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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원주의 사회와 인물 연구

조선후기 원주의 사회와 인물 연구

  • 오영교
  • |
  • 혜안
  • |
  • 2017-08-31 출간
  • |
  • 472페이지
  • |
  • 160 X 233 X 29 mm /826g
  • |
  • ISBN 978898494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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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관동(關東) 전통중심 원주!
조선후기 원주의 사회구조와 주요 인물을 복원하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지방 특히, 조선후기 강원도 원주의 사회구조와 그 시기 활동한 주요 인물에 대한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1편에서는 강원감영과 원주목이 편제된 관동수부(關東首府)도시로서의 원주의 사회구조를 정리하였고, 2편에서는 조선후기에 활동한 원주의 주요 인물들의 생애와 관력, 사상 등을 정리하였다. 최근 조선 중·후기 정치·사상사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인물과 정치사상 분야에서 기존의 수준에 비해 그 폭과 외연을 크게 확장시키고 있다. 당시 정계의 중심에 머물러 있던 원주의 인물들의 연구 역시 이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마지막 부편에는 원주를 비롯한 강원지역의 지역학 방법론과 연구경향을 분석하여 향후 지역학연구를 전망해 보았다.
원주는 본래 고구려 평원군으로 신라 문무왕 때 북원소경을 설치하였고. 고려 태조 23년에 지금의 명칭인 원주로 고쳤으며, 1308년(충렬왕 34)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감영의 소재지인 원주는 지방행정단위 등급으로 제3위인 목이었다. 원주목사는 정3품이며, 원주 강원감영은 1395년(태조 4) 설치된 이후 1895년 폐지될 때까지 강원도의 부·목·군·현을 관할하고 정치·경제·행정·사회·군사 업무의 중심지였으며 지역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원주는 지리상 사도팔달(四道八達)의 요충지를 점하여 왔으며 고려·조선시대 중앙지역과 한반도 동남부 지역과의 문화교류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또한 고려시대부터 조창(흥원창)이 설치되어 전세와 세곡을 서울로 운반하기 편리한 곳이었다. 남한강과 섬강을 끼고 있어서 수로가 발달하고 주요 역로가 통과하여 육로 또한 발달하였다. 원주 관내 남한강 유역에는 흥원창 나루, 개치나루, 좀재나루 등이 있었다. 그 중 흥원창 나루는 강원도의 원주, 평창, 영월, 정선, 횡성, 강릉, 삼척, 울진 등지를 관할하여 세곡을 운반, 보관하던 장소였다.
원주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에는 치악이 서리고 서쪽에는 섬강이 달리니 천년고국이다”라고 하여 산이 수려하고 물이 좋기 때문에 예로부터 뛰어난 인물이 많다고 하였다. 서거정도 “원주 고을의 풍속은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여 재물을 저축하고 물화를 늘이니 홍수와 가뭄이 들어도 재해가 되지 못하므로 진실로 동쪽 지방의 아름다운 고을이다”라고 평하였다. 성종대 강원도관찰사였던 성현은 “원주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먼저 곡식을 주어 그것의 귀중함을 가르치고 (…) 절약하고 부지런한 사람만을 용납하였다. 일없이 떠도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에서 그를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집이 적고 부잣집이 많았다.”라고 하였다.
원주는 발달한 교통여건으로 인해 서울과의 통교가 용이하여 서울의 사대부들이 많이 낙향하여 거주하였다. 토성세력들이 본관의 토착적 기반을 유지하면서 서울에 올라가 벼슬살이하기에 편리하였고, 비토성 사대부들에 의한 입거(入居)·낙향(落鄕)이 잦은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원주의 사마시 입격자의 수는 573명으로 전국에서 4번째로 많았는데, 17세기 이후 사마시에 입격한 자가 532명으로 총 사마시 입격자의 약 93%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 중에서 새로 이거한 가문에서 472명을 배출하고 있었다.
조선전기 이래 원주는 감영이 소재한 강원도의 수부(首府)로서 교육적 여건이 여타의 지역보다 좋았다. 특히 17세기 이후 학문의 전통과 좋은 교육환경을 반영한 서원과 사우(祠宇)의 건립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그런데 원주지역 사대부들은 끊임없이 서울로의 진출을 모색하였고, 또한 수시로 진출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인해 경상도나 전라도 등 정주가 확고한 지역과 같은 강력한 사족지배체제가 형성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1896년 칙령 제36호에 의거, 전국의 행정구역이 13도 8부 1목 332군으로 바뀌면서, 강원도의 경우 춘천관찰부가 강원도 관찰부로 승격되어 원주·강릉을 비롯한 강원도 26개 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안에 대해 지방민들의 반대여론이 들끓어 원주유생들이 집단 상경하여 원주로의 수부도시 변경을 강력히 요구하였던 예도 있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원주는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이 강해진 면이 있었다.

