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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울에 가면 우리는

서서울에 가면 우리는

  • 한종수
  • |
  • 프시케의숲
  • |
  • 2018-02-02 출간
  • |
  • 412페이지
  • |
  • 153 X 217 X 28 mm /660g
  • |
  • ISBN 979119615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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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서울은 서부다!”
은평-서대문-마포, 서서울의 역동적인 역사

‘지역’이라는 것은 자연 그 자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특정한 관점에서 분류를 할 때 ‘땅’은 비로소 ‘지역’이 된다. 지역이란 처음부터 경계가 모호하고 가변적인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책 《서서울에 가면 우리는》은 ‘서서울’을 하나의 지역으로서 제시하는 최초의 책이다. 저자 한종수와 김미경은 은평-서대문-마포를 위시한 서울 서부를 지역의 개념으로 묶어 해당 공간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저자들은 과연 어떤 관점 아래 서서울이라는 공간을 포착해냈을까.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그리고 일제 강점기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서울은 그 내용은 다를지언정 늘 일관된 가치를 담아왔다. 그것은 바로 ‘변화’와 ‘혁신’이다.
서서울은 조선시대 이래 서울의 관문으로서 중국 대륙의 문물을 가장 빨리 접한 지역이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길목으로서 근대적 설비와 기관들이 집중된 곳이었다. 이런 지역의 분위기 아래, 변화를 꿈꾸는 이상가들이 속속 서서울에 터를 잡았다. 엄혹했던 독재 정권 시기에는 정치적 혁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했고, 밀레니엄을 즈음한 시기에는 문화적 몽상가들이 이곳에서 대안적이고 매력적인 삶을 실험했다. 요컨대 ‘변화’와 ‘혁신’이라는 관점으로 서울을 볼 때, 은평-서대문-마포, 즉 서서울이 자연스레 하나의 지역으로서 포착된다. 이 책은 서서울이라는 공간을 통해 변혁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그러한 통찰을 통해 미래에 다가올 변화를 예비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을 뗄 수 없었다.
서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가 재미있는 이야기로 책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_박원순 서울시장

서서울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킬까. 행정구역상으로 보면 은평-서대문-마포 3개 구를 위시해, 종로구, 중구 일부와 경기도 고양 일부를 포함한다(이러한 지역 범위는 역사의 전개에 따라 당연히 유동적이다). 저자 한종수와 김미경은 서서울을 주인공으로 하여, 시간 순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공간의 역사를 기록해나간다. 서울을 도읍으로 한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의 역사를 담았다.
이 책은 모두 13장의 구성으로, 특히 해방 이후부터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1~3장까지 조선시대 서서울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다루고, 4~6장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서서울을 다룬다. 책의 절반 이상인 7~13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거의 10년 단위로 챕터를 나누어 세밀하게 서서울의 역사를 살펴본다. 근현대의 비중이 높은 까닭은 그만큼 자료가 많이 남아 있기도 하거니와, 최근 100여 년간 급격한 변화가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서서울은 변화가 밀려오는 가장 첨단의 장소였다. 개화파와 보수파 간의 치열한 밀고 당김 사이에서, 김옥균과 대원군 같은 근대의 걸출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드라마틱하게 명멸해갔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절두산(천주교도들의 머리를 자른 산)이 그 소름 끼치는 이름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저자들은 익숙한 일상 공간들에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효과적으로 길어낸다. 왜 신촌 일대에 대학들이 밀집해 들어서게 되었을까? 소박한 정거장이던 수색역은 어떻게 일약 조선 최대의 조차장이 되었나? 수많은 독립투사와 민주투사가 투옥되었던 서대문형무소가 서서울에 위치하고, 아울러 ‘민주세력의 요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 또한 서서울(동교동)에 위치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독자들은 변화의 순간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면서 서서울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서서울이 간직한 변화의 모습들은 매우 다양하다. 쓰레기장이었던 난지도의 대변신과 월드컵경기장 건설, 디지털미디어시티 개발 등이 보여주는 변화는 강남의 그것과 유사하다. 서서울의 특별한 점은 단지 그러한 종류의 변화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홍대 앞’이라는 대안적인 공간의 탄생부터 전개, 발전까지 추적한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그림과 음악, 춤, 문학 등을 실험하며 대안적인 문화를 모색하고 변화를 선도했다. 이는 서울은 물론 한반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으로서, 서서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혁신의 시작점에는 항상 서서울이 있었다.”
미래의 창, 서서울

