽) 그렇다고 이는 어느 한순간 충동에 따른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자연스런 성생활이 무엇일까를 탐색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능한 남녀관계를 폭넓게 실험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개방결혼’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까 말까 하는 정도로 희귀하다.
개방결혼 주창자들에 따르면 현행 결혼방식이야말로 부부가 서로에게 언제나 충실해야 한다는 헛된 기대를 품게 만든다. 이 헛된 기대로 말미암아 부부는 서로 갈등을 겪게 된다. 본래 부부관계란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 자아를 실현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예컨대 부부가 서로 혼외관계에서 우정을 쌓으면… 배우자는 더욱 성장하여 더 단단한 결혼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여기 부부관계 말고 다른 이성과 우정을 쌓는 혼외관계에는 성관계가 들어간다. “이런 생각은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대중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195~196쪽)
오늘날 여성은, 과거와 달리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편 말고도 많은 남자들과 우정을 나눈다. 남녀가 나누는 우정, 그 경계는 모호하다. 경계가 모호하니 감시가 필요할까. 모든 남편들이 일일이 모든 아내들을 감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남편은 아내가 여러 남자들과 나누는 우정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내가 남편에게 불성실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내는 남편에게 진실해야 한다.
인간은 일부일처제에만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 일부일처제에만 적합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비일부일처제에 적합한 동물인 것도 아니다. 폴리아모리 남성운동가는 외친다. “당신은 내 아내를 갈망할 필요가 없어… 내 아내를 사랑하라고! 그녀 사랑에는 한계가 없어서 우리 모두 얻을 것이 있지. 두려움과 죄의식, 증오와 질투 외에 잃을 것도 없다고.”(200쪽) 사람은 어느 쪽이냐 하면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선망하는 쪽이다.
울타리 너머 저쪽 집 잔디가 자기 집 잔디보다 늘 더 푸르러 보인다. 왜일까. 그것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울타리 탓이다. 울타리가 없다고 생각해보라. 이쪽 집 잔디나 저쪽 집 잔디나 똑같이 푸르러 보인다. 질투는 울타리 탓이다. 울타리가 없으면 증오도 없다.

21. 매춘부: 특별하지 않았던 직업

Hans Licht, Sexual Life in Ancient Greece, 『그리스 성풍속사』, 한스 리히트 지음, 정성호 옮김, 산수야, 2003.

어느 날 아리스티푸스에게, 개처럼 살아가는 견유학파 디오게네스(Diogenes)가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창녀하고 그토록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나? 견유학파가 되든지 아니면 그녀와 교제를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그러자 아이스티푸스가 대답했다. “자네는 예전에 다른 사람이 살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나” 디오게네스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아리스티푸스가 계속 물었다. “그렇다면 이전에 다른 사람이 많이 탔던 배에 오른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디오게네스가 역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전에 많은 남자들 품을 거친 여자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을 수 없겠군.”(79쪽)

