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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잡히는 조선 상식 사전

한 손에 잡히는 조선 상식 사전

  • 김경민
  • |
  • 책비
  • |
  • 2017-12-26 출간
  • |
  • 408페이지
  • |
  • 130 X 223 mm
  • |
  • ISBN 97911874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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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조선의 왕과 인물, 사건에 대한 조선 역사 상식을 다루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부터 조선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조까지
그들의 업적과 가족관계 등을 통해 조선 사회를 엿보다

이 책은 조선을 건국한 첫 번째 왕 태조 이성계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조선의 운명을 바꾼 위화도회군, 이성계의 조력자였던 부인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조선의 건국을 담담히 그려낸다. 두 번째 왕이었던 정종은 이성계의 둘째아들로, 저자는 그가 얼떨결에 왕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도 그런 것이 정종은 아우이자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에 의해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과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한다. 조선의 시작은 이렇듯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재상 정치를 꿈꾸었던 정도전 사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태종의 셋째아들이었던 세종의 찬란했던 시대를 거쳐 세종의 장남이었던 네 번째 왕 문종을 작가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표현한다. 아버지 세종이 책벌레였던 만큼 아들 문종도 학문을 사랑한 왕이었다. 그러나 문종은 30년간 세자로 있다가 보위에 오른 지 2년 3개월 만에 병사하였다. 또한 저자는 문종이 처복이 없었다고 평가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문종의 첫째 세자빈은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비방을 쓰다 발각되어 폐위되었고, 둘째 세자빈은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했다고 전한다.

때로는 혈연보다 더 중요했던 왕의 자리,
왕이 되었음에도 명분이 없으면 불명예를 남긴다

여섯 번째 왕이었던 단종은 문종의 장남으로 저자는 그를 ‘충신들의 영원한 왕’이라 일컫는다. 단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였던 세조의 왕위 찬탈의 희생양이 된다. 단종은 수많은 전설을 남기며 생을 마감했고, 일곱 번째 왕이 된 세조는 ‘피의 군주’라 일컬어진다.
여덟 번째 왕은 세조의 둘째아들 예종으로 보위에 오른 지 1년 2개월 만에 요절한다. 야사에서는 세조와 예종이 모두 악몽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단종의 어머니였던 현덕왕후 권씨의 저주를 받았다고 전한다.
아홉 번째 왕은 세조의 큰아들인 의경세자의 둘째아들인 성종이다. 성종은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한명회와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의 결탁으로 왕이 되었다. 한명회는 두 왕이었던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열 번째 왕은 성종의 장남인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소생으로 셋째 계비였던 정현왕후 윤씨를 자신의 어머니로 알고 지내다가 아버지 성종의 묘지문을 쓸 때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게 된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통해 왕권을 잡고 갑자사화를 통해 왕권을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삼는다.
열한 번째 왕인 중종은 성종의 둘째아들로 중종반정으로 왕권을 잡았는데, 중종은 자신의 권력 기반이었던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 사류를 통해 훈구파를 견제하려 했다. 그러나 급진적인 조광조의 개혁 정책으로 훈구파는 기묘사화를 일으켜 다시 날개를 단다. 사림과 훈구파의 대립을 지켜보며 중종은 권력에 싫증을 느껴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
열두 번째 왕이었던 인종은 중종의 장남이다. 인종의 생모였던 장경왕후 윤씨는 인종을 낳고 7일 후에 산후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인종이 세 살 때 인종의 이복동생인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 윤씨가 계비가 되었다. 인종은 즉위 8개월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그의 죽음에 문정왕후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한다.
열세 번째 왕이었던 명종은 효자였다. 저자는 명종에 대해 ‘실질적인 왕은 그의 생모인 문정왕후’였다고 평가한다.

