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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의 한국사

꾸밈의 한국사

  • 민병덕
  • |
  • 책이있는마을
  • |
  • 2018-01-22 출간
  • |
  • 288페이지
  • |
  • 142 X 195 mm
  • |
  • ISBN 978895639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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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일제강점기에는 흰옷 입으면 먹물을 뿌려?
우리 민족을 흔히 백의민족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예부터 우리 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었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는 풍속은 염색을 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에서 나온 주장이다.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흰옷이 항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자 일본 정부는 색깔 있는 옷을 입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색의착용실행회’ 등의 단체를 만들어 이를 홍보하였다. 일본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백성들이 협조하지 않자, 강원도 춘천에서는 흰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색의선전원’이 먹물을 뿌리며 폭행하기도 하였다.
또 농촌진흥운동이라면서 색깔 있는 옷을 입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고, 1929년에는 1월 5일을 ‘색깔 있는 옷을 입는 날’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흰옷을 입은 사람에게 먹물을 뿌리게 하고, 색깔 있는 옷을 입지 않으면 시장에 나오지 못하게 하거나 벌금을 물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흰옷을 입는 것은 후진 민족이라고 한다든가, 색깔 있는 옷을 입는 것보다 비용의 지출이 많다고 선전하였다.

정조대왕도 안경을 쓸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했다
우리 조상들은 안경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었다. 서양에서는 위엄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웃어른 앞에서 안경을 끼면 불경스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조는 눈이 나빠 안경을 썼는데, 조정에 나갈 때 안경을 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관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였다. 헌종의 외숙이 눈병이 있어 안경을 끼고 대궐에 드나든다는 말을 듣고 헌종이 “외숙의 목이라고 칼이 들지 않을꼬.” 하고 말했더니, 외숙은 먹고 자는 것도 잊은 채 고민하다가 자결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고종은 근시로 시달리는 순종이 안경을 쓰면 야단을 쳤다고 한다.
조선 조정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안경에 대한 예법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다. 1891년(고종 28) 일본 전권공사 오이시가 안경을 쓰고 고종을 만나자 일본 정부에 공식 항의하기도 하였다.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도 고종을 만날 때는 안경을 벗고 만나야 했고, 그가 벗어놓은 안경이 반일 감정에 의하여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던 모양이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후 청나라의 추천으로 우리나라에 파견된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가 안경을 벗고 삼배를 올리자, 고종은 안경을 쓰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경을 ‘게눈깔’이라고도 하였으니,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과 함께 온 서양 사람들이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이 툭 튀어나와 ‘게눈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경을 달리 부르는 말로 ‘애체’가 있다. 이 명칭은 중국에 안경을 전해준 네덜란드 사람의 이름이 ‘애체’였기에 붙인 이름으로, 조선에서 그 중국어 표기를 그대로 따와 부르게 되었다.

‘아양 떨다’는 여성들의 방한모인 아얌에서 유래한 말
조선시대 부녀자들은 겨울에 나들이할 때 아얌을 썼다. 여자가 콧소리를 내며 머리나 몸을 살살 흔들면서 애교 부리는 것을 ‘아양을 떤다’고 한다. 이 ‘아양’이란 말은 여자들이 쓰는 모자인 ‘아얌’에서 유래하였다. 겨울철에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머리에 쓰던 방한모자가 아얌이다. 겉은 고운 털로 되어 있고 안쪽에는 비단을 댔다. 머리의 열을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정수리 부분은 터져 있어 이마만 두르게 되어 있다. 아얌의 앞쪽과 뒤쪽에는 붉은색 수술을 달아 장식하였다. 더 화려한 것은 뒤쪽에 널찍하고 길게 비단으로 만든 ‘아얌드림’을 댕기머리처럼 늘어뜨렸다. 그러니까 아얌을 쓴 여인이 콧소리를 내며 머리나 몸을 살살 흔들면서 애교를 부리면 수술 장식과 아얌드림이 가볍게 흔들린 데서 ‘아양’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깨끗이 하는 ‘양지楊枝’가 양치질의 어원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이를 닦는 방법이 전해졌다. 스님이 해야 할 일 중 첫째가 이를 깨끗이 하는 것인데 이를 ‘양지(楊枝)’라고 한다. 버드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를 사용하였기에 쓰인 말이다. ‘양치질’은 바로 양지에서 온 말이다.
1103년(숙종 8)에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중국 송나라의 손목(孫穆)이 당시 고려의 제도와 풍속을 비롯하여 고려에서 사용하던 언어 360여 가지를 기록한 《계림유사》에도 ‘양지’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로 미루어 고려 사람들도 이쑤시개로 양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한말에 이르러 치분이라 하여 가루를 낸 소금이 치약으로 쓰였다. 오늘날과 같은 치약은 6·25전쟁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온 미군이 쓰던 치약이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195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 개념의 치약인 ‘럭키치약’이 생산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칫솔은 1938년 듀폰이 나일론을 소재로 만든 것이다. 습기가 스며들지 않는 나일론은 세균이 번식하지 않는 이점이 있고 질기고 탄력이 뛰어나 ‘기적의 칫솔’로 불리며 인기를 누렸다.