이 책은 저자들의 효과적인 협업으로 탄생했다. 먼저 저자 한종수와 김미경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색과 성찰 끝에 ‘서서울’이라는 지역 개념을 이끌어냈다. 이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종수는 각종 자료 조사와 문헌 연구를 통해 저술의 뼈대를 잡았다. 그는 화제작 《강남의 탄생》에도 공저자로서 참여했는데, 서술 대상을 날카롭게 정의하고 방대한 자료의 요점을 간추리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저자 김미경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이 책에 유감없이 쏟아 부었다. 그녀는 은평에서 40년 넘게 살면서 서서울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유년시절의 직접체험은 물론, 도시 및 지방행정학 전공의 학문 수련, 그리고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장으로서의 경험까지, 서서울을 다양한 층위에서 접해왔다. 이는 저술에 구체성과 현장성을 효과적으로 부여했다.
서서울은 역사를 선도해왔다. 변화를 이끌고 미래를 선취해왔다. 서서울에 넘실거리는 변혁의 물결은 이내 서울로, 한반도로 퍼져나갔다. 민주주의가 그랬고, 홍대 앞 문화가 그랬다. 서서울이 미래의 현실이라면, 오늘날의 서서울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수색 역세권 개발 등 통일 한반도를 예비하는 움직임일까? 동교동을 잇는 새로운 정치 세력화의 가능성일까? 아니면 자본에 의해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디스토피아일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이미 한국의 미래가 서서울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책속으로 추가]
미국이 모체인 만큼 연희전문의 학풍은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 그리고 상학에 강세를 보였다. 연희전문에 비할 만한 사학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뿐이었다.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은 자연스럽게 라이벌 관계를 이루었다. 연희전문은 의학과 상학, 보성전문은 법학을 중심으로 최고 사립학교가 되었다. 해방 후 두 학교의 스포츠부가 격돌하는 연보전(고연전, 연고전으로 바뀐다)은 일반인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일본 도쿄의 두 사립학교인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의 라이벌전에서 비롯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게이오 대학은 의학과 상학에서, 와세다 대학은 법률에서 강세라는 특징도 비슷하다._170쪽

섬 이름이 ‘아무나 가져라’라는 뜻이라고 할 정도로 별 볼일 없었던 여의도가 천지개벽 수준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안, 밤섬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여의도를 막더라도 한강 흐름에 지장이 없게 하려면, 대신 밤섬이 사라져야 했던 것이다. 더구나 윤중제(강둑)를 쌓기 위해서는 많은 돌이 필요했는데, 밤섬의 돌이 안성맞춤이었다. 당시 1만 7,793평의 밤섬에는 78가구 44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석씨, 마씨, 인씨, 선씨 등 희성들이 많이 살았고 조선 초기부터 17대째 사는 이들도 있었다. 병도 도둑도 없는 신비의 마을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인 섬을 내주고 섬이 내려다보이는 와우산 기슭에 지은 연립주택으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_301쪽


목차


프롤로그

1장|흥성거리는 한양의 입구
조선의 수도가 될 뻔했던 ‘무악’│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서서울의 산들│지긋한 세월을 품은 사찰들│훈민정음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연산군의 무모한 몽상│조선시대 제1로, 의주로│강화도 가는 길│영은문과 모화관│사신들로 흥성대던 홍제원│돈의문과 대호 김종서의 비극│수상교통의 요지, 마포│서강에는 조선소가 있었다│시인묵객이 노닐던 정자들│만리동고개의 투석전│아이들의 공동묘지, 애오개│병든 이는 서활인서로│마포 강변의 토정 이지함│연희동에 뽕나무가 무성했던 까닭│좋은 기운이 서린 땅, 서오릉
2장|전란의 위기에 휩싸이다
행주대첩을 추억하다│당인동의 당나라 사람│은평구의 상징이 말인 이유│홍제원의 반정 세력들│서서울에 들이닥친 이괄의 반란군│불광동의 청군을 피해 달아났지만

