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 민주주의는 촛불로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며 본 받으려 했던 구미 어느 나라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장엄한 촛불민주주의의 휘영청 광휘를 함께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역사의 장을 넘기고 일상으로 돌아와 자각합니다. 촛불만으로는, 다시 촛불에 기대기에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과제들이 너무나 복잡다양하고 험난하며 일상의 현실은 너무나 완강합니다. 이제 좀 더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해법이 요구되는 장기전입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을 법과 제도를 통해 질서있게 능동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관존민비'의 적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행정법이 필요합니다. 행정법은 법치주의를 토대로 새롭게 정립된 민관 관계의 규칙을 구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총체이기 때문이지요. 즉 민관 관계의 법이자 관을 다스리고 관과의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래 행정법은 국가적 지배의 합리화, 통치의 율령화를 위한 수단으로 봉사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행정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의 장으로서 인류문화의 중요한 결실을 일구어내 구현해 온 법치주의의 테크놀로지이자 실천메카니즘이기도 했습니다. 행정법에는 국가, 국가권력, 관청과 관리와의 관계에서 국민, 시민, 민중들이 때로는 투쟁과 항의를 통하여 때로는 협동과 참여를 통하여 성취할 수 있었던 무수한 도전의 성과, 축적들로 충만합니다.
국가와 행정, 법에 관한 식견을 갖추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적 소양의 필수적 요소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행정법은 바로 그 중 가장 핵심적 부분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 현대 한국사회에서 행정이 따라야 할 법의 요구가 무엇이며, 시민들이 그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실천적 지식과 정보를 공유, 확산시키는 것이 이 책의 목표입니다. 행정법을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실천역량을 갖출 수 있는 지적 탐험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사례상황과 관련하여 토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 동시대인이 이룬 성취와 축적을 후대에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마음과 눈으로 행정법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또 변화시켜 나가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30여년간 행정법학자로 살아오면서 늘 염두에 두면서도 마음에 걸린 물음이 하나 있었습니다. 행정법이란 무엇인가? 시민들이 행정법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인가? 이런 물음에 응답하기 위한 책을 꼭 쓰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내면서 감히 그 묵은 숙제를 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제 또 다시, 늘 그랬듯이, 시작입니다. 벼리기 시작입니다.
이 책은 책 제목에서 보듯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행정법입문서'입니다. 주로 대학 수준의 독자들을 위한 기초교양으로 고안되었습니다. 주석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각주를 지양하고 미주로 돌렸습니다. 이 책에서 생긴 의문과 관심은 제가 쓴 다른 전공서적들 -「행정법」(법문사, 2017), 「행정쟁송법」(도서출판 오래, 2017), 「행정구제법」(도서출판 오래, 2012), 「환경법특강」(박영사, 2017), 「지방자치법」(대명출판사, 2017), 「행정과정의 법적 통제」(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등-을 통해 해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내는 과정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여러분들, 저자에게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신 선후배, 동료 제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자의 강의를 들었거나 듣게 될 학생들이야말로 이 책을 쓰면서 늘 떠올렸던 주인공들입니다. 저의 신뢰와 사랑을 보냅니다.
2018년 새해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낀 바다 위의 방랑자」를 떠올리며
홍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