전쟁 통에 왕이 되었지만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난 효종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던 현종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영조와 정조

열네 번째 왕이었던 선조는 조선의 첫 방계 쪽 임금이었다. 명종의 아들이었던 순회세자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죽어 후사를 이을 소생이 없었다. 명종은 시조(始祖)가 같은 혈족 가운데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친계(親系)인 여러 왕손 가운데 하성군(선조)에게 병시중을 들게 했는데 이를 계기로 왕이 되었다.
선조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순신이 큰 공을 세운다. 열다섯 번째 왕인 광해군은 선조의 서자 중에 둘째이다. 선조에게는 적장자가 없어 세자를 책봉하지 못하고 있다가 임진왜란 중에 부랴부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전쟁 통에 백성들의 신임을 얻는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리 외교를 펼쳤고 대동법을 시행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폈으나 인조와 서인의 세력에 밀려 강제로 폐위되었다.
열여섯 번째 왕인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서자인 정원군의 장남으로 자신이 직접 반정을 준비한다. 후일 명나라의 승인으로 정원군이 왕으로 추존되었지만 후금과 우호 관계에 있던 광해군이 반정으로 폐위되고 인조가 반청 정책을 벌이자, 청나라는 병자호란을 일으켜 인조는 그 유명한 ‘삼전도의 굴욕’을 겪는다.
열일곱 번째 왕인 효종은 인조의 차남이다. 인조의 첫째아들인 소현세자가 죽고 소현세자의 원손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인조는 효종이 왕이 되기를 바랐다. 효종은 북벌정책에 힘쓰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장남인 현종이 열여덟 번째 왕이 된다. 현종은 할아버지인 인조의 총애를 받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죽어가면서도 백성들을 걱정하였다.
열아홉 번째 왕인 숙종은 현종의 장남으로 강력한 왕권을 만들었다.
스무 번째 왕 경종은 숙종의 장남으로 희빈 장씨의 소생이다. 희빈 장씨가 중전의 자리에서 내쳐지고 무수리 출신인 숙빈 최씨가 스물한 번째 왕인 영조를 낳으면서 숙종의 사랑도 점차 멀어졌다. 영조는 당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탕평책을 펼치고, 균역법을 시행하고, 조선 왕 중 가장 경연을 많이 연 왕이기도 하다.
스물두 번째 왕 정조는 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영조의 큰아들인 효장세자의 양자가 되어 보위를 이었다. 정조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은 화성 축성이다. 그러나 천도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49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스물세 번째 왕인 순조는 정조의 서차남이다. 순조의 정비 순원왕후의 아버지는 안동 김씨 김조순으로, 순조가 왕에 오르고 4년 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자 김조순의 세상이 된다. 이것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의 시작이다. 세도정치의 부패로 순조는 조선 왕들 중 제일 무능한 왕으로 평가되었다.

세도 정치의 시작과 망국의 길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 순종

스물네 번째 왕 헌종은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의 장남이다. 할아버지인 순조가 죽자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할머니인 순원왕후 김씨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수렴청정으로 다시금 안동 김씨의 세상이 열리며 풍양 조씨와 함께 두 외척 세력이 정권을 놓고 다투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번째 왕인 철종은 정조의 이복동생이자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손자다. 그 누구도 헌종의 양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6촌 이내에 드는 왕족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된 당파 싸움과 외척의 독재정치로 역모와 얽혀 왕실 혈통이 많이 제거된 탓에 왕위를 이을 종친이 없었던 것이다. 철종은 후궁에게서 서자 4남을 두었는데 모두 일찍 죽었다.
스물여섯 번째 왕 고종은 세도정치가 만든 조선의 마지막 왕이다. 고종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이다. 혈통으로 따지자면 고종은 왕이 되기 어려웠다. 고종의 할아버지는 인조의 셋째아들인 인평대군의 6대손인 이병원의 아들로, 이름은 이구다. 이구는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신군 이진에게 양자로 들어 남연군에 봉해졌다. 이구의 아들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이고, 흥선대원군에겐 큰아들 이재면이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나이가 어린 덕분에 이재면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철종이 안동 김씨에 의해 왕이 되었다면, 고종은 풍양 조씨인 신정왕후(효명세자빈)에 의해 왕이 된 인물이다. 고종 대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을미사변, 을사조약 등을 겪으며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 순종은 고종의 둘째 아들이다. 순종은 일본에 의해 세워진 껍데기 황제에 불과했다.

