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논리와 유머로 무장한 미스터리계의 교과서출간 즉시 선배 열풍을 일으킨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 첫 장편소설
구라치 준은 ‘50엔 동전 스무 개의 수수께끼’라는 공모전에 응모하여 일반 공모 부문 ‘와카타케 나나미 상’을 수상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인 1994년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를 발표하며 문단에 정식 데뷔했으며, 2001년 《항아리 속의 천국》으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15편의 단행본을 발표해 각종 미스터리 상에 이름을 올리며 본격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구라치 준의 작품은 미스터리의 꽃이라 불리는 ‘클로즈드 서클(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을 테마로 삼은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으로, 이 책의 초판에서 작가는 “‘본격의 화신’을 자청하는 미스터리 팬부터 새잎마크(일본의 초보 운전 마크)를 붙인 미스터리 초심자까지 누가 읽어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완성했다고 자부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뒤이어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지나가는 녹색 바람》은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인 전작과 달리,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풍경에서 의표를 찌르는 진상을 밝혀내는 일상 미스터리를 취했다. 이처럼 본격 미스터리와 일상 미스터리를 넘나들며 ‘미스터리계의 교과서’라 불리는 구라치 준은 리얼리즘과 왜곡된 세계에서만 통용될 법한 수수께끼 풀이를 적절히 녹여내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구라치 준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네코마루 선배’다. 작품 속에서 네코마루 선배는 조그마한 새끼 고양이를 빼닮은 동그란 눈에 눈썹 아래까지 길게 기른 머리, 헐렁한 검은색 윗옷을 걸친 남자로 묘사된다. 모든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수학과 전기에는 유난히 취약한 이 남자는 정해진 직업 없이 여기저기 불쑥 나타나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면 득달같이 달려와 참견하는 오지랖 넓은 한량이다. 이토록 무심한 듯 다정한, 소위 ‘츤데레’의 전형인 네코마루 선배는 구라치 준의 여러 작품에서 탐정을 도맡아 사건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본격 미스터리를 너무 난해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방약무인하고 신출귀몰하며 속 편한 남자. 한심하게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영원한 뜨내기. 깐깐한 시어머니처럼 성가시게 굴지만 동글동글한 그 얼굴을 보면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네코마루 선배다.” _작품 해설 중에서
《지나가는 녹색 바람》은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첫 장편소설로, 후배 세이치와 합을 맞추며 네코마루 선배 특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도저히 현실 세계에는 존재할 법하지 않은 괴짜 같으면서도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면 누구보다 차갑고 냉소적인 남자. 이 매력 넘치는 ‘선배’ 캐릭터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에가미 선배, 사이토 하지메의 진나이 선배와 함께 선배물 장르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구라치 준의 첫 단편집 《일요일 밤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에 등장한 이래로 20여 년간 사랑을 받아온 네코마루 선배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만큼, 앞으로 그가 보여줄 활약이 기대된다.
대저택 안에서 일어난 의문투성이 연속 살인
일상의 풍경 속에 내려앉은 불가능한 범죄를 파헤치다
부동산업으로 크게 성공한 호조 가문의 수장 효마는 고생만 하다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다 아내의 영혼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영매를 집에 들인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큰딸 부부는 아버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초상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두 명의 젊은 심리 연구원을 초대한다. 독립해 살던 효마의 손자 세이치도 할아버지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10년 만에 본가를 찾는다. 가족과 영매, 두 명의 심리학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날, 별채에 머무르던 효마가 느닷없이 살해당한다. 아무도 효마의 방을 드나든 흔적이 없는 데다 그날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있다. 범인도, 범행 동기도 없는 살인 사건 이후 집안사람들은 노인이 생전에 희망했던 강령회를 열기로 하고 영매의 전모를 밝혀내기 위해 심리 연구원들이 함께 참석한다. 사방을 막은 밀실에서 강령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고, 세이치와 네코마루 선배는 짝이 되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작가는 네코마루 선배를 통해 ‘일상’의 불안정함과 예측 불가능이 사건의 전체적인 트릭을 지탱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확고부동한 일상은 없으며 우리는 그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광기와 제정신 사이를 오가며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일상과 광기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비춰지지 않는다. 등장인물을 통해 지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