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두 개의 십자가

두 개의 십자가

  • 박철수
  • |
  • 대장간
  • |
  • 2017-11-08 출간
  • |
  • 224페이지
  • |
  • 137 X 202 X 15 mm /258g
  • |
  • ISBN 9788970714240
판매가

10,000원

즉시할인가

9,0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9,0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프랑스 개혁교회 출신인 철학자요 신학자며 법학자인 자끄 엘륄은 “기독교가 성경대로 바르게 선포된다면, 기독교는 많은 수를 얻지 못하고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대가와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동의를 얻으려고 그들의 기호에 맞추고 그들을 매료시켜려 한다니”라고 탄식했습니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칼 마르크스의 말대로 아편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가면 성경말씀을 듣기보다 아편에 취한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성경을 바로 알고 제정신을 가지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길희성 교수가 쓴 『지금도 교회 다니십니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 상황에서도 교회에 다니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오죽 안타까웠으면 이러 말을 했을까요?
파스칼은 『팡세』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드물다. 믿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미신에 의해서다.”라고 말했습니다. 미신을 믿으면서 참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다른 복음’이 있었듯이 오늘날에도 ‘다른 복음’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믿는다기 보다는 대중의 기호와 욕망을 충족하는데 더 관심이 큽니다. 인간의 비위를 맞추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부담스런 설교를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형교회가 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보수주의 삼형제에 의한 비성경적 믿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근본주의요, 둘째는 세대주의요, 셋째는 경건주의입니다. 경건주의는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없는 긍정적인이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지금 이 땅에 관심을 갖는 대신 죽은 다음의 종말에 대하여는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과 몸은 등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만을 중요시 하든지, 하늘은 중요시하면서 땅의 문제에는 무관심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변종기독교가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죽어서는 좋은 곳에 가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니, 기독교 신자는 정말 욕심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복주의를 문제 삼는 것은 초월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과 만남없이 이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보수주의 교회는 스스로 착각 속에 빠져 행복해할지언정 실상은 그럴까요? 이들은 미래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신약성경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미래에 관한 말씀은 매우 적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혹시라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별난 사람, 별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미성숙한 부분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열린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러한 인간상을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갑질, 뇌물사건으로 사회에 논란을 일으켰던 박찬주 육군대장의 모습은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혹여나 일반교인들의 삶의 모습도 그분의 삶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저의 생각에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그는 군인세례를 통해 2035년까지 국민의 75%를 교인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제가 믿는 하나님과는 정반대되는 하나님을 믿나 봅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여 주는 표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자청년을 받아들여 “내가 부자에게 전도했노라”하시면서 가시는 곳마다 함께 다니면서 그 청년더러 간증하게 했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왜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 그 청년을 슬퍼하며 돌아가게 했을까요?
한국보수주의 교회는 축자영감설을 믿는다고 합니다. 축자영감(逐字靈感)이란 낱말마다 하나님이 간섭하신 것이니 글자 하나하나마다 일점일획이라도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이를 실제로 행동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 중에 몇 가지만이라도 실천한다면, 제 생각에 한 달, 혹은 일 년 안에 일대 혁명이 우리 교회와 우리사회에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한국교회는 이런 저런 일들로 얼마나 많은 욕을 듣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놀라울 뿐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배경을 조금만 안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은 아닐까요? 성경을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 식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교회에서 누가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까? 주일성수, 십일조, 목사님께 순종, 새벽기도, 설거지 봉사하면 백점짜리 교인이 됩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입니다. 성경 어디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들이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착각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성경을 믿는다면 갑질문화가 없어지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훨씬 늘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가족주의가 없어지고, 정의가 펄펄 살아 움직이고, 권위주의가 없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으뜸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요? 게다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옹졸하고 이기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만나면 왜 그렇게 답답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지, 서로 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많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할까요?
지금 상당수의 목사들이 스스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베끼고 있습니다. 설교를 공급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저도 수 천편의 설교문을 제공해준다는 광고메일을 스팸처리 하느라 바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책이나 설교를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이렇게 하다보면 점점 창조성을 잃어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성경을 스스로 알아가는 깊이가 고갈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한국교회가 크게 염려됩니다.
거기에다 한국교회가 윤리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하다보니 얼마나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는지 모릅니다. 또 가나안성도(교회에 ‘안나가’는 교인들을 거꾸로 한 말)가 100여만 명 이상이 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신학교를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 소위 좋다는 신학교마저 숫자를 다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쇠퇴와 부패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입니다. 콘스탄티누스에 이르러 기독교가 인정받게 되고 정교일치가 되면서 세계기독교는 모두 정치와 일치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영광의 기독교가 되었지요. 복 받은 교회가 되었지요. 그러나 그 때부터 기독교는 제 갈 길을 못 찾고 해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강점기로 부터 해방 이후에 미국은 노골적으로 개입해 우리를 자기나라인 것처럼 제 맘대로 부리고 있는 데도 한국교회는 앞장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있으니 희한한 일입니다. 그들은 갑이 되고 우리는 스스로 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갑질을 당하면서도 그조차 모르도록 세뇌되어 왔습니다. 한국교회는 미국이 우리의 천사나 되는 것처럼 그들의 앞잡이가 되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왜 이러한 일이 생겼을까요? 이 얼마나 무지의 소치입니까?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보수적 신학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일제의 정책에 따라 진보적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당했습니다. 목사들을 가르칠 때도 많이 가르치지 말라는 선교정책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구약은 읽지 못하게 하는 금서였습니다. 구약이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래디컬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약 또한 래디컬한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안다면 급진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워드 요더의 말대로 “우리가 급진적이어야 할 이유는 예수님께서 급진적이셨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혁명적인 순종을 통한 급진적 제자도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성도는 십자가의 복음을 분명히 알고 급직전인 제자로 이 땅을 살아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래디컬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무력적, 정치적 의미에서 혁명을 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영역에서 혁명가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혁명적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불을 지르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을 살아갈 때 펄펄뛰는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생명의 향기를 내품는 모습으로 살아가야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김회권 교수는 그의 대작 『모세오경』(2017년 전면개정판)에서 한국교회의 비판과 비전에 대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체제를 신적질서로 승인하고 그것에 편승하는 경향을 보이며 급속하게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 모두가 거룩한 성도다움을 잃어 가며 세상에 지탄을 자초하는 도덕적 슬럼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며 이 고백에 대한 신적 승인의 표시로 성령을 받아 자아 갱신적이며 세계 변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교회는 세상과 거룩한 긴장에 사로잡히고 세상 안에 있으되 세상 초극적인 비전에 붙들리게 된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교회공동체에서 드러나는, 그러나 모든 지역과 나라를 혁신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정치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정치는 하나님나라운동의 다른 말이다. 하나님은 다스리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인간과 피조물에 대한 설복의 감화, 감동을 통해 구현된다. 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정치 곧 하나님나라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교회는 진공상태에서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정치, 사회의 맥락에서 받아들인다. 교회가 받아들인 하나님나라 복음은 교회를 둘러싼 주변 사회의 가치와 이념과 날카롭게 충돌한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나라복음을 주변 사람과 직접 관련시키지 않고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500주년 종교개혁을 앞두고 교회의 교인들에게 바른 복음을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나라복음을 확신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확신을,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분들에게는 복음을 더욱 더 깊이 알 수 있게 하려고 이 글을 육체적 고통 가운데서도 독자가 알 수 있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을 위하여 수고해 주신 나의 사랑하는 공용철 형제, 촘촘하게 교정을 보아준 류대형 형제, 동그라미 자매에게, 그리고 바쁘신 가운데서도 기꺼이 추천의 글을 써 주신 홍인규 교수님, 김회권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와 함께 수고한 배용하 목사님과 박민서 자내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비록 조그만 책이지만 성경의 골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하나님나라복음을 담아보았습니다.