그 밖에 교과서에도 자주 나오는 조선의 인물 29명과
한국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조선의 주요 사건과 사고 18가지
조선 사회의 법과 제도를 엿볼 수 있는, 쉽게 풀어 쓴 《경국대전》 해제

이 책에는 조선의 왕들과 함께 왕의 곁에서 권력을 누렸거나 권력의 뒷자리에서 스러져간 조선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조선의 유명 인물들인 정도전, 맹사성, 황희, 박연, 장영실, 김종서, 한명회, 신숙주, 성삼 문, 안견, 김시습, 이황, 신사임당, 이이, 정철, 권율, 이순신, 허준, 허균, 윤선도, 김만중, 박지원, 김홍도, 정약용, 김정희, 김정호, 김대건, 최제우, 전봉준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의 중요 업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더불어, 조선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갔던 조선의 주요 사건과 사고 18가지를 담았다. 조선의 시작을 이끌었던 ‘왕자의 난’부터 계유정난, 사육신과 생육신,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단종 복위 운동, 기축옥사, 임진왜란, 계축옥사, 정묘호란, 병자호란, 홍경래의 난,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을사조약까지, 조선의 시작과 끝을 만든 사건과 사고를 되짚어본다.
《경국대전》은 조선 최초의 법전으로 고려 말부터 편찬 작업이 진행된 법전이다. 《경국대전》에는 여러 제도를 비롯해 왕과 왕실을 주체로 신하와 품계, 그들이 받는 임금(월급), 지금으로 따지면 여러 관공서 등이 아주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고, 조선왕조 내내 기본 법전으로 사용되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은 ‘쉽게 이해하는 《경국대전》’을 통해 어렵고 복잡한 《경국대전》을 간략하고 쉽게 살펴봄으로써 조선 사회를 읽는 핵심 열쇠를 파악할 수 있다.

[책속으로 추가]

산성을 나와 삼전도에 도착해 말에서 내린 인조는 여러 대신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태종을 향해 삼배구고두(三拜九敲頭)의 예를 행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삼전도의 굴욕’이다. 삼배구고두는 여진족이 천자를 뵈올 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으로, 인조는 한 번 절하고 땅에 세 번 머리를 찧고, 또 한 번 절하고 머리를 세 번씩 땅에 찧어댔다. 병자호란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소현세자와 세자빈, 봉림대군 또한 청나라의 볼모가 되었다. 인조가 배를 타고 궐로 향하는 가운데 포로가 되어 잡혀가던 백성들은 그를 향해 울부짖었다.
- 80쪽

그런데 경종의 죽음에 영조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다. 8월 24일 의식을 잃은 경종에게 영조가 인삼차를 올리려 했다. 그런데 의약청 유의(儒醫) 이공윤이 인삼차를 쓰면 처방한 약과 충돌하여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삼차 쓰기를 극구 말렸다.
그러나 곁에 있던 영조가 이를 저지하며 나섰다. 사람이란 본디 자기의 의견을 세울 곳이 있긴 하나 지금은 때가 시급한데 어째서 인삼 약제를 쓰지 못하게 하느냐며 나무랐다. 결국 왕세제의 명을 거역하지 못한 의관이 숟가락으로 인삼차를 떠 넣어주었고, 경종은 다음 날 8월 25일에 승하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 98쪽

이 외에도 영조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들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였고 그도 인간이기에 노론으로 치우치긴 했으나, 백성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업적을 숱하게 남긴 민생의 왕이었다. 재위 25년 후로는 백성들의 민생고를 직접 보기 위한 행차를 50여 회나 나갔다.
-103쪽

이순신의 전기인 《이충무공전서》도 정조 대에 편찬된 것으로, 정조는 공이 큰 인물들의 전기 편찬에도 힘썼다.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쳐 《오륜행실도》로 편찬 간행했다. 규장각 신하들로 하여금 중요 정사를 매일 기록하게 하여 《일성록》을 작성했다. 왕세손에서 왕세자, 다시 왕으로 지위가 오르면서 체계적으로 제왕 수업을 마친 정조는 학문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무렵 천주교가 등장했는데, 천주교 박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직접 관여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았다. 다만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사른 윤지충과 권상연의 죄를 물어 그들을 사형에 처했다.
- 108쪽

