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oT, 클라우드, 인더스트리 4.0…
과학 기술의 시대에 문과생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교양이 담긴 이과 가이드북
많은 것을 기술이 대체하는 시대다. 가령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보자. 공항에서는 자동출국심사로 출국장을 통과하고 여행지에서는 통번역 어플리케이션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로 환전 없이 경비를 해결할 수도 있다. 불과 수십 년 전 미래의 산물로 여겨졌던 구글의 자율주행자동차나 아마존의 드론 택배는 상용화를 앞두고 있고 “가까운 미래엔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불법이 될 것이다”라는 엘론 머스크의 말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온 듯하다. 이토록 생활 속 깊은 곳까지 변화시킨 과학을 눈앞에 두고 더는 ‘저는 문과입니다만’이라는 핑계를 대며 도망갈 길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며 잘 살고 있는 문과생에게 처음부터 수학, 과학을 다시 배우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터. 여기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문과생을 위한 이과 센스》(위즈덤하우스刊)다.
이 책의 저자는 법조인의 꿈을 안고 도쿄대 교양학부에 입학했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이과 계통에 종사했던 집안 내력에 ‘사실은 나도 이과가 아니었을까?’라는 자문자답 끝에 졸업 후 다시 이학부로 편입했다. 이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고에너지 물리학 박사라는 지극히 이과의 길을 걷게 된다. 이처럼 이과, 문과 다 겪어본 저자가 느끼고 깨달은 바는 문과와 이과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지식에 능통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듯이, 유럽에서 과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발전해왔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저자는 문과와 이과, 두 계통의 저항감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의 삶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새로운 과학 기술 시대 지식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과생들에게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저항감을 없애는 데 중점을 둔 이 책은 먼저 ‘이과와 문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과학적 사고의 본질부터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파악하는 법까지 현대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이과 교양을 한눈에 담아냈다.
“핵심은 논리적 사고에 있었다!”
숫자로 표현되는 사고의 규칙을 파악하면,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저항감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더 큰 흐름이 보인다!
정보화 이전에는 비즈니스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논리성은 문과 교육만으로도 충분했다. 예를 들어 법학부에 진학해 법적 개념을 논리적으로 쌓아올린 체계인 법학의 기초만 제대로 공부한다면 상사나 거래처에서 “당신의 설명은 논지가 명확해서 알기 쉽네요”라고 평가받을 정도의 논리성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사회가 도래하면서 비즈니스는 점차 컴퓨터화 · 수학화되었다. 빅데이터 분석이든, 갖가지 금융 통계 지표든, 회사 내 통계 숫자든, 도출된 수치의 밑바탕에 있는 사고의 논리성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실상 승부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진정 문과생에게 필요한 것은 이과 지식의 근간에 있는 논리적 사고, 즉 ‘이과 센스’라고 말한다. 문과와 이과의 차이는 ‘수학 자체를 사용할 수 있는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평소부터 수학을 사용함으로써 논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훈련이 되었느냐에 있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적 사고를 익히기 위해 따로 공부를 하고 익혀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이미 모든 문과생들에게는 논리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책은 인터넷 검색 속에 숨어 있는 집합 개념, 평범한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명제 표현 등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숫자로 표현되는 사고의 규칙이라 할 수 있는 ‘논리’를 구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이과 센스’를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저항감에 휩싸여 그동안 외면해 왔던 방대한 지식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과학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
AI 시대와 최첨단 기술을 파악하는 방법부터 과학의 이면을 의심하는 방법까지,
기초부터 터득하는 가장 쉬운 이과 공부
저자는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통한 달 관찰, 칸토어의 무한 개념 등 과학사의 에피소드를 전체적으로 훑어가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과학관을 세울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준다. 또한 영화〈이미테이션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앨런 튜링이 제시한 인공지능의 기준, 이미 상용화된 양자컴퓨터가 기상 시뮬레이션에서 신약 개발까지 방대한 계산이 필요한 업무를 소화해내고 있는 현상을 통해,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 그 방향을 일깨워준다. 이외에도 우주개발로 대표되는 거대과학의 생산성 논의와 과학계의 부정연구 사례를 통해 과학을 있는 그대로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힘까지도 전달하고자 한다.
