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옥한흠은 이 대학에서 주로 성경과목들과 교양과목들을 수강하면서 앞으로 목회자가 될 기초적인 훈련을 받았다. 칼빈대학에서는 어학에 비중을 두어 교육시켰으며 특히 영어, 독어, 헬라어 등의 훈련은 이 학교의 강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순교적 신앙을 강조하면서 경건훈련을 상당히 강하게 실시하였기에 학교의 규율과 권징도 매우 엄격하였다. 이 학교는 당시 문교부로부터 정식 대학으로 인가받지는 못했지만 면학열은 그 어느 학교도 뒤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고신교단에서 자란 신앙 좋은 청년들은 고려신학대학 전신인 칼빈대학에 와야만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한다는 신앙 선배들의 가르침에 따라 다른 분야를 공부하던 자들도 적지 않게 이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p. 51
그렇기 때문에 옥한흠의 설교와 제자훈련은 긴밀하고도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는 설교를 통해 제자훈련이 근거하고 추구하며 지향해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를 선포했고, 제자훈련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훈련하고 적용시키는 과정이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설교가 옥한흠의 목회에 있어서 본질이요 “내용적 원리”라면, 제자훈련은 그것을 동력화하는 “형식적 원리”였다. 이러한 옥한흠의 목회적 특징들을 고찰하면, 그만큼 종교개혁의 유산을 한국 교회 상황에 잘 적용한 이가 없을 만큼 목회의 여러 요소들이 철저하고도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p. 86
목회자의 건강을 해치는 병고는 자칫하면 성도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도 있는데, 목회자 옥한흠의 질병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눈에는 그의 “약함 중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며 감동의 눈물이 고였다. 옥한흠은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성도들의 방문도 거절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고, 목사의 생명이 설교라고 믿었지만, 육체의 약함 때문에 그마저 하지 못할 때 오는 심적인 아픔도 삭여야만 했다. 이처럼 질병과 처절하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가시”가 그의 몸에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발견하고, 그의 약함과 겸손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강하심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러한 갈등 속에 몇 달을 보내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로 그의 마음에 갑자기 로마서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로마서가 그를 살렸다. p. 170
옥한흠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교회부흥과 직결된다고 이해했다. 그는 교회의 부흥은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회개하게 하심으로써 일어난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가장 적절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부활하시고 다스리시는 구세주, 곧 역사의 예수이시며 신앙의 그리스도이신 분의 인격적 임재가 그리스도인 개인 및 교회에 함께 거하시며, 그들 안에 계심을 알려주시는 분이 성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p. 261
옥한흠은 오늘의 이 시대야말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세계화된 무신론 문명”임을 부각시키면서 전쟁을 아는 세대와 전쟁을 모르는 세대 모두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길만이 살 길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뿐만 아니라, 옥한흠은 현대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성문란의 문제, 불안, 유혹 등에 대해 진단하고 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교회의 생명”은 “세상과 다름”에 있음을 강조한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이 한국 교회와 사회의 살 길이라고 강조하고 21세기의 한국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새로운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모색하도록 격려하였다. p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