그의 사망을 두고 항간에는 일본의 독살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고종이 위중하여 이완용이 숙직을 했는데 그가 나인을 시켜 식혜를 올렸다는 것이다. 식혜를 마신 고종은 복통으로 급서했다. 또한 고종 승하 이틀 뒤에 식혜를 올린 나인 김씨가 감기로 죽었으며, 2월 2일에는 나인 박씨가 심한 기침으로 죽었다. 독살설이 확산되자 일본은 〈매일신보〉에 고종의 사인이 뇌출혈이란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실록이 아닌 윤치영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125쪽

청백리(淸白吏)는 조선 최고의 관료상이다. 업무 수행 능력과 청렴(淸廉), 근검(勤儉), 도덕(道德), 경효(敬孝), 인의(仁義) 등의 덕목을 겸비한 관리에게 주어지던 호칭인데, 의정부(議政府), 육조(六曹)의 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 사간원의 수장이 천거하고 임금의 재가를 얻어서 의정부에서 뽑았다. 청백리가 되면 그 후손들에게도 음직으로 벼슬을 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조선에서는 총 217명이 선정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맹사성, 황희, 최만리, 이현보, 이황 등이 있다.
- 146쪽

성종 15년(1484), 한명회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났다. 그리고 1487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을 가졌던 그의 사후는 처참했다. 연산군 10년(1504)에 윤씨의 폐위 문제와 사사사건이 관련있다 하여 무덤이 파헤쳐졌고, 시체는 토막이 났다. 목은 잘려 길거리에 걸렸다. 훗날 중종반정으로 신원이 회복되었다.
- 172쪽

세조가 즉위하고 신숙주는 한명회와 마찬가지로 네 차례나 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러나 좌익, 익대, 좌리공신은 1등이었으나 계유정난의 공신에선 2등이었다. 한명회와 함께 가장 화려한 공신 이력을 가지고 있다.
- 175쪽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발문부터 김종서,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서거정, 최항, 이개, 성삼문 등 당대 최고의 학자와 문인 20여 명의 친필이 붙어 있다. 이들의 찬문은 안견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높여준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안견의 그림 솜씨가 빼어났느니 가능한 일이었다.
- 178쪽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발문부터 김종서,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서거정, 최항, 이개, 성삼문 등 당대 최고의 학자와 문인 20여 명의 친필이 붙어 있다. 이들의 찬문은 안견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높여준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안견의 그림 솜씨가 빼어났느니 가능한 일이었다.
- 178쪽

유지는 그때 당시 12세였고, 이이는 39세였다. 유지는 선비의 딸인데 일찍 부모를 잃어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전한다. 이이는 유지를 아꼈다. 간혹 술시중을 들게 했으나 밤시중은 거부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유지 또한 성숙해져 갔다. 그러나 이이는 유지를 품지 않았다. 오로지 정신적으로 사랑하고 아꼈다.
- 199쪽

허준은 유배지에서 일생 최고의 업적인 《동의보감》을 편찬했다. 《동의보감》은 원래 1596년(선조 29)에 명을 받아 여러 사람과 같이 편찬 작업을 하다가 정유재란으로 중지되었다. 그 뒤 다시 재개했으나 끝을 보지는 못했다. 이때 선조는 내장방서(內藏方書) 500권을 내주어 고증하게 했다. 허준은 유배 생활 1년 8개월 만에 《동의보감》 편찬을 마무리 지었다.
- 226쪽