그러면, 저자가 보는, 조선후기 원주를 대표하는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우선, 항재 정종영은 원주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세상을 떠난 인물로, 김안국의 학통을 계승하여 위기지학(爲己之學)의 논리를 견지했고, 『소학』을 유아교육의 장에서 적극 시행하도록 건의하였다. 47년의 벼슬살이 과정에서 청백리로 선발되어 후대 학자들의 칭송을 받았다.
임진왜란 당시 원주목사 김제갑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원산성 전투에서 자기의 목숨을 던지며 끝까지 일본군과 싸워 지방수령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려 했고, 아내와 아들 또한 같은 전투에서 순국했다.
송와 이희는 동서분당, 기축옥사, 임진왜란, 남북분당 등 정치적 격변기와 국가 존망이 달린 전란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박권은 조선후기 손꼽히는 정치가로서, 1712년 백두산의 정계를 논의할 때 접반사로 중국측 대표인 목극등(穆克登)을 만나 회담하면서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던 인물이다.
일본에서 고구마를 도입재배한 것으로 유명한 조엄은 18세기 농민들이 겪는 고통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적극 모색한 목민관이자 학자적 관료였으며, 19세기 세도정권기를 풍미했던 풍양조씨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중앙집권적 권력체계가 전개된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사회과학을 불문하고 대체적인 연구경향은 지방차원의 미시적 접근을 소홀히 하고 거대이론에 치중하여 국가수준에서의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종래 지방은 중앙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 사용되면서 중심부와 주변부, 본점과 지점, 전체와 부분, 우월함과 열등함 등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후자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강원도 원주는 중심이 아닌 주변, ‘문화’가 아닌 ‘자연’, 생산이 아닌 소비의 위치에 놓여 있다고 평가되어 왔다.
최근 각 지방에서 역사발굴, 민속발굴, 지역 토산품과 특산품의 개발, 전통 문화와 축제 개최 등을 통해 ‘우리 고장 만들기’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학자, 문화기획가, 향토문화전문가 등이 동원되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정치가들의 의욕적인 주문에 따라 지역의 문화상품을 생산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방자치단체의 발전전략과 맞물려 더욱 활발하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적 목적뿐 아니라 관광사업을 포함하는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자원의 개발이라는 명분과 결합한다.
영남지방은 지배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문화적 자원으로서의 유교전통을 특권적으로 점유하며, 호남지방은 소외와 한을 형상화하는 담론 생산에 치중한다. 제주도는 ‘4·3사건’ 등 역사적 사건과 최후의 항몽(抗蒙)투쟁의 땅으로서의 부상과 동시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확산에 적극 부응하여 환경의 관광 상품화를 추구하고 환상의 세계로 상품화한다.
이렇게 열병처럼 번지는 지역전통의 확립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풍수지리설에 근거한 역사읽기나 지역의 풍경 감상하기, 지방사람의 성향 인식하기다. 결론적으로, 이는 비과학적이며 이데올로기 편향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이런 풍수지리설이나 심리유형의 담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사회적 구조와 문화체계에 대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강원학(원주학)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성이란 실용적으로 해석하면 거주민들에게 문화적,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강원(원주)에서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한편, 다른 지역민들에게는 살고 싶은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바람직한 이미지를 창출시키는 데 있다. 또 지역주민의 가장 큰 불만사항인 문화생활 결핍에 대해, 지역만의 고유한 색깔을 갖게 함으로써 주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지역발전에 대한 열의를 자극하여 경제적 교류를 촉진시키며 지역민들에게 지역정치에 대한 참여열기를 높여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구조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초석을 놓게 될 것이다.
지역학이 순수한 학문을 지향하면서도 실용적인 성과를 산출해 내기 위해 우선적인 관건은 필요한 정보(역사, 인물, 문화 등)를 충분히 축적하고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스스로 깨닫고 그 내용을 지역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역사, 문화, 인물 등과 관련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축적하는 데 인문학은 일차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내적인 축적이 없다면 이러한 작업만으로도 상당한 시일을 요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다지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목차