2017년 10월 10일 심한 통증의 시간을 기념하며
용인 산골짜기에서 박 철 수

목차

추천의 글
추천의글

들어가면서

1장. 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덴동산●죄와 죽음●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죽음
죽음●죽음●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인간은 악하다●죄와 사망의 왕노릇●구원을 갈구하다

2장. 율법
죄는 우리의 희망●과연 구원은 가능 할까●죄의 세력 vs 하나님의 능력●죄의 다양한 모습들
죄와 율법●죽음●죄로부터의 해방●세례●날마다 짓는 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죄의 지배로부터 해방

3장. 예수님의 십자가
다양한 구원의 모습들●희생제사●해방●칭의●화해●소유권의 변경●새 창조
하나님의 아들 됨●믿음이란 무엇인가●구원의 걸림돌●나는 날마다 죽노라

4장. 용 서
용서를 발견한 사람●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갚을 수없는 빚●백일 동안의 품삯●용서의 감격
용서, 새로운 출발●삼각 관계●자크 데리다의 용서●그렇다면 회개는 필요 없는가?●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용서해 준 것 같이

5장. 나의 십자가
두 개의십자가●왜곡된 형벌만족설●그리스 사상●공공성의 문제●자본주의●생태계●노동●소비●미국
기술●여자와 남자●통일●지성●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고난의 문제●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구원파
나가면서
미주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 070-4821-5101
교환/반품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856 303호 / (주)스터디채널 / 전화 : 070-4821-5101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