이때 이이첨은 한시라도 빨리 허균을 죽일 것을 주청했다. 광해군은 신문할 만한 단서가 있는데도 상세하게 캐묻지 않고 먼저 역적의 괴수(허균)를 사형에 처하라고 청하니 극히 타당하지 못하다 했다. 이 시기 광해군은 소생이 없었다. 그런데 허균의 딸이 후궁으로 간택된 상태였다. 이에 허균의 딸이 왕자를 낳으면 그의 세상이 될까 우려한 나머지 이이첨이 계략을 꾸몄다는 주장도 있다. 실록조차 허균의 일을 두고 이이첨을 비난했는데, 허균을 급히 사형에 처해 입을 봉하려는 것이라고 기록했다. 또한 기자헌조차 허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예로부터 형신(刑訊, 죄인의 정강이를 때리며 캐묻던 일)도 하지 않고 결안, 즉 사형할 죄로 결정한 문서도 받지 않은 채 단지 공초만 받고 사형으로 나간 죄인은 없었으니, 훗날 반드시 이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찌 되었건 시대의 이단아는 50세에 철들지 않은 채로 죽음을 맞았다.
- 231쪽

박지원에 관한 자료를 찾다 보면 그가 젊은 시절 우울증을 앓았다고 나온다. 특히 20~30대 사이가 절정이었다. 사회 현실과 가난, 책을 통해 얻은 여러 가지 지식들이 한꺼번에 뭉쳐 더욱 병이 심했다.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던 당시 박지원은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 243쪽

김정희는 오래된 비석이나 기왓장, 동전 같은 것이야말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말했다. 또 그는 [석노가]를 통해 귀신의 조화쯤으로 여기던 돌도끼와 돌칼, 돌화살촉이 선사시대의 생활도구이자 무기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 258쪽

목차

작가의 말

1부. 조선의 왕
1대. 태조(1335~1408) - 조선을 건국하다
2대. 정종(1357~1419) - 얼떨결에 왕이 되다
3대. 태종(1367~1422) -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다
4대. 세종(1397~1450) - 학문을 사랑한 임금, 책에서 답을 찾다
5대. 문종(1414~1452) - 어린 세자를 부탁하오
6대. 단종(1441~1457) - 충신들에게 영원한 왕으로 남다
7대. 세조(1417~1468) - 피의 군주가 되다
8대. 예종(1450~1469) - 젊은 왕의 갑작스런 죽음
9대. 성종(1457~1494) - 일과 여자를 모두 사랑한 성군
10대. 연산군(1476~1506) - 왕권과 욕망의 차이
11대. 중종(1506~1544) - 허수아비 왕은 되지 않을 것이다
12대. 인종(1515~1545) - 차라리 선비로 태어났더라면
13대. 명종(1534~1567) - 실질적인 왕은 문정왕후였다
14대. 선조(1552~1608) - 혼자 살겠다고 백성을 버린 것은 아니다
15대. 광해군(1575~1641) - 폐위되니 마음은 편하구나
16대. 인조(1595~1649)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니, 반정의 값인가
17대. 효종(1619~1659) - 너무나 큰 꿈, 북벌 정책
18대. 현종(1641~1674) - 상복이 무에 대수라고
19대. 숙종(1661~1720) - 진정한 왕의 힘을 보여주마
20대. 경종(1688~1724) - 누가 나를 죽였나
21대. 영조(1694~1776) - 아들을 죽인 비정한 아버지
22대. 정조(1752~1800) - 나는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23대. 순조(1790~1834) - 안동 김씨의 독재를 막아라
24대. 헌종(1827~1849) - 시대가 만든 무능한 왕
25대. 철종(1831~1863) - 농사꾼에서 왕으로
26대. 고종(1852~1919) - 어찌하여 왕이 되었으며, 어찌하여 망국에 이르렀는가
27대. 순종(1874~1926) - 죽어서야 당당한 왕이 되다