성(sexuality)을 놓고 고대 “그리스인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자연스러웠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체를 자유롭게 활용할 권리를 만끽했다. 성문제에 “솔직하게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드러내놓는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공격받거나 비난받지 않았다.”(365쪽)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이 배우자가 아닌 여인과 나누는 성행위는 불법이 아니었다. 상대가 설령 남성이어도 불법이 아니었다. 그건 다르게 사랑하는 방식일 뿐이었다. “남자는 육체적 쾌락 때문에 매춘부를 거느리고, 일상적 봉사를 위해 첩을 두고, 자녀를 기르고 집안일에 충실한 가정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내를 거느린다.”(155쪽) 매춘 역시 특별하지 않았다.
매춘부 ‘라이스’는 젖가슴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철학자 아리스티푸스(Aristippus)가 사랑한 여인이었다. 그가 라이스를 자주 만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소문에 그는 대답했다. “라이스는 내 여자이지만, 나는 라이스의 남자가 아닐세.” 아리스티푸스는 아예 라이스와 살림을 차렸다. 그런 그에게 하인이 무엇 때문에 큰돈을 들여 살림까지 차리느냐고 불평했다. 그 불평에 아리스티푸스는 대꾸했다. “나는 라이스와 함께 즐기기 위해 그녀에게 많은 돈을 들이는 걸세. 다른 사람이 그녀와 함께 즐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세.”(78쪽)
어느 날 아리스티푸스에게, 개처럼 살아가는 견유학파 디오게네스(Diogenes)가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창녀하고 그토록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나? 견유학파가 되든지 아니면 그녀와 교제를 포기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그러자 아이스티푸스가 대답했다. “자네는 예전에 다른 사람이 살던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나” 디오게네스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아리스티푸스가 계속 물었다. “그렇다면 이전에 다른 사람이 많이 탔던 배에 오른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디오게네스가 역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전에 많은 남자들 품을 거친 여자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을 수 없겠군.”(79쪽)
‘프리네’ 역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매춘부였다. 그녀는 사형에 처해질지 모를 만큼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 재판 중 유명한 웅변가 히페레이데스(Hypereides)는 갑자기 프리네가 입고 있는 옷을 확 찢었다. 그 순간 빛나는 가슴이 환하게 드러났다. 그 가슴을 가리키며 웅변가는 “이토록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여인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17쪽) 배심원들은 그토록 우아한 가슴을 가진 여인을 “사형에 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80쪽)
어느 날 프레네에게, 철학자 크세노크라테스(Xenocrates)를 유혹할 수 있겠냐는 내기가 들어왔다. 그는 근엄한 도덕군자였다. 내기에 응낙하고 프레네는 호화로운 잔치에서 철학자 옆에 앉았다. “이미 크세노크라테스는 어느 정도 술 마신 상태였고, 이 아름다운 매춘부는… 자기 매력을 한껏 드러냈으나 철학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크세노크라테스를 유혹하기는커녕 화가 난 그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말았다.” 그럼에도 프레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을 유혹할 수 있다고 내기를 한 것이지 결코 아무 감각도 없는 목석을 두고 내기한 것이 아니에요.”(83쪽)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아름다운 매춘부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사람이 아테네의 매춘부 테오도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여자라고 떠들어댈 때, 그리고 화가들이 앞 다투어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소크라테스는 ‘소문만으로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없으므로 직접 가서 그 여인을 보도록 하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테오도타를 찾아갔고, 어느 화가의 모델을 하고 있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크세노폰에 의하면,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으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153쪽)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여인에 무덤덤했다. 그가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여인이 아름답다는 말만은 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움만으로 충분치 않다고만 말하는 건 어색하다. 제자들을 의식해서일까. 그건 그렇지 않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식인들과 매춘부들의 어울림이 누구에게도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154쪽) 그 당시에는 철학자와 매춘부가 나누는 사랑을 ‘백안시’하지 않았다.(155쪽)
소크라테스와 달리 제자 “플라톤은 콜로세폰의 매춘부인 아르케이나사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154쪽)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보다는 더 솔직했던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제자였다. 그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떠했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헤르필리스라는 매춘부와의 사이에서 니코마쿠스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녀를 사랑했다.”(154쪽)
철학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매춘부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물으면서 산다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철학자는 묻기만 할 뿐 확실한 답변이 없다. 어쩌면 매춘부가 철학자보다 더 솔직한지 모른다.

38. ‘속물근성’을 떨쳐라

Alain de Botton, Anxiety,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이레, 2005

“사람은 언제나 동포의 도움을 얻을 일이 있다. 그러나 동포의 자비로운 마음에만 기대해서는 도움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자기애를 자극하면 설득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저녁을 먹게 되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이나, 빵가게 주인이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해야 한다.”

