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4세 엄마 엘렌이 두 자녀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뇌종양이 재발하며 말기 판정을 받은 엘렌은 한 살배기 막내 캐롤이 다른 뇌종양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엘렌은 뇌종양 환자를 위한 모금을 독려하며 캐롤과 네 살 난 큰 아들 제임스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엄마는 너희가 크는 걸 곁에서 볼 수 없을 것 같구나. 엄마의 마음을 말로 다 하기도 힘들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마주하기는 더 힘들 것 같구나. … 너희들은 너희가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사랑하기 바라. 사랑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전혀 사랑해 본 적 없는 것보다 나은 것 같구나 …….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지만, 교과서보다는 학교생활에서 더 배울 게 많단다. 친구들과 팀 스포츠를 하고, 악기도 하나 연주할 줄 알고 외국어도 배우면 좋을 것 같구나.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왜냐하면 성공보다는 실수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 말고 가능한 한 많이 여행도 하기 바란다. 여행을 하며 네가 알고 경험한 것과 다른 많은 것을 보고 느끼다 보면 그런 것들이 모여 너를 만들어 줄 거야. …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놀리지 말고, 또 사람들과 같이 식사할 때 테이블 매너는 중요하단다. … 누구에게 부탁할 때 ‘please’라고 이야기하며, 매사 고마운 마을을 갖고 ‘Thank you’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바란다…….
가족은 참으로 중요하므로 늘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아빠에게 친절하고, 아빠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날이 오면 아빠가 한 선택을 인정해주고 같이 반가워해주면 좋을 것 같아.”
젊은 엄마 엘렌이 죽음을 앞두고 두 자녀에게 쓴 이 공개편지는 ‘글로벌 에티켓’을 쓰고 있는 저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체득해야 할 세계인으로서 마음가짐의 기본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진정 ‘세계인’인가.
우리는 예로부터 한 마을에 오래 정착하며 폐쇄적으로 살아 온 민족이라서 그런지 아는 사람에게는 잘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소 무관심하고, 퉁명스러운 편이다.
우리에게 ‘남’의 개념은 세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내가 아닌 그 외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즉 ‘내가 모르는 사람들’은 ‘남’에 속하지도 않는다. 이는 실로 큰 문제이다. 우리의 공중도덕도 모두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모르는 사람은 남도 아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없는 데에서는 어떻게 행동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운전을 할 때도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마구 앞지르고, 끼어들고, 아무데서나 U턴을 하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그런 사람들의 논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봐도 어차피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희뿌연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식의 행동이다.
어느 누구도 한국인들이 거리에서 빨리 가기 위해 남을 밀치는 행동을 악의가 있어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의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고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렇게 정당화하고 지나가기에는 이제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다. ‘남’,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아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는 체면 차리기에 급급하면서도 아는 사람들이 없을 때는 ‘남 눈치보기’에서 해방되어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한 스위스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다.
어느 날 아침, 막 파란 신호등이 꺼지려는 교차로에 다가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신호에 걸리지 않고 통과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차를 잽싸게 빼더니 노란 사선이 그어진, 어느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이 성역(?)을 과감하게 통과하여 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 스위스 친구는 놀라서 급정거를 했고 뛰어든 차는 유유히 교차로를 통과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한국의 교통 상황에서 이 정도는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친구가 크게 실망한 이유는 그 차의 운전자가 평소 존경했던 직장 상사였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대부분 내가 모르더라도 내가 아닌 남에 대한 기본 예의가 있다. 유목인이었거나 이동을 하며 상업으로 삶을 영위해 와서인지 그들에겐 낯선 사람들이란 잠재적 친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행동한다.
또 미국인 친구 메리는 “처음에 한국인과 마주쳤을 때 한국인이 인사를 나누지 않고 무심코 지나는 것이 이상했지만 이제는 ‘바빠서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자기도 한국 생활 3년 만에 한국 사람 다 된듯한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며 웃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이러한 모습이 우리 한국인의 진정한 모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