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삶일지라도, 자신을 잃지 않으면 견딜 수 있다
삶의 부침을 견디며 맞닥뜨린 감정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추사 김정희(이하 추사) 또한 절해고도의 막막한 유배 생활에도 좌절하지 않고 훌륭한 작품을 남기며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겼다. 저자는 그동안 역사 속 인물의 삶과 성찰을 담아 인문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실용성을 결합한 글을 써왔다. 2013년에 출간된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의 개정판인 이 책은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2007),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2009)를 잇는 세 번째 인문실용소설로, 험난한 인생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추사의 목소리로 전한다.
저자는 추사를 ‘나’로, 추사의 서얼 아들을 ‘너’로 설정하고, 추사를 동경하는 아들에게 아버지인 추사가 전하는 인생 메시지를 편지 형식으로 서술했다. 거친 풍랑을 헤치고 유배지인 제주에 가까스로 도착한 추사는 문득 ‘아버지를 닮고 싶다’는 서화를 남길 정도로 자신을 동경하기만 할 뿐 스스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아들을 떠올린다. 모든 면에서 냉정하고 비판적이었던 추사에게 유약한 아들의 모습은 사회적 차별을 받는 서얼이라는 점을 배제하더라도 위태롭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추사는 지옥 같은 유배 생활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방법을 알려주고, 아들이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현실적인 충고와 교훈을 전한다.
냉정한 현실주의자, 추사가 말하는 다섯 가지 삶의 지침
추사의 제주도 유배생활은 결국 그를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었지만, 그 과정은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거친 풍랑을 헤쳐 고생 끝에 도착한 제주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추사의 마음처럼 춥고 황량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추사는 육지에 얽매이지 않고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삶, 사람, 사물 등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독특한 필체인 ‘추사체’나 불멸의 명작 〈세한도〉 같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추사는 다섯 가지 삶의 지침을 자신이 겪은 일화를 통해 은유적으로 전한다. 험난한 풍랑을 함께 견딘 의금부도사의 차가운 손을 떠올리며 ‘고난과 역경 속에도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바닥에 버려진 수선화를 보며 ‘자신감은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교훈을 일깨운다. 박제가, 옹방강 등 추사에게 영향을 미친 귀인들과의 교유관계를 생각하며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따르던 스승 초의, 자신을 따르던 제자 소치와의 일화에서는 ‘인정받으려면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교훈을 알려준다.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와 이 작품에 깃든 진실을 이야기하며 ‘나답게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유도한다.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삶이 힘겹다고 느낄 때, 누군가에게 삶의 조언을 구하거나 가르침을 얻더라도 자신의 내면이 단단하지 못하면 그 가르침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결국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좀더 냉정하게 자신을 파악하고, 자신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목표에 집중하고 자신의 확신을 믿는 것뿐이다. 절해고도에서 위리안치에 처한 추사가 절망에만 몰두했다면 지금의 추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몇 번의 고비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나답게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면 자연스럽게 나를 지키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혹독하고 냉정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추사의 가르침은 삶의 방향이나 목표를 잃고, 나를 잃은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 추사가 말하는 ‘나를 지키는 법’
1. 고난과 역경 속에도 길이 있다
위기와 절망에 처했을 때, 초연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라.
2. 자신감은 확신에서 비롯된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라.
3.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원하는 것의 핵심을 파악하고, 전력을 다해 목표에만 집중해라.
4. 인정받으려면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진심과 정성을 먼저 표현하고, 그다음에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
5. 나답게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타인을 본보기로 삼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라.
▶ 본문 중에서
절해고도의 자연에서 한 수 배운 나는 서늘하고 냉정해졌다. 의금부도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험한 길 지나왔다고 마음 놓으면 안 됩니다. 평탄한 듯 보여도 이제 절반입니다. 갈 길은 여전히 멉니다.” (중략)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은 이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현실의 차가움이 아닌 마음의 엄정함. 두려움에 감정적인 굴복이 아닌 차갑고 냉철한 대처. 그러므로 혹독한 관리의 차가운 손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했다. _35~36쪽, 〈제1장 고난과 역경 속에도 길이 있다〉 중에서
너는 길에 들어섰으면서도 머뭇거리기만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 머뭇거림과 의심이 싫다. 혹여 너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겠고 무엇이 그른지도 모르겠다. 이 길이 과연 길이기는 한 것인가? 이 길이 길인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더 살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네가 겉보기엔 한정 없이 많아 보이는 시간과 마음을 그런 식으로 허비할까 두렵다. 시간과 마음은 기실 그리 풍부한 물건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한순간 바닥을 드러낸다. _84쪽, 〈제2장 자신감은 확신에서 비롯된다〉 중에서
너는 분명 나를 닮고 싶다고 했다. 나를 닮고 싶다는 것은 네가 문밖에서 서성이는 이광사와 심사정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랫목에 자리한 왕희지와 예찬과 황공망을 꿈꾼다는 것이다. 쉬운 길은 아니다. 너는 그 길을 가면서 돌부리에 수없이 채이고 넘어질 것이다. 굽은 길로 잘못 들어서 가시밭길을 헤매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나처럼 가족도 없이 벗도 없이 절해고도에 홀로 남겨져 수선화 한 뿌리에 눈가를 훔치기도 할 것이다. 힘든 그 길을 가기 위해 네가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바로 문을 열고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할 생각을 하는 것이다. _128쪽, 〈제3장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중에서
용을 잡고 싶으냐? 부처를 만나고 싶으냐? 그렇다면 먼저 소치를 배울 일이다. 내게 칭찬을 받을 만큼 받았으니 소치의 요구도 더 이상은 없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았다. 소치는 요구할 것이 아직도 많은 사람이었다. 소치는 제 그림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보이고 싶어 했다. 절해고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는 그 사실을 알고는 기꺼이 그의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중략) 나 또한 요구의 미학에는 요구의 미학으로 응했다. _172~173쪽, 〈제4장 인정받으려면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중에서
붓을 든 사람들은 모두들 예찬이나 황공망이 되려고 한다. 그러면서 한다는 짓이 그저 건필과 검묵으로 억지로 황량하고 간솔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렇게 한다고 예찬이나 황공망이 될 수가 있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단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짓이다. 너는 내가 되려 한다. 나를 닮으려 한다. (중략) 나는 너를 온전히 이해한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나를 닮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_210~211, 〈제5장 나답게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