3장|점점 다가오는 근대의 물결
호랑이가 출몰하던 무악 고갯길│애오개의 반인들과 산대놀이│역관들의 활동 무대│내시와 궁녀들의 무덤, 이말산│확장되는 서서울│상품작물 재배의 최적지│빈농과 부농의 분화│서서울에 제조업이 있었을까│갖가지 시전이 들어서다│난전의 상행위│경강상인들의 무대│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절두산│조선의 군함을 가지고 싶다

4장|조선의 자중지란과 몰려드는 외세
개화파의 온상, 봉원사│김옥균과 대원군의 마지막 장소│언더우드 목사, 서울에 오다│서서울에 진출하는 개신교│평화가 내려앉은 외국인들의 묘지│철도 부설과 일본인들의 횡포│독립문의 건립, 그러나…│한국 현대사의 축소판, 서대문형무소

5장|오직, 독립을 위하여
마포형무소의 건설│서서울의 3?1만세운동│진관사의 태극기│불교계 독립운동의 선봉장, 백초월 스님│의친왕, 수색역에서 망명을 시도하다│야학과 교육의 중심지 서서울│의열단원 김익상│송학선의 금호문 의거

6장|그래도 근대화는 계속된다
서민의 발이 된 마포전차│수색역의 대변신│신작로 건설과 그 그늘│당인리발전소의 영광과 쇠퇴│“수색변전소를 아시나요”│아현동 빈민주거지의 형성│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들│문화주택에 살으리랏다|동양극장의 드라마틱한 역사│신촌을 만든 연희전문│두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은평의 농민운동│조선인들의 학교│정식으로 경성에 편입되다

7장|혼란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역대 대통령과 서서울│‘마지막 임시정부 청사’, 경교장│서울형무소로 바뀐 서대문형무소│이화여대와 연세대의 설립│국방의 요충지 서서울│신성모의 공관 마포장과 행주나루 철수│연희고지 일대의 혈전│1?4후퇴와 폐허가 된 서울│전후 복구라는 과제

8장|재건을 향한 열망들
서서울의 주택 건설│대규모 주택 건설의 효시, 국민주택│홍익대의 이전과 서교동의 개발│신촌의 4?19│서대문 경무대의 기억│김수영을 위하여

9장|발전의 토대를 닦다
서대문형무소의 희생자들│마포 경성형무소를 말하다│수색동 천막촌│쎄시봉과 클리프 리처드│새로운 주거문화의 선구자, 마포아파트│김중업의 프랑스 대사관│한국 건축의 거장, 김중업│자동차 시대로 진입하다│서강대의 탄생│절두산 순교성지의 조성│연세대 학생회관과 극동방송국│애오개 언덕의 돔: 성 니콜라스 성당│지금은 사라진 수색 연탄공장

10장|개발의 시간, 반독재의 공간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거대한 바리케이드, 유진상가│저널리스트들이 모여 살던 곳│김대중과 동교동 자택│1975년 4월 9일의 ‘사법살인’│불광동 성주 천관우의 쓸쓸한 말로│역촌동의 언론투사, 송건호│분단문학의 거장, 이호철│“흐린 하늘도 의미가 있습니다”│마포를 뒤흔든 여의도 개발|마포 ‘귀빈로’의 탄생│YH사건의 무대: 마포 신민당사│마포 돼지갈비와 주물럭의 탄생│응암동 감자탕│아름다운 마을 ‘한양주택’
11장|민주화와 경제발전
마포로의 천지개벽│1980년대의 동교동│홍대 앞의 시작│출판 문화의 중심지가 되다│김수근의 마지막 작품: 불광동 성당│6월항쟁의 중심: 연세대 학생회관│한열동산을 거닐다│시인 기형도의 우울한 도시│지하철의 시대

12장|새로운 세대가 몰려온다
새 시대의 시작│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개관│강경대와 1991년 5월│홍대 앞의 성장│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의 대변신│서울내부순환도로의 개통

13장|서서울, 문화를 선도하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제2기 지하철의 개통│‘원더풀’ 디지털미디어시티│불광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다│서서울 대학들의 변신│홍대 앞의 팽창│일본음식의 메카│책문화가 살아 숨 쉬다│은평 뉴타운 이야기│문화 중심지를 향한 은평구의 도전│걷고 싶은 서서울의 거리들│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석유비축기지│행화탕과 산새마을│서울시의 거대한 실험, 서울혁신파크

김미경의 에필로그
한종수의 에필로그
서서울 연표
참고문헌

도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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