‘속물’은 사람을 조롱하면서 쓰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본디 어원은 영어권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귀족이 아닌 평민을 이르는 말, ‘스놉’이었다(sine nobilitate의 줄임말 ‘snob’은 ‘작위 없음’이다)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작위 없는 입학 지망생을 표시하던 단어였다.(27~28쪽) 그러나 점차 이 말은 높은 지위를 선망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이들을 경멸하는 용어로 점차 바뀌었다. 이제 ‘속물’이라는 말은, 높은 지위를 선망하는 세태를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속물을 비난하는 것은 속물근성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속물근성이 못마땅한 것은 그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탓이다. 세태는 속물근성에 못마땅해하면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속물근성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한다.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여전히 사람들은 속물이다. 어떻게 속물근성을 버릴 수 있을까.
속물근성이란 사람들로부터 관심, 사랑, 인정을 받으려는 열망이다. 속물근성은 높은 지위에 오름으로써 비로소 그런 열망이 성취되리라는 믿음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열망과 믿음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평등을 바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엄격한 신분제 질서를 유지하던 고대와 중세에서 속물근성이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노예이며, 노예제도는 정당하다.”(60쪽)고 주장했다. 사람이란 서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예는 주인으로부터 어떤 관심도, 어떤 존중도 기대할 수 없었다. 고대 노예제 사회 그 이후 봉건 중세사회에서는 불평등이 더욱 더 심했다. 불평등을 오히려 신이 내리는 축복으로까지 여겼다. 신은 지상에서 군주, 귀족, 농노 등 모든 사람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주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중세 귀족사회에서 농노는 높은 지위를 선망하는 열망을 품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바야흐로 속물근성이 등장했던 것은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기회를 요구하는 1776년 미국독립전쟁 그 이후였다.(64쪽)
불평등이 당연한 사회에서야 아무리 불평등하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반면 누구라도 평등해야 한다면 불평등은 두드러진다. 이런 맥락에서 속물근성은 나온다. 속물근성은 평등주의를 내세우는 민주사회에서 나온다. 속물근성은 근대 평등주의사회에서 비롯한다.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드높은 생각, 강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질 기회를 누린다. 여론과 언론은 누구나 사회 정상에 올라설 수 있으리라 부추긴다. 무제한 기회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누구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는 명랑한 분위기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사실상 운이 좋다거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만이 정상에 도달한다. 점차 세상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나뉜다.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지만 실패한 사람은 넘쳐난다. 명랑한 분위기였던 세상은 어느덧 어두운 분위기로 바뀐다.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기던 사람이 출세하는 걸 지켜보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철학자 흄(Hume)은 말한다.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상태이다. 일반 병사는 상사나 상병에 비교하면 장군에게 질투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59쪽)
속물근성은 근대 평등주의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다. 속물근성은 능력주의(meritocracy)에서 비롯한다. 능력주의는, 부(富)란 한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과 야심을 통해 얼마든지 무한정 획득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능력주의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죄가 있으며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음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마침내 가난한 사람을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부자이어야 하는 만큼 능력주의 사회는 높은 지위의 부자를 선망하는 속물들의 세상이기도 하다. 능력주의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했으므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는 저 오래된 믿음을 거부한다. 능력주의는 부자를 사회의 해충으로, 괴물로, 작은 물고기를 모두 삼켜버리는 큰 물고기로 간주해버리려는 유혹을 물리친다.(100쪽)
능력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목표 달성에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능력이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만큼 높은 지위에 필요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속물은 계속해서 속물로 남아야 한다.(124~125쪽) 어쩌면 다행히 운이 좋아 높은 지위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이란 높은 지위에 올라서야 비로소 확인가능하다. 행운이 자기를 찾아오리라고 어느 누가 장담하리요.(126~127쪽) 속물근성이 실현되기가 한층 더 어려운 또 다른 까닭은, 주변 사람들도 역시 자기 이익에만 혈안인 속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거짓되고, 음험하고, 기만적이고, 교활하고, 자기 이익에는 탐욕스럽고 타인 이익에는 둔감하므로, 적게 믿고 그 보다 적게 신뢰하면 잘못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친구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적과 함께 살아야 하고, 언제 원수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살아야”(130쪽) 하는 탓이다. 아담 스미드의 저 유명한 말을 상기하라! “사람은 언제나 동포의 도움을 얻을 일이 있다. 그러나 동포의 자비로운 마음에만 기대해서는 도움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자기애를 자극하면 설득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저녁을 먹게 되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이나, 빵가게 주인이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해야 한다.”(137~138쪽)