책머리에

제1편 조선시대 원주의 사회구조와 운영
제1장 원주목의 사회구조와 강원감영의 정비
1. 원주의 인문지리적 배경과 사회동향
2. 원주의 사회구조와 강원감영

제2장 조선후기 원주의 사회상황
1. 조선후기 원주의 향촌지배구조
3. 원주의 사회조직과 동약
4. 원주의 사회조직과 동족마을
5. 원주의 사회변동과 농민항쟁(‘민란’)의 발생
6. 강원감영의 이전 시말과 원주사정

제2편 조선후기 원주의 인물
제1장 항재(恒齋)정종영(鄭宗榮)의 생애와 사상
1. 머리말
2. 초계 정씨와 관동파의 성립
3. 정종영의 학통과 정치노선
4. 정종영의 품성
5. 정종영의 청백리[염근리(廉謹吏)] 선발
6. 정종영의 목민활동
7. 초계 정씨 동족마을의 성립과 운영
8. 칠봉서원(七峰書院)에의 향사(享祀)
9. 별묘의 건립과 운영
10. 맺음말

제2장 임진왜란과 의재(毅齋) 김제갑(金悌甲)의 목민활동
1. 머리말
2. 전쟁시기 조선군의 대응과 수령제의 운영실태
3. 영원산성 전투와 원주목사 김제갑의 대응
4. 의재 김제갑의 정치활동과 추숭사업8
5. 맺음말

제3장 송와(松窩) 이희(李?)의 정치활동과 사회인식
1. 머리말
2. 선대 가문과 송와 이희의 생애
3. 16세기 정국상황과 송와 이희의 정치활동
4. 시국관과 사회인식-『간옹우묵』·『송와잡설』 분석
5. 맺음말

제4장 귀암(歸庵) 박권(朴權)의 생애와 관력, 정치활동
1. 머리말
2. 박권의 가계와 생애
3. 박권의 정치활동
4. 맺음말

제5장 영호(永湖) 조엄(趙?)의 생애와 목민사상
1. 머리말
2. 조엄의 생애와 정치활동
3. 조엄의 목민사상
4. 풍양 조씨 문중의 정치·사회 활동
5. 맺음말

부편:지역학 연구와 강원학
제1장 강원연구의 활성화와 지역학
1. 지역학의 대두와 정립
2. 강원연구의 과정
3. ‘강원학’의 연구방안과 연구대상

제2장 강원연구의 전개와 연구현황
1. ‘강원학’의 연구현황
2. 강원연구의 수행기관
3. 강원지방사와 강원학

제3장 강원학 연구의 전망과 효율성 모색 증대방안
1. 강원학 연구의 활용과 효율성 모색
2. 연구방법론의 정립과 연구네트워크의 강화방안

참고문헌

저자소개

저자 오영교는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분야는 조선후기 사회사이다. 한국사회사학회·역사문화학회·조선시대사학회 이사이며, 강원문화재단·원주문화재단 이사를 역임하였다.2002년 연세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조선후기 향촌지배정책 연구』(혜안, 2001), 『조선후기 사회사 연구』(혜안, 2005), 『실학파의 정치·사회개혁론』(혜안, 2008), 『강원의 동족마을』(집문당, 2004), 『강원감영 연구』(원주시, 2007), 『조선건국과 경국대전체제의 형성』(편저, 혜안, 2004), 『조선후기 체제변동과 속대전』(편저, 혜안, 2004), 『세도정권기 조선사회와 대전회통』(편저, 혜안, 2007) 외 다수가 있다.

도서소개

『조선후기 원주의 사회와 인물 연구』는 조선시대의 지방 특히, 조선후기 강원도 원주의 사회구조와 그 시기 활동한 주요 인물에 대한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1편에서는 강원감영과 원주목이 편제된 관동수부(關東首府)도시로서의 원주의 사회구조를 정리하였고, 2편에서는 조선후기에 활동한 원주의 주요 인물들의 생애와 관력, 사상 등을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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