2부. 교과서에도 나오는, 꼭 알아야 할 조선 인물
1. 정도전(鄭道傳, 1342~1398) - 왕은 누구인들 상관없다
2. 맹사성(孟思誠, 1360~1438) - 전하께선 실록을 보실 수 없사옵니다
3. 황희(黃喜, 1363~1452) - 24년간 최장수 재상이 비 새는 초가집이 웬 말인가
4. 박연(朴堧, 1378~1458) - 음악에 미치다
5. 장영실(蔣英實, 생몰년 미상) - 관노에서 천재 과학자로
6. 김종서(金宗瑞, 1390~1453) - 용맹한 장수인가, 뛰어난 문신인가
7. 성삼문(成三問, 1418~1456) - 죽음으로 대신한 충심
8. 한명회(韓明澮, 1415~1487) - 뛰어난 지략가인가, 모리배인가
9. 신숙주(申叔舟, 1417~1475) - 일찍 쉬어버리는 숙주나물은 먹지 않겠다
10. 안견(安堅, 생몰년 미상) - 그림으로 최고의 벼슬을 얻다
11. 김시습(金時習, 1435~1493) -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12. 이황(李滉, 1501~1570) - 벼슬보다 책이 더 좋건만
13.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 재혼은 절대 아니 됩니다
14. 이이(李珥, 1536~1584) - 아홉 번의 장원급제, 1등이 제일 쉬웠다
15. 정철(鄭澈, 1536~1593) -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16. 권율(權慄, 1537~1599) - 노장은 대단했다
17. 이순신(李舜臣, 1545~1598) - 관직 생활이 전쟁보다 어렵네
18. 허준(許浚, 1539~1615) - 의과 시험도 치르지 않은 최고의 의사
19. 허균(許筠, 1569~1618) - 시대의 이단아, 소설로 꿈을 펼치다
2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귀양이라니요!
21. 김만중(金萬重, 1637~1692) - 임금의 이야기나 지어볼까
22. 박지원(朴趾源, 1737~1805) - 오랑캐에게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23. 김홍도(金弘道, 1745~?) - 그림만 그리면 아니 될까요?
24.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백성을 사랑한 선비
25. 김정희(金正喜, 1786~1856) - 돌도끼를 귀신이 만들었다고요?
26. 김정호(金正浩, 생몰년 미상) - 미스터리한 지리학자
27. 김대건(金大建, 1822~1846) - 조선 최초의 신부
28. 최제우(崔濟愚, 1824~1864) -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다
29. 전봉준(全琫準, 1855~1895) - 키가 작아 녹두장군이라네

3부. 조선 시대의 사건, 사고
1. 왕자의 난 1차(1398), 2차(1400) - 진즉에 세자의 자리를 내어주지 그러셨습니까
2. 계유정난(1453) - 나를 왕으로 추대할 자, 따르라!
3. 단종 복위 운동(1456) - 옛 왕을 지키려는 자들
4. 무오사화(1498) - 개인의 감정이 나랏일도 망친다
5. 갑자사화(1504) - 당장 나의 어머니를 복위시켜라!
6. 기묘사화(1519) - 간섭이 과하면 왕도 돌아선다
7. 을사사화(1545) - 왕보다 더 위세가 등등했던 외척 세력
8. 기축옥사(1589~1591) - 내가 반란을 꾀했다고 확신하는가
9. 임진왜란(1592~1598) - 왜놈들이 일으킨 난리
10. 계축옥사(1613) -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없는 죄도 만들어야 한다
11. 정묘호란(1627) - 광해군의 원수를 갚아주마
12. 병자호란(1636) - 차라리 왕이 되지 말 것을, 이런 굴욕이 또 있으랴
13. 홍경래의 난(1811) - 시대가 영웅을 만들다
14. 강화도조약((1876) - 불평등조약, 이것이 시작이었다
15. 임오군란(1882) - 과욕은 본뜻도 변질시킨다
16. 갑신정변(1884) - 청과 일본의 조선 쟁탈전에 불을 붙이다
17. 을미사변(1895) - 불에 태운다고 영영 사라질까, 재가 되었다고 영영 날아갈까
18. 을사조약(1905) - 짐은 그 조약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부록 : 쉽게 이해하는 《경국대전》 - 조선의 제도와 법을 엿보다
1권 《이전》 _ 이조의 조직과 소관 사무를 규종한 법전
2권 《호전》 _ 호조의 소관 사항을 규정한 법전
3권 《예전》 _ 예조의 예악, 제사, 연향, 조빙, 학교, 과거 따위의 여섯 가지 사무를 규정한 법전
4권 《병전》 _ 군사에 관한 법전
5권 《형전》 _ 형조의 소관 사항을 규정한 법전
6권 《공전》 _ 공조가 맡아 하던 여러 가지 사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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