옛날에는 우산이 권위의 상징
오늘날 우산이나 양산은 비나 햇볕을 가리는 도구일 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우산이 물리적인 기능 외에도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우산을 궁궐에서 함부로 사용하다가 파직을 당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광해군일기》의 한 대목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대전께서 진하례를 마치시고 왕세자가 막 배위拜位를 떠나서 백관이 아직 반열에 있었을 때에, 승지와 사관 등이 우산을 높이 펼쳐 들고 전殿에서 뜰로 내려와 공공연하게 지나갔습니다. 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들 서로 쳐다보며 놀라워하였습니다. 그 일의 체모를 알지 못한 바가 매우 심하니 파직을 명하소서.

그렇다면 서민들은 비나 햇볕을 가릴 때 어떤 도구를 사용했을지 궁금해진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머리에 쓰는 삿갓이었다. 삿갓은 갈대나 대오리로 성기게 엮어 비나 볕을 가리기 위하여 썼는데,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삿갓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조선 순조 때의 시인인 김병연이다. 흔히 김삿갓이라고 부르는 그 인물이다. 그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며 남긴 시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모아 엮은 《김립시집》에 실린 김병연의 시를 소개한다.

추미애가정신병秋美哀歌靜晨竝
아무래도미친연雅霧來到迷親然
개발소발개쌍연凱發小發皆雙然
애비애미죽일연愛悲哀美竹一然
가을날 곱고 애잔한 노래가 황혼에 고요히 퍼지니
우아한 안개가 홀연히 드리운다
기세 좋은 것이나 소박한 것이나 모두가 자연이라
사랑은 슬프며 애잔함은 아름다우니 하나로 연연하다

한문을 읽으면 조금 이상할지 모르나 해석을 하면 여간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아니다.