문제는 항상 성공을 열망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속물근성이다. 속물근성으로 삶은 고통스럽다. 삶이 즐거우려면 속물근성을 떨쳐내야 한다. 그러려면 세상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이 내리는 평가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란 “이야기를 나눌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 들끓”(165쪽)는 그런 곳이다. 세상 사람이 내리는 평가에 따라 삶을 결정짓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다. “만일 청중이 한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귀머거리라면 그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는다고 해서 연주가가 기분이 좋을까.”(166쪽)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대로라면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이 줄어들수록 더 잘살 수 있다.”(167쪽)
쇼펜하우어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할 때라면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감상해보라고 권한다. 위대한 예술작품에서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흔적”(174쪽)을 찾고,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을 보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작품들에서는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배적 관념에 도전하는 태도가 절절히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품들은 속물근성 탓으로 지금까지 존중하고 갈망하던 많은 것들이 부질없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비극은 높은 지위의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참함을 보여주고, 만화가들은 높은 지위의 인간이 조롱거리임을 보여준다. 속물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높은 지위가 삶을 망칠 수도 있으며(202~214쪽), 또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음(215~234쪽)을 예술은 여러 방식으로 표현한다.
예술작품으로도 속물근성을 물리칠 수 없다면 근대가 지향하는 이념을 꿰뚫어야 한다. 19세기 상업사회는 금전을 그 구성원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았다. 이러한 금전만능주의 사회는 부유하지 않으면 수치를 느끼게 했고 다른 사람이 부유하면 질투를 느끼게 했다. 결국 금전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258~259쪽)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다음의 세 가지 가정에 기초한다.
첫째 가정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발휘한다.
둘째 가정 이 세상의 엄청나게 다양한 소비재들이 인간 행복을 보장한다.
셋째 가정 이러한 소비재들을 소유하려면 금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이 세 가지 가정이란 모두 허구이다. 16세기 인디언 사회는 소박한 물질생활로도 나름으로 보람찬 생활을 영위했었다. 그러다 유럽의 물질문명에 접촉하면서부터 자살과 알코올중독이 늘었고, 물자를 놓고 싸움을 벌이다가, 공동체의 해체를 겪었다.(260~262쪽)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잘못이다. 가난으로 고통 받게 되리라는 두려움은 이 잘못된 믿음을 심어준 사회 관습과 사회제도의 탓이기도 하다. 어떤 관습과 제도이든 본래 자연스럽지 않았던 만큼 “분석을 통해 그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284쪽)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주입하는 물질주의, 기업가 정신, 능력주의를 향한 열망 등이 바로 그 뇌관이다.
물질사회의 뇌관을 제거하고도 떨칠 수 없는 속물근성이라면 죽음을 떠올려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노라면 어떤 세속적 활동도 하찮아질 수밖에 없다.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가 헛되도다.”(303쪽) “내가 아무리 잊히고 무시당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무리 강하고 존경받는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가장 민주적인 물질, 즉 먼지가 될” 존재라는 생각에서 비로소 속물은 위안 받는다. 스탕달의 말처럼, 세상에서 일어났던 재난들이란 후세 사람들에게는 고작 오락거리였을 뿐이다. “콜로세움의 그 거대한 폐허의 구석에서 얼마나 멋진 아침을 보냈던가!”(315쪽) 어차피 모든 것이 사라질 운명이라면 현실에서 우리가 열망하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할까
이제 중요한 것은 우아한 집이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보다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감수성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다.(355쪽) “방종의 취향을 갖는다든지, 백일몽을 좋아한다든지, 모차르트 오페라를 들을 때 솟아오르는 감정을 환영하고, 혼잡한 거리에서 어떤 아름다운 얼굴을 힐끗 본 뒤에 몇 시간씩 달콤 씁쓸한 상념에 잠길 수 있는 사람”(359쪽)은 돈에 혈안인 사람과는 사뭇 다른 사람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 버는 일 말고 다른 일을 선택했던 사람일 따름이다. 그 과정 중 그 사람은 금전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부유해진다. 결코 그는 인생게임 실패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속물근성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승자와 패자라는 잔인한 규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에는 정해진 길이 오로지 하나가 아니다. 삶은 여러 갈래 여러 길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속물에서 벗어나려면 보헤미안으로 거듭나야 한다. 보헤미안이 가는 길은 자유가 충만하다. 이제껏 세상은 자유를 추구하는 길을 막았었다. 자유를 추구하려면 먼저 어느 하나에 구애받는 자기를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목차

