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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항전일기

남한산성 항전일기

  • 나만갑
  • |
  • 주류성
  • |
  • 2017-11-13 출간
  • |
  • 268페이지
  • |
  • 176 X 226 mm
  • |
  • ISBN 9788962463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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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곁을 지키던 관량사 나만갑의 뼈아픈 병자호란 일기
이 책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 곁에서 조선의 여러 대신들과 함께 병자호란을 직접 겪고 나서 당시의 처참했던 사실들을 기록한 나만갑의 『병자록(丙子錄)』을 번역한 것이다. 전란 중 식량을 책임진 관량사로서 인조를 보필했던 나만갑이 그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병자록』은 현재 국내에 약 10여 가지의 필사본이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 분량이 가장 많고 자세한 것은 일본 오사카大阪 천리대(天理大)가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그 복사본이 있다. 철저하게 일기체 형식으로 쓴 것인데, 모두 5권으로 되어 있다.
나만갑의 『병자록』은 한 번도 활자본으로 인쇄·배포된 적이 없으므로 필사본만이 전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일본 천리대 소장본 『병정록』(5권)은 현재까지 전하는 『병자록』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다. 누가 언제 이것을 필사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이것은 나만갑이 직접 쓴 진본의 필사본이거나 진본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이 『병정록』은 그 양이 방대하여 이번 번역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다. 대신 또 다른 『병자록』이 한 권짜리 필사본으로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누가 언제 필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만갑 사후 그의 후손이나 이 기록의 자료적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던 누군가가 필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이번 번역본으로 삼았다. 이 필사본은 원문이 151페이지의 적당한 분량이고, 독자의 이해에 적합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병자호란과 관련된 내용이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병정록』 1~5권의 요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필사본의 표제는 『병자록』으로 되어 있는 반면, 『병정록(丙丁錄)』 5권은 강도록과 병자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주목하여 본 번역서의 표제를 『병자록(丙子錄)』 대신 『병자년 남한산성 항전일기』로 바꾸어 출간하게 되었다.
38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피눈물 나는 사건을 이 마당에 떠올려보려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병자호란이나 그 전 정묘호란은 무엇보다도 평형외교에 실패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 명분과 지나친 자존,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외교 감각, 실리 외교의 실종이 문제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은 명나라 및 청나라와의 등거리 외교를 추진하던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몰아냄으로써 명나라에 편향된 외교정책을 밀어붙인 데 있었다. 물론 그 당시 조선은 군사·경제적으로도 보잘 것 없던 나라였으므로 14만 청나라 군대, 그

중에서도 기병의 기습전에 속절없이 당한 것이었지만, 외교와 전쟁에 반드시 힘만이 전부는 아니다. 조선의 정치 지도자들이 성숙된 정치 감각과 외교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정묘·병자의 양대 호란은 겪지 않았을 것이며 그통에 애꿎은 조선의 수많은 생령이 어육이 되는 비참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극적인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명분만을 앞세우고 현실과 실리를 외면함으로써 조선의 체면과 자존심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 불과 40년 전, 임진왜란은 비록 참혹했으나 조선이 이긴 전쟁이었다. 그러나 병자호란은 임진왜란보다 더욱 참혹하였고, 그 결과는 더욱 비참하였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한반도의 사정 때문에 한국을 ‘화약고’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주변국과의 관계가 정치·외교적으로 과열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들 주변국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것은 한국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을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주변 강대국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여유 있는 ‘평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현재의 여건은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일 수 있다. 그
속에 나라의 살림살이는 물론 국격과 나라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도약의 요소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어찌 보면 서글프고 참혹한 과거의 반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사란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기록이라고 본다면 이 기록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크고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목차

▶ 사건의 시작과 곡절을 기록하다
▶ 급보가 전해진 이후의 일록日錄
▶ 해마다 세공을 바칠 물목物目
▶ 각처에서 근왕勤王 한 일을 기록하다記各處勤王事
▶ 강도江都에서의 일을 기록하다記江都事
▶ 척화하여 의에 죽은 이들의 일을 적다記斥和死義諸公事
▶ 난리가 지나간 뒤의 잡다한 기록雜記亂後事
▶ 청음淸陰 김상헌이 무고를 당한 일
▶ 저자 후기後記
▶ 『병자록丙子錄』의 저자 나만갑의 약력

저자소개

저자 나만갑 (羅萬甲)은 호는 구포毆浦. 선조 25년(1592)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광해군 시대를 거쳐 조정의 요직을 두루 맡았으며 51세의 나이로 인조 20년(1642)에 사망하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참으로 혼란한 전쟁의 시대였다. 임진왜란에 이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의 백성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 자신이 10세 이전에 겪은 임진왜란의 참혹한 결과를 소년기에 충분히 알고 있었고, 조정에 나아가서는 인조를 비롯한 지배층의 한가운데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몸으로 겪어야 했다. 그 자신이 『병자록』 후기에 “…서애(西厓)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그가 선조 임금을 호종하여 서도(西道)로간 일과 그가 들은 소문이 기록되어 있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유고에도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이 약간 적혀 있으나 열에 일곱 여덟은 없어져 버렸다. 내가 일찍이 그것을 아깝게 생각하여 이제 『병자록』을 짓는 바, 먼저 그 화란이 일어나게 된 연유를 들고, 다음에 눈으로 본 것을 자세히 기록하였다.…감히 스스로 야사(野史)에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가 옮겨가고 세월이 멀어지면 혹시 유실될까 두려워 분수에 넘치는 일임을 잊고 여기에 모두 다 기록해 둔다.…”고 밝혔듯이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의도와 마찬가지로 나만갑은 후세 사람들에게 경계하여 대비하는 자세를 갖도록 이 기록을 남긴 것이다.

도서소개

병자호란은 치욕스런 과거의 역사이지만,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

인조가 명나라와 청나라를 대상으로 편 정책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명분이 실리를 죽인 외교였다’고 할 수 있다. 대명의리론과 명분론은 조선의 국왕은 물론 그 백성들을 철저히 유린한 결과를 불렀다. 그들은 명분 한 가지만을 주요 외교정책으로 내세웠다. 누루하치(후일의 청 태조)가 후금을 건국한 1616년 이후 1640년대까지의 사정을 보면 명·청·조선 사이의 삼각관계를 그저 단선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여러 분야에서 이미 복잡한 관계가 조성되어 있었으므로 조선의 외교가 명나라 한쪽으로만 경도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청나라를 배척하거나 받아들여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17세기 전반을 살았던 조선의 지도층은 대개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하여 나라와 백성을 구해주었다 하여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파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조선의 국왕과 대신들은 현실적인 여건을 무시한 채 청나라와의 전면적인 대결을 선택함으로써 한 나라의 국왕이 삼전도에 나가 삼고구궤의 항복의식을 치르는 굴욕을 당했고, 까닭 없이 백성들만 무수히 죽어나가는 참화를 겪었다.

병자호란은 치욕스런 과거의 역사이지만,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38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피눈물 나는 사건을 이 마당에 떠올려보려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병자호란이나 그 전 정묘호란은 무엇보다도 평형외교에 실패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 외교정책을 어떻게 세우고 수시로 바뀌는 국제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다양한 외교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나라와 국민에 유익한가 하는 기준이나 교훈을 우리는 나만갑의 『병자록(丙子錄)』과 같은 기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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