꾸밀 거리에 깃든 멋과 혼을 찾아가는 재미있는 역사 기행
저자 민병덕 선생님은 20여 년간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학생을 비롯한 독자들이 역사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생활사 중심의 글쓰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어렵고 지루한 이론서 중심의 역사가 아닌, 쉽게 접하는 역사를 소개함으로써 역사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이 책 《꾸밈의 한국사》 또한 그 연장선에서 기획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가지가 의식주이다. 이는 생명을 이어가는 기본 고리이자, 어찌 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행위이다. 이 셋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을 유지하는 먹는 행위이며, 그다음이 삶의 활력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쉼터이다. 그리고 먹고 쉬는 행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을 꾸미는 ‘의(衣)’이다. 꾸밈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나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민족 정서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 《꾸밈의 한국사》는 의복을 비롯하여 화장, 비녀ㆍ귀걸이ㆍ목걸이ㆍ노리개 따위의 장신구 등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만들어낸 각종 꾸밀 거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옷이나 장신구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배원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면류관, 일본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던 흰옷, 항일운동의 상징인 ‘아리랑’과 ‘강강술래’도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보여주는 꾸밈의 한 방식으로 보고, 그것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재미있고 쉽게 풀어냈다. 꾸밀 거리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사가 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꾸밀 거리에 담긴 역사 이야기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그 해소 방법도 다양하다. 음식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쉼터에서 잠을 자면서 해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화장이나 장식을 하고 옷과 머리를 치장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원래 화장이나 장식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바로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신분과 관계없이 화장이나 장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기생이다. 조선시대의 기생은 인물만 뛰어난 것이 아닌, 가장 지적이며 여러 방면에서 우수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오늘날 가수, 연기자, 국악인은 물론 시인이나 소설가와 같이 문학적인 소양을 갖추었던 셈이다.
저자는 꾸밈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나 신분의 과시뿐만 아니라 민족 정서를 나타내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이 쓰던 갓은 고려 말기 배원 정책에 따라 사용하게 된 죽관(竹冠)이 그 시초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의식 때 사용하던 면류관은 배원 정책을 펼친 공민왕이 명나라에서 도입하면서부터 쓴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 임금은 의식에는 면류관을, 평상복에는 익선관을 사용하였다. 흰옷 역시 일본에 저항하는 상징이었다. <아리랑>이라는 노래와 <강강술래>라는 춤은 항일운동을 하는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보여주는 꾸밈의 한 방식이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먼 옛날이 아닌 바로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각종꾸밀 것에 얽힌 사건과 인물들에 관련된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책과 함께 우리 조상들의 멋과 혼이 담긴 꾸밀 거리를 만나러 여행길에 나서보기를 권한다.

목차

■ 들어가는 말

옛날에는 왕이 음식을 다 만들었다면서요?
옛날에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여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데, 손발톱은 어떻게 했나요?
옛날에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한 적도 있다면서요?
신라시대에는 남자들도 화장을 했다면서요?
옛날 서양 남자들은 매니큐어를 칠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나요?
안경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오늘날의 미스 코리아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미인이라고 했을까요?
옛날에는 어떤 액세서리를 사용했나요?
옛날 여자들은 어떤 화장품을 썼나요?
옛날에도 공중목욕탕이 있었어요?
목화가 들어오기 전에 서민들은 무엇으로 옷을 만들었어요?
옛날에는 양치질을 어떻게 하였나요?
옛날에는 비가 오면 어떤 도구를 쓰고 다녔나요?
조선의 왕비나 후궁, 양반집 부인들은 머리가 굉장히 큰데, 진짜 머리였나요?
옛날에 왕이나 왕비는 어떻게 목욕을 하였나요? 또 손수 씻었나요?
옛날에도 염색약이 있었나요?
조선시대 관청의 기녀는 어떤 일을 했나요?
강강술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춤이라면서요?
고구려에서는 수의가 혼수품이었다면서요?
고려청자가 수입대체 상품으로 개발된 것이라면서요?
금동연가칠년명여래입상이 휴대용 불상이라면서요?
옛날에도 대중가요가 있었나요?
옛날에도 가수가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화가를 양성했다면서요?
옛날에는 신분에 따라 신발도 달리 신었다면서요?
동지에 부모님께 버선을 드렸다면서요?
조선시대에 궁중 잔치에서 화관무와 장구춤을 추었나요?
여자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기도 했다면서요?

■ 참고문헌

저자소개

저자 민병덕은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이후 경기도 용인시 용동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현재 교감으로 있다. 1990년부터 한국사 관련 저술을 기획했으며, 역사 소설가 이재운 작가와 함께 한국사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MBC 문화방송과 EBS 교육방송 등에 출연,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요?》(1, 2), 《옛날에도 변호사가 있었나요》, 《이황-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26》, 《이이-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27》, 《박은식-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40》,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오천년 우리 부자》, 《역사인물백과》, 《깨어나라, 고구려》, 《한국의 인물 시리즈》(7종),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 《김만덕》, 《LTE 한국사》, 《LTE 세계사》, 《반역의 한국사》, 《밥상 위의 한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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