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유독 사랑했던 영화들의 배경이 된 도시를 찾은
아주 특별한 유럽 여행 에세이
영상과 글 모두를 다루는 콘텐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윤정욱은 지난한 ‘취준’ 기간을 마무리하며, 답답한 직장인 시절에 숨통을 틔우려, 꿈을 따르기 위해 퇴사를 하고 나서 등 20대 삶의 변곡점에서 세 번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을 의미 깊게 만든 것은, 저자가 사랑하여 수도 없이 찾아 본 영화들의 배경이 된 공간을 찾았다는 것. 저자는 첫 유럽 여행을 앞두고 학창 시절부터 취미로 삼아 한 몸이 된 카메라를 메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음에 깊이 남은 영화들을 따라다니기로 한다.
그 영화들은 저자에게 제목만으로도 배꼽이 간질간질해지는 영화, 진한 첫사랑의 추억이 배어 있는 영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환기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품었던 영화들이기도 하다. 때문에 빈, 파리, 잘츠부르크, 피렌체, 더블린 등의 유럽 도시들의 풍경을 한가득 담아낸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 그 영화를 보던, 처음 그 도시에 발을 내디뎠던 그 시절이 되살아나는 마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도레미 송’을 부르며 마리아와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오르던 미라벨궁전의 장소에 서서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던 15년도 훨씬 전의 나를 떠올렸다. 잘츠부르크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리며 도시로 온 사람들을 과거로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과거는 추억과 회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다가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_본문 144쪽에서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를 따라다닌 저자의 눈에, 한 도시에서 오롯이 촬영된 영화들과 그 도시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매력이 들어왔다. 여행지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열망을 유행시킨 [비포 선라이즈]의 환상적인 낭만이 빈의 밤에 가득했으며, 파리는 관광지로서의 낭만과 그 이면의 고단한 여정이 선사하는 간극이 마치 9년 만에 재회한 제시와 셀린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았다. 소박한 도시 잘츠부르크와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한 경관을 자랑한 그 교외의 장크트길겐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환기하는 순수함을 닮아 있었고, 수백 년 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피렌체는 과연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하는 [냉정과 열정 사이] 속 쥰세이의 도시 그 자체였다. 음악 영화 [원스]와 [싱 스트리트]의 배경이 된 존 카니 감독의 고향 더블린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음악이 울려 퍼져, 거창하거나 크게 굴곡진 서사가 없이 음악들을 선사하는 그의 영화들과 꼭 닮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블린을 여행하는 동안 도시에선 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던 그래프턴 스트리트(Grafton Street)뿐 아니라, 평범한 음식점에서도, 탁 트인 광장에서도 사람들은 늘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단순히 흥얼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악기를 꺼내어 들고 본격적으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있는 공간이 어디든 그곳을 음악 소리로 가득 채웠다. (…) 음악과 한 몸을 이루는 영화의 배경이 되기엔 더없이 적절한 도시라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다. 더블린 출신의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어쩌면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_본문 227~231쪽에서
영화 속 장소들의 실재성을 발견하는 저자의 여정은 영화의 감동과 여행의 감상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된다. 여느 평범한 골목길에서 헤어짐을 준비하는 제시와 셀린을, 수년 만에 이국의 땅에서 우연히 옛 연인을 발견한 아오이를, 같은 음악을 나눠 듣는 두 남녀가 마치 실존인물인 것처럼 생생히 되살려내는 것이니까. 마음 깊이 담아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와 장소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실재했을 거라 상상하고, 그들이 인상적인 장면을 치러냈으리라 상상할 수 있기에 그 장소를 사랑하게 되는 애정의 무수한 선순환에서 영화와 여행의 감동은 극대화된다.
해서, “나에게 이 도시에선 영화 속에 나온 장소들만이 의미 있는 장소였다”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이 특별한 여행을 통해 영화에 대한 편애는 극대화된다. 저자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인 ‘The Whole Nine Yards’를 들으며 작품 속 약속의 장소였던 두오모에 오르고 [원스]의 OST인 ‘If You Want Me’를 들으며 더블린의 주택가를 걸으면서, 공감각적으로 영화에 담뿍 빠져들었다. 전문가 수준의 사진 실력을 뽐내며 도시들의 정경을 한가득 담은 사진과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여정에서의 경험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공유하고 싶었던 그 낭만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YOLO(you only live once)족’이 대두되며 해외여행 인구가 날로 많아지는 요즈음, 영화에 대한 하나의 헌사로서 《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은 남다르고 색다른 여행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