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독자의 선택『신경 쓰지 않는 연습』나토리 호겐의 신간
★ 적극적인 포기는 성공인가, 실패인가 ★
“읽는 내내 시원했다. 청량한 희망을 주는 안도의 말들”
- 노희경 작가 -
부족한 상태에서도 만족을 아는 인생을 사는 법
어디에서나 만족을 아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적극적으로 포기하면 평화가 찾아온다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 때문에, 혹은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고 실패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손에 쥔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리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내려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에게 오히려 “적극적으로 포기하라”고 권하는 책이 나왔다. 일본뿐 아니라 국내 독자들에게도 열렬한 호응을 얻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행동하는 승려’로 알려진 나토리 호겐의 신작『포기하는 연습』이다. 전작『신경 쓰지 않는 연습』에서 불안 ? 분노 ?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가르침을,『모으지 않는 연습』에서 마음 ? 관계 ? 물건에서 가벼워지는 가르침을 전했던 나토리 호겐이 이 책에서는 마음을 내려놓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공부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 잡념을 걷어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한 발짝 나아가게 될 것이다.
본질을 명확히 밝히면 깨끗이 포기할 수 있다
우리가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미련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사물이나 자기 마음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포기하다’는 일본어로 ‘아키라메루(諦める)’, 한자로 ‘諦(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명확하게 밝히다(明らかにする)’라는 뜻도 들어 있다. 즉,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뒤에야 깨끗이 포기하고 새롭게 전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컨대 비가 오는 바람에 예정된 행사가 중지되었다고 하자. 그때 행사에 가는 것을 포기하려면 ‘날씨는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하필 비가 오는 거야”, “기껏 준비했는데”라며 끊임없이 불평하게 된다. 다이어트를 포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분명하면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뚱뚱하다고 비웃어도 나는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도도 해보지 말고 무조건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무엇을 하지 않았다는 후회보다 하고 난 뒤의 후회가 더 낫다고, 쉽게 포기할 수 없을 때는 해보는 데까지 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실패했을 때야말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명확히 밝힐 기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 그러니 실패했지, 하는 수 없다”라고 포기하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면 된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기억하자
나토리 호겐은 자기 사정만 고집하는 것이 ‘괴로움’을 낳는 불씨라고 말한다. 세상은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날씨도 정치도 경제도 내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거니와 내 기분 하나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내 사정만 앞세우려고 하면 평생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렇다면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기 사정만 앞세우는 태도를 버리면 된다. 그러면 번뇌가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강조하는 ‘포기하는 연습’인 셈이다.
우리는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모두가 나를 사랑주길 바란다. 쓴소리나 뼈아픈 지적 말고 칭찬만 듣길 바란다. 그렇지만 내가 “알아주세요” 하고 바라는 것은 다 큰 어른이 응석을 부리는 행위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느라 자신이 고생하게 된다. 이럴 때는 반대로 내가 모두를 좋아하려고 해보자. 칭찬만 받으려고 해도 자신감을 잃는다. 누군가 나를 비판할 때 반론하고 싶어지는 까닭은 상대방이 싫어서다. 그럴 때는 신뢰하는 사람에게 같은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떠올려보라. 내가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지 비판 그 자체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이를 자기 연마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