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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과 고려의 북계

압록과 고려의 북계

  • 윤한택
  • |
  • 주류성
  • |
  • 2017-10-31 출간
  • |
  • 308페이지
  • |
  • 176 X 226 mm
  • |
  • ISBN 978896246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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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한국사 분야에서 일본인의 왜곡이 가장 심했던 고려사를 다시 본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조선사』를 편찬하였다. 그들은 과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기술한 것일까? 그들이 조선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왜곡한 부분을 없을까? 이런 의문을 품은 필자는 3년 전부터 조선총독부가 『조선사』 편찬 당시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원사서들을 직접 참조하면서 해제작업을 정밀하게 진행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거진 의구심을 풀 생각으로 원사서들을 챙겨서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 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 사실들 중 대표적인 것이 서희와 “강동 6주” 문제이다. 서희의 담판은 역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그리고 국가전략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사례로 꼽힌다.
그래서 그런지 그 문제와 관련하여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100여 년 전인 993년, 당시 고려군을 이끌던 서희는 어느 날 혈혈단신으로 거란군의 장막을 찾았다. 그가 적장인 소손녕과 마주 앉은 것은 고려와 거란 두 나라가 치르고 있는 전쟁의 의미를 따지기 위함이었다. 그 날의 담판 결과, 고려는 거란으로부터 “강동” 즉 강의 동쪽에 위치한 6개 주를 할양받아 고려의 행정구역으로 편입시키게 된다. 당시 할양의 기준점이 된 “강”은 압록강(鴨?江)이었다. 이때부터 고려의 서북계는 압록강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고려와 거란은 그 후 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전쟁과 협상을 거듭한다. 이런 관계는 상대가 금나라로 바뀐 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압록강을 국경으로 삼는 영토 인식은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희미하게나마 계승된다.

영, 정조시대에 조선 학자들이 현재의 두만강 너머에 선춘령이 있다는 영토관을 공유하고 있었던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압록강과 구분되는 또 하나의 압록강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문제의식은 당시 우리 역사에 천착하는 학자들에게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개중에는 이 같은 시대적 조류에 반발하는 학자도 없지는 않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정약용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입각하여 고려의 국경선이 지금의 압록강 하구에서 함경도로 이어지는 선임을 주장하였다. 물론, 그의 주장은 유배지에서 그 나름대로 다년간의 연구와 실증을 거쳐 도출된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론은 그다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증과정에서 그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문제가 많은 자료라도 끌어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에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들에 대해서는 애써 그 가치를 폄하하면서 아예 참고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약용이 드러낸 이 같은 자료에 대한 극단적인 편견은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의 고증은 고대사의 모든 사건과 장소를 한반도에서 찾으려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탓에 큰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로 국내의 역사학계는 고려사 관련 연구에 적잖은 공을 기울여 왔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되돌아보면 제도사, 사상사, 정치사, 외교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가 모두 망라되어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국경사 관련 연구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는 것이다. 이 국경사 연구가 미진했다는 것은 두 가지 방면에서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국경사는 일제 강점기에 이미 연구가 잘 되었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즉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앞서 말한 어느 연구자의 말에서 알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전승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일제 강점기에 쓰다가 주도한 고려사 집필진이 편견에 사로잡혀 엉터리 지리 고증을 한 것을 현대의 수한 정치적 이유로 말미암아 제때에 확인하기 어려워 묵시적으로 인정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국내적으로는 남북이 분단되는 바람에 천리장성을 직접 답사할 수 없게 된 것이나, 1990년대에 한, 중간의 교류가 본격화 되기 전에는 고려 국경 추정지에 대한 접근조차 불가능했다는 것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없이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그어 놓은 고려의 북방국경 선을 미필적 고의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고려의 국경선은 ‘미필적 고의’로 인정된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경선을 시대상황으로 바로 잡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자료들에 대한 접근과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자료를 사용하더라도 가타부타 압력을 행사할 세력은 없다. 『요사』에 대한 접근이나 사용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요사』는 조선시대에 『고려사』를 편찬할 때에도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 요나라의 역사를 연구할 때에는 『요사』를 참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어째서 『요사』를 참고하지 못하게 하고, 그렇다고 후학들은 참고하지도 않는가? 차분한 마음으로 모든 자료를 일일이 비교해 가면서 읽어 보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곳으로 직접 달려갈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인터넷으로 위성지도라도 확인해 보자. 그 같은 시도와 검증이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이 생기면 쓰다의 고증이야말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이고, 한국사 분야에서 일본인의 왜곡이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고려사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우리는 거짓말쟁이의 후손들인가?
- 윤한택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

본문
고려 서북 국경에 대하여
- 윤한택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

고려 윤관이 개척한 동북9성의 위치 연구
- 이인철 (경복대학교 교수)

서희 개척 8주의 위치에 대한 재고찰
- 남주성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행정학 박사, 한국수력원자력㈜ 상임감사위원)

『고려도경』, 『허항종행정록』, 『금사』에 기록된 고려의 서북계에 대한 시론
- 박시현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
- 복기대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

중국학계의 거란 東쪽 국경인식에 對하여
- 복기대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

13-14세기 고려(高麗)의 요동(遼東) 인식
- 윤은숙(강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명대 한·중 국경선은 어디였는가
- 남의현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글을 마치면서
『압록(鴨?)과 고려의 북계』를 마치며
- 복기대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

저자소개

책임 저자 윤한택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

책임 저자 복기대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

도서소개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고려 국경선, 우리 역사의 국경선

서희가 “강동 6주”를 획득한 이래 1100여년이 흐른 1900년대, 일본 학자 쓰다 소우키치는
『만선지리사』에서 서희의 담판에 관하여 이렇게 평하였다.

‘우리는 고려 사람이 그 영토권을 요구할 때 항상 그 역사적 연유를 사실보다 과장되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쓰다는 당시의 압록강이 지금의 압록강 너머라는 고려인들의 인식은 그들의 거짓말 하는 버
릇에서 비롯된 환상이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면서 그런 대표적인 거짓말쟁이로 담판의 당사자인 서희를 가리켜 고려 국경선 비정에 혼란을 초래한 원흉이라고 성토하기까지 하였다.
『발해고』를 쓴 유득공은 자신이 생존해 있던 조선 후기의 압록강(鴨綠江)을 고려시대의 국경선으로 대입한 상태에서 발해사를 연구하자니 지리고증에 아귀가 맞지 않았고, 그러면 혹시 봉황성 서쪽에 또 다른 압록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의 고민은 옳았다. 그가 간과한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안민강(安民江) 혹은 요하(遼河)로 불리던 압록강(鴨?江)이 또 하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 사람들은 당시 요하로 불리던 압록강(鴨?江)을 자국의 서북계로 생각하면서 살았고, 그것을 기록해 인식하고, 또 그 인식의 흔적을 『삼국유사』에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쓰다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고려인들의 거짓말로 호도하였다. 거짓말을 잘하는 고려인들이 원래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지금의 압록강(鴨綠江)을 요하로 불리는 압록강(鴨?江)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리 조상들은 한 결 같이 거짓말쟁이들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고려인들을 거짓말쟁이로 왜곡하고, 고려사를 조작된 역사라고 빈정거린 쓰다의 편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니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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