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는 생각은 아픔으로 괴로워했다.
격심한 고통을 더하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마치 완전히 불타 버리는 집에서 마치 건축의 근본 물음을
처음으로 던지는 것과 같다.”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가 자신의 실패를 강조했던 그 열정보다 더 기억할 만한 것은 없을 걸세……”
―발터 벤야민
프란츠 카프카의 무엇이 그의 소설―정확히는 단편산문Kurzprosa―을
20세기 현대문학의 정점이 되게 했을까.
카프카의 텍스트를 실패자의 텍스트로, (19세기) 교양소설 형식의 삶-서술 프로젝트를
더 이상 완수할 수 없는 작가의 텍스트로 읽자고 한 벤야민의 제안이 지니는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패인 줄 알면서도, 끝내는 미완으로 남겨진 장편소설들과 단편산문을 쉼 없이 오갔던
그의 문학적 분투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 새로운 인류학적 사상의 핵심이
카프카 해석의 거장 게르하르트 노이만에 의해 설명된다.
임마누엘 칸트와 발터 벤야민, 니클라스 루만, 조르조 아감벤과 자크 데리다를
경유하며 카프카의 글과 그에 내포된 인간상을 해명하는 역작!
그러므로, 무엇보다……
근대성의 충격 속에서 탄생한 카프카의 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삶이 더 이상 영위될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이 난 채로 체제의 미미한 부속품으로
매달려 있는 오늘 세계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여전히 간절한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카프카라는 이름은 어디에나 있다. 비단 문학 안에서만이 아니라 문학의 바깥에 이르기까지, 편재해 있다. 그 이름은 문학적 주제를 넘어 어렵고 까다로운 철학서에 등장하는가 하면, 서점과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도 마주치는 이미 널리 ‘대중적인’ 이름인 것이다. 아도르노가 그랬던가. 카프카의 작품들은 한편으로 ‘나를 해석해 보라’고 제안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해석을 허락지 않고 문을 쾅 닫아거는 아포리아로 가득 차 있다고. 카프카와 거의 동시대에도, 그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병상의 브레히트와 벤야민은 카프카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카프카의 이미지는 대단히 훌륭하다. 그러나 그 밖의 것은 비밀의 잡동사니이다. …… 깊이를 가지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브레히트) “깊이에 들어가는 것은 정반대의 입장에 들어가기 위한 나의 방식이다.”(벤야민) [물론 브레히트가 카프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만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카프카 문학의 정확성이란 어떤 부정확한 것, 즉 꿈꾸는 자의 정확성이다.”] 루카치는 카프카를 놓고 왔다 갔다 했다. 카프카는 “객관적 현실을 세계에 대해 불안에 찬 자신의 견해로 대체”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하등 도움이 안 될 문학이라 했다가, 정작 그 자신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갇히자 “내가 틀렸다. 카프카는 결국 리얼리스트였다”고 했다. 논란은 여전할 테지만, 전후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정은 카프카가 ‘대세’이다. 문학 안에서도, 문학 밖에서도. 모리스 블랑쇼, 들뢰즈와 가타리, 데리다와 아감벤 등등, 이른바 현대 문학과 현대 (정치)철학에서 카프카와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우리(한국)의 경우도 그런가라는 물음에 이르면, 사정은 좀 다를 것이다. (비평본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프카 전집을 포함하여 그의 소설, 편지, 일기 등이 여러 출판사 버전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지만, 정작 특정 작품에 대한 말 그대로 ‘작품 해설’ 내지 특정 주제로 접근하는 카프카 연구를 넘어선, 카프카 문학의 ‘전모’로 곧장 파고드는 본격적인(혹은 근원적인) 해석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자학일까. 지금 소개하는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실패한 시작과 열린 결말 / 프란츠 카프카의 시적 인류학』의 첫 장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프란츠 카프카가 도대체 무엇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가?” 다른 말로 하면, 그의 문학이 어째서 현대문학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 해석의 대가가 아니고서 다짜고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카프카의 텍스트를 ‘실패자의 텍스트’로 읽자는 벤야민의 제안을 이어받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체 여기서의 ‘실패’란 무엇을, 어떤 실패를 의미하는 것일까. 나아가, 이 실패가 어째서 ‘열린 결말(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로 이어진다는 말인가. 또한 그것이 새로운 ‘인류학’의 창조―현대 세계에 대응하는 문학과 정치철학의 수행―를 낳았다는 말인가. 게르하르트 노이만의 카프카 연구가 집약되어 있는 이 작은 책이 이 거창한 물음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견고한 카프카 문학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믿을 만한 열쇠 하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