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짧은 신혼 뒤에 찾아온 긴 이별
1장/ 결핍은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1970~1973년)
“온전한 사랑은 고난을 담을 수도, 슬픔을 담을 수도, 행복을 담을 수도 있는 폭넓은 그릇이어야 합니다. 이제 어두워졌어요. 커튼을 내려야겠어요. 우리는 친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가장 그리워하는 친구에요.”
“평범한 남정네들이 아내에게 주는 그런 수수한 선물을 나도 당신에게 주어보고 싶었소. 십자가와 ‘골고다’를 말하지 않고 우리의 결혼을 축하할 수 있는 언어를 나는 소유하고 싶었소.”
2장/ 둘째 마누라, 당신은 천천히 오소 (1974~1975년)
“며칠 전 한 선배언니의 얘기를 들었는데 남편과 함께 새벽 3시까지 얘기를 했다는군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왜 그렇게 부럽던지. 누구는 집을 고칠 때나 못을 박을 때 남편 생각이 난다지만 저는 그럴 때 당신이 아쉬워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밤새도록 마주 앉아 얘기할 남편이 필요할 뿐이지요. 남편 가막소에 두고 심통증에 걸린 한 마누라쟁이 올림.”
“그대 편지에 쓰기를 남편과 새벽 3시까지 깨가 쏟아지게 얘기를 나눴다는 어느 선배언니의 말을 듣고,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나서 부리나케 백 리 길을 달려 올 예정이라는 심통쟁이 마누라의 편지 받고, 가막소쟁이 남편은 이발하고 면도하고 ‘로숑’ 몇 방울 얻어 찍어 바르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면서, 쿵덕 방아 찍는 가슴 진정시키며 하루 죙일을 기다렸것다.”
3장/ 당신과 꽃핀 들판에 앉아 웃으며 얘기하는 꿈 (1976~1977년)
“당신이 그려 보내주신 고흐의 그림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습니다. 갈색 틀에 미색 바탕의 종이를 배색하니 마치 어느 유명화가의 그림 같았습니다. 초라한 방이 환해졌습니다.”
“지금 내 책갈피에는 어제 개울가에서 따온 솔방울 한 개와 제비꽃 두 송이, 민들레 잎사귀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언젠가 봄이 오는 날 당신과 함께 들에 나가서 이런 풀잎과 작은 꽃들이 핀 땅위에 앉아 웃으며 얘기하는 꿈을 꿉니다.”
4장 / 내 마음속에 슬픔을 씻어내는 샘물 하나 있어 (1978~1979년)
“요즘 산책길에 만나는 나무와 풀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풀들은 잡초가 싫으니까 개나리가 되었으면 하고 자기를 학대하거나 다른 삶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모두 자기 스스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잎이 떨어질 것을 생각해서 미리 슬퍼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돋아나고, 피고, 지고, 그래서 모두 자족하고 있습니다.”
“변소에서 즐겨보는 나의 실버들은 이제 새싹을 틔울 채비를 하나 봅니다. 밋밋하게 맥을 놓고 있던 가지가 올망졸망 움을 달고 작은 미풍에도 어깨 짓을 합니다. 긴 겨울을 이기고 이제야 ‘우리 여기 이렇게 견디어 냈느니!’ 하는 생명들의 자기주장을 대할 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제5장/ 연둣빛 꿈이 숨을 쉽니다 (1980~1981년)
“내일 추석에는 밥이 설어 콩이 설컹하게 씹히거나 떡밥이 되어 찐득찐득 입천장에 들어붙지 않는 포실포실한 밥이 나오기를 바라며 따뜻한 미역국이라도 드실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외로울 때, 당신이 제 곁에 오고 싶을 때 저 역시 그렇습니다. 당신의 그 그리움과 외로움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겨울 하나 넘으면 봄이 기다리고 우리가 만날 날도 멀리 있지 않으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갈하게 삽시다. 어머니가 당신과 나에게 똑같은 색깔, 똑같은 실로 털 스웨터 짜주신 것을 입을 때마다 우리가 엄마 품에 함께, 역사 안에 함께 있음을 느낍니다.”
맺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