책을 펴내며

사랑, 그 비정함을 엘렝코스!
1. 왜 울타리 너머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일까
2. 왜 불륜일까
3. 왜 은밀한 사랑일까
4. 어떻게 사랑은 고상해지는가
5.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6. 왜 사랑은 거역할 수 없을까
7. 사랑,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
8. 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아름다울까
9. 죽은 건 개였다
10. 몸을 소유하는 2,633가지 방법
11. 무엇이 커플을 위험한 관계로 만들까
12. 결혼은 미친 짓이다
13. 결혼 없는 사랑
14. 어떻게 사랑으로 불평등해지는가
15. 성매력: 성 부르주아 vs. 성 프롤레타리아

여성, 그 자유로움을 엘렝코스!
16. 위안부: 그 원통함을 어찌 푸나
17. 여성: 거세당한 환관
18. 측천무후: 최초 여황제
19. 글로리아: 인습에 저항한 여인
20. 젠더: 사회화된 섹스
21. 매춘부: 특별하지 않았던 직업
22. 고대 로마: 아내를 두고 매춘하는 남성들
23. 미실: 성교가 철학이었던 여인
24. 처녀성: 만들어진 신화
25. 여성권리: 자유로울 권리
26. 여성종속: 여성노예
27. 페미니스트 행동주의, ‘게릴라걸스’

사람, 그 모자람을 엘렝코스!
28. 유혹: ‘육체의 기쁨’
29. 절제: ‘쾌락의 활용’
30. 무엇이 비극인가
31. 왜 인간은 숨어서 섹스를 할까
32. 왜 몸을 감추는가
33. 왜 자기결정인가
34. 어떻게 운명을 사랑하는가
35. ‘클락웍 오렌지’: 진정한 사람이란 누구인가를 묻는다
36. 누가 탁월한 사람인가
37. 행복을 정복하라!
38. ‘속물근성’을 떨쳐라
39. 누가 진짜 사람인가

도덕, 그 부도덕함을 엘렝코스!
40. 중세: 어느 시대보다 자유분방했던 시대
41. 성직자: 위선으로 사는 사람
42. 여성숭배 세상: 절대 왕정 시대
43. 르네상스: 수도원이 유곽이었던 시대
44. 동성애: 중세에서 상식이었던 사랑
45. 사디즘: 위선을 폭로하는 사상
46. ‘롤리타’: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린 여인
47. 왜 자기를 위한 섹스이어야 할까
48. 어떻게 성차별이 생겼는가
49. 새로운 자아: 섹스로 얻어진 깨달음
50. 어떻게 고독을 물리치는가
51. 테레사: 모든 사람을 속인 사기꾼
52. 삶은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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