이처럼 문과와 이과를 모두 전공한 저자는 별다른 이과 지식이나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일상 속 명제들이 어떻게 논리성을 획득해나가는지 보여주고, 최신 과학 이슈에도 익숙해질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낸다. 읽는 것만으로도 교양 지식을 쌓고 ‘이과 센스’를 획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책은, 과학적 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의 흐름에 막막함을 느꼈던 문과생들에게 실질적인 출구가 되어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연구원과 학생이 모여 있었는데, 아무도 이과냐 문과냐를 신경 쓰지 않았다. 즉 글로벌한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과냐 문과냐를 따지는 구분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서양에는 모든 것을 이과나 문과로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분류 감각이 매우 희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을 기준 삼아 우리가 문과와 이과를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여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현대 과학은 17세기 과학혁명을 계기로 유럽에서 생겨난 근대 과학을 주춧돌 삼아 성장해왔다. 반면에 우리는 이를 근대화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완성된 형태로 수입해왔다는 차이가 있다. (15쪽)
정보화 이전에는 비즈니스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논리성은 문과 교육만으로도 충분했다. 예를 들어 법학이란 법적 개념을 논리적으로 쌓아올려 만들어진 체계이다. 따라서 법학부에 진학해 법학의 기초만 제대로 공부한다면, 수학이나 물리만큼의 엄밀성은 없다고 해도 상사나 거래처에서 “당신의 설명은 논지가 명확해서 알기 쉽네요”라고 평가받을 정도의 논리성을 익히는 것은 가능했다. 그랬던 비즈니스가 인터넷 사회가 도래하면서 점차 컴퓨터화·수학화됐다. 빅데이터 분석이든, 갖가지 금융 통계 지표 이용이든, 회사 내 통계 숫자든 간에 수치가 도출된 밑바탕에 있는 사고의 논리성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실상 승부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다. (24쪽)
참과 거짓, 1과 0에 대응함으로써 논리를 연산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논리연산의 기초가 된 집합도 컴퓨터로 다룰 수 있다. 실제로 검색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을 때 여러분은 집합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잘 사용한다. 예를 들어 ‘오늘 명동에서 영화나 볼까’라고 생각했다면 검색창에 ‘명동 AND 영화관’ 같은 식으로 입력할 것이다. 인터넷상에 있는 방대한 정보의 집합에서 ‘명동’과 관련 있는 정보를 가진 사이트를 골라내고, 그중에 ‘영화관’과 관련 있는 정보를 가진 사이트만으로 범위를 좁히는 식이다. 이것이 집합의 ‘A 그리고 B’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보통 검색창에 ‘명동 영화관’처럼 단어만 나열해서 입력하는데, 단어 사이의 공백을 ‘AND’와 똑같이 인식하게끔 자동 처리되고 있을 뿐 의미는 같다.(74쪽)
분명 인류의 과학 지식이 미치는 범위는 광대하다. 이제는 130억 광년 이상이나 멀리 떨어진 은하를 관측할 수 있는가 하면, 전자 현미경으로 100만 배라는 놀라운 배율로 마이크로 세계를 관찰할 수도 있다.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의 개발로 예전에는 불치병으로 여겼던 병도 잇달아 완치할 수 있게 되었다. 천연두가 박멸되고 결핵을 완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암과의 싸움은 아직 진행형이다. 우주 비행사가 도달할 수 있었던 곳은 여전히 달까지에 불과하며, 이웃하는 행성인 화성조차 아직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구 내부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자랑하는 심해 유인 탐사 잠수정 ‘신카이 6500’이 새로운 조사를 할 때마다 신종 심해 생물을 속속 발견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지의 영역은 아직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모종의 발견으로 인해 종종 또 다른 수수께끼가 생겨날 때도 있기 때문에 과학 지식의 지평은 오히려 실시간으로 계속 넓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129쪽)
‘의심해야 과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므로 ‘믿을’ 필요는 전혀 없다.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알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며, 올바르게 사고한다는 말은 제대로 정당하게 ‘의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학을 과학으로 정당하게 하려면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 혹은 과학 예산에도 편견이나 선입견을 품지 말고 올바르게 의심해보아야 한다. 과학은 내버려두면 점차 블랙박스화되기 때문에, 그럴수록 전문가가 아닌 우리도 더욱더 과학의 본질이나 최신의 커다란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 과학은 전문가에게만 맡겨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회에서도 과학을 정당하게 의심하는 안목이 필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이과와 문과라는 구분을 넘어서